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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서 Nov 09. 2022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앞질렀달까. 그때 우린, 그때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야.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좀 그래도 되잖아.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우리 당장의 위기에 집중하자. 라면이 먹고 싶어"

- 극 중 천우희(임진주 역)


 

 대학생 때부터 7년간 지긋지긋한 연애를 하다가 끝낸 드라마 작가 지망생 '천우희(임진주 역)'.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개그 극단에 들어간 엉뚱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가 무책임하게 그녀와 아이를 버리고 이혼하여 20대 청춘에 미혼모가 된 '한지은(황한주 역)'. 꼰대로 가득한 회사를 탈출하여 친일파 관련 다큐를 홀로 취재하여 대성공을 이루고, 함께 취재한 남자와 진한 사랑을 하지만 사별한 뒤 그를 잊지 못해 그의 환시를 보는 '전여빈(이은정 역)'.


 그리고 이들이 만난 세 남자가 있다. 실력은 좋지만 재수 없는 유명 드라마PD '안재홍(손범수 역)'. 대학생 때부터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살지만,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공명(추재훈 역)'. 싸가지 없고 욕쟁이에 포악하지만, 엉뚱하고 착한 매력이 있는 CF 감독 '손석구(상수 역)'.


 이들은 서로를 만나 함께 울고 웃기도 하고, 밥 먹고 술 먹기도 하고, 함께 일하거나 놀러 다니기도 한다. 특히, 여주인공 3명에게는 사랑이 발목을 잡는 것 같으면서도, 사랑하는 삶을 원하기도 한다. 진주는 전 남친 '이유진(김환동 역)'을 보며 그랬고, 한주는 전 남편과 재훈을 보고 그랬으며, 은정은 귀신처럼 자신에게만 보이는 '홍대'를 보면서 그랬다.


 이들에게는 계속해서 시련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때론 좌절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했고,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통해서 일과 사랑 모두 조금씩 위기를 헤쳐나갔다. 진주는 범수와의 만남으로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면서 연애도 이뤄냈다. 한주는 재훈을 항상 신경 써주고, 마지막에는 이 커플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도록 도와주었다. 끝에는 한주 본인도 그렇게 원하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재훈이 아닌 다른 남자와) 은정은 상수의 제안으로, 아프리카로 새로운 다큐 취재를 떠난다. 사별한 홍대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지만, 정신병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것에서 새로운 곳으로 넘어감을 의미하는 듯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서른 살'을 맞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하다고 생각했다. 장기연애, 사별, 미혼모 등은 모두에게는 와닿지 않더라도, 다양한 연애라는 점에서 20대가 아닌 30살쯤은 되어야 많은 연애와 사랑, 슬픔을 겪어봤을 법하기 때문이다. 영화 <스물>에서는 애도 어른도 아닌 20살이 앞으로 나아가는 병맛 청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이 드라마에서는 조금은 더 성숙하고 깊은 고민을 하는 30살을 다뤘다. 

 

 30살 역시 애도 어른도 아닌 것 같지만, 20살보다도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마치며, 나는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사랑에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고, 일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말이다. 열심히 사는 우리에게는 사실 과거니 미래니 하는 문제보다, '오늘 밤에 라면을 먹으면 살이 얼마나 찔지' 같은 작은 고민이 더 현실적이다.


 <멜로가 체질>은 바로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서른 살이 맞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그 무게감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것들이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거나, 무작정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아파하는 이들이지만, 모두가 겪는 현실들이고 다들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한밤 중의 라면 같은 고민들을 해결하고, 또 일과 사랑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며 하루를 살아간다.


 <멜로가 체질>은 곱씹을수록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았고, 유독 여운이 길게 가는 듯하다. 그런 매력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로 회자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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