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
10대의 사랑도 과연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는가
매혹이란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림’이라는 뜻으로, 누군가에게 이끌려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거나 마음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 ‘매혹’이라는 키워드가 사용되는 장면을 표현한다고 생각해봤을 때, 우리는 쉽게 매력적인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이나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는 연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는 소비자들이 대상물로 보는 미디어 속 주인공들이 ‘매혹’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소비자들의 위치는 스크린 속 인물들이 ‘매혹’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을 관망하는 제3자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매혹’을 느끼는 대상이 매체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까지 그 정서를 전달하고, 촉발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발전이 가능하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앞서 언급한 매력적인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장면으로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장면을 볼 때,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것은 인물 간의 ‘매혹하다.’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과연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행위의 인식만 하고있는 것일까?
현재 대중들이 소비하고 있는 미디어 매체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이 강한 쾌락재 상품이 대부분이다. ‘매혹’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게 되는 미디어 매체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고, 특히 영화 매체에서 이러한 장면이 많이 연출된다.
영화의 주된 속성은 영화를 보면서 얻게 되는 정서적 자극이며, 기능성과 실용성이 강조된 상품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 관람을 통해 심미성, 감각적 즐거움, 환희, 재미 등을 경험하고 영화를 통해 이러한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될 것이라고도 믿기 때문에 영화를 관람한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어떠한 감정과 정서가 녹아든 장면이 연출되면, 그것을 시청하고 있는 대중들도 같은 정서를 느끼고 주인공과 같은 경험을 하고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영화의 특성이나 미디어 매체의 특성이 어떠한 장면에 나오는 ‘매혹’이라는 정서를 일차원적인 부분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가 그 정서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들고, 같이 경험하게 만든다는 이유를 대변해줄 수 있다고 설명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매혹’이라는 정서는 사랑에 기반 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매혹’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순간부터 그 장면의 분위기에는 로맨스 적인 요소가 필수가결하게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장면을 높은 확률로 매력적으로 판단하고 마치 스크린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 장면에 빠져든다.
이번 글의 주제는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과연 “‘매혹’이라는 키워드를 쓴 장면의 대상이 청소년이어도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가”이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매혹’의 클리셰는 2030세대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크린 속에서 볼 수 있는 ‘매혹’의 모습들은 대부분 성인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영화 속 성인들의 사랑은 감정선의 묘사보다 시각적인 차원에서의 묘사를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사랑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청소년의 사랑에 대한 대표적인 키워드로는 첫사랑, 풋풋함, 추억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대부분 청소년의 사랑은 인물의 첫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된다. 아무래도 10대는 성인과 달리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성적인 표현이나 정서가 사용될 경우 청소년인 대상에게 성적 대상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존재해 매체에서는 이를 지양하고 감정선을 위주로 하는 표현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10대의 사랑은 모두 ‘매혹’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없는 요소인 걸까? 우리는 이를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로 조금 더 자세하게 분석해보고 10대들의 사랑에도 ‘매혹’이라는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볼 볼 예정이다.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는 2016년에 제작된 일본 로맨스 영화로, 원작인 만화를 토대로 감독 야마토 유키가 만든 영화이다. 자세하게 분석에 들어가기 전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여자 주인공인 인기모델 나츠메가 15살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마을의 수장 아들인 코우를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10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청소년 이야기이지만, 충분히 ‘매혹’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에 대한 분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단 영화의 분위기이다. <물에 빠진 나이프>의 분위기는 캐스팅에서도 한 번에 확인될 수 있다. 영화는 시각적인 자극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매체이기 때문에 캐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영화의 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에 빠진 나이프>의 여자 주인공 나츠메 캐스팅은 ‘고마츠 나나’이며 남자 주인공인 코우의 캐스팅은 ‘스다 마사키’이다. 주연 캐스팅 확인해봤을 때, 이 둘은 모두 업계에서 몽환적이라거나 퇴폐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일본 배우들의 전형적인 이미지인 청순과는 거리가 있는 유명한 배우들이다.
감독의 이러한 캐스팅을 통해서 영화를 보기 전 캐스팅만으로도 분위기를 지레짐작할 수 있을 듯한, 즉 배우들을 통한 명확한 이미지 확립이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 영화 내에서도 배우의 이미지를 최대한 뽑아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정서가 어둡고, 서투른 첫사랑을 몽환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캐스팅으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외에도 ‘매혹’이라는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상징물의 이용이다. 총 두 가지의 상징물을 통해서 영화는 나츠메와 코우의 ‘매혹’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상징물은 영화 제목 그대로 물과 나이프이다. 물과 나이프. 물체의 특성으로는 전혀 찾아낼 수 없는 상징물이지만, 영화 내에서는 내용을 통해서 물과 나이프를 연결하고 주인공들 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먼저 물은 이분법적으로 본다면 ‘매혹’의 상징물이며 그와 동시에 코우와 나츠메를 이어주는 긍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이프는 반대로 둘을 갈라놓는 장애물을 상징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물건으로 표현된다.
이에 대한 설명을 더 깊게 들어가 보자면, 물에 대한 장면분석을 먼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코우와 나츠메의 첫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츠메가 코우를 처음으로 만나는 곳은 마을 깊은 곳에 있는 바다로, 금지구역인 곳을 몰래 구경하던 나츠메가 그곳에서 수영 중인 코우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 씬에서는 코우가 나츠메의 같은 반 동급생인 것을 알게 되고 나츠메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그 날 방과후에 나츠메는 코우를 보기 위해 간 금지구역 바다에서 코우를 발견하게 되고, 코우가 나츠메를 바다에 끌어들이면서 둘은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바다에 같이 잠수를 한다. 여기서 두 주인공이 물에 빠져 눈을 마주치는 모습과 함께 나츠메의 독백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시작을 알린다.
금지구역인 바다는 영화 내에서 ‘신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마을에서 인식되어 있었으며, 이 바다에 빠지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텍스트 적으로도 알 수 있듯이, 코우와 나츠메가 물에 빠지는 순간 둘은 떠오르지 않는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면서도, 앞전에 그 바다에서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수영이 가능한 코우를 보여줌으로써 코우는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중후반부에 갈등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지만, 나츠메가 코우를 재회하게 되는 장면에서도 바다, 즉 물을 통해서 재회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나츠메가 코우를 회상하며 떠올린 추억이 나오는데, 코우와 나츠메가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가 보이는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이다.
결론적으로 물은 둘의 만남을 인연에서 운명으로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츠메가 생각하는 코우와의 연결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은 또한 만남을 연상시키는 것과 더불어 ‘매혹’과의 해석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나츠메와 코우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하는 장면에서 확인된다. 나츠메가 코우와 하교하며 뛰어가다 하천에 빠져 물에 잔뜩 젖게 되는데, 이후 코우는 나츠메에게 키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키스신은 명장면이라고도 꼽힐 정도로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매혹적이다.’ 라고 판단된다. 일반적인 기준의 ‘매혹’인 선정성이 포함되어 강제적으로 그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수한 10대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프를 통해 둘의 단절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어떻게 분석될 수 있을까. 영화 내 전개에서 가장 큰 갈등은 마을 축제에서 나츠메가 스토커에게 쫓겨 강간당할 위험을 코우가 지켜주려 하다 코우 역시 그에게 폭력을 당해 쓰러지게 된 사건이다.
나츠메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구출되어 다행히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코우는 자신이 나츠메를 지켜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츠메를 멀리하고 어떠한 트라우마성 도피를 하게 된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코우는 나이프를 지니고 폭주족과 어울려 다니며 엇나가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통해 둘 사이의 단절을 나이프를 통해서 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장면에서 사용된 나이프의 상징성은 고등학생이 된 후 시간이 지난 축제 날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축제가 있는 날 나츠메의 스토커는 다시 찾아와 나츠메를 강간하려 들었고, 이를 발견한 코우는 흥분하고 가지고 있던 나이프를 통해 스토커를 살해하게 된다. 나츠메가 충격으로 쓰러진 사이 코우는 나이프와 스토커의 시신을 ‘신의 바다’에 빠뜨렸고, 둘은 이후 만나지 않고 자라 결국 성인이 되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이 난다. 결국 나이프는 나츠메와 코우의 운명을 잘라버리는 상징물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둘 사이의 장애물이라고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징물을 통해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를 분석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10대의 첫사랑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념과 달리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물과 나이프의 조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결국 나이프는 물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나이프는 어쩌면 코우를 상징하고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물에 떠오르지 않고 수영이 가능하던 코우가 결국에는 물에 가라앉아있는 것을 통해 감독은 코우와 나츠메의 운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절되고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의미로써 해석한다면 둘의 사랑은 계속 가라앉은 채로 이어져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러한 해석과정을 통해서 굉장히 매력적이고 둘의 사랑 이야기가 마냥 희망차고 밝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에 묘하게 이끌리는 ‘매혹’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앞서서 언급했던 매혹적인 분위기와 배우들의 몽환적인 연기가 그 정서에 한층 더 깊게 관여하기 때문에 매개체를 통한 해석적인 측면과 더불어 분위기를 통해 전반적으로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가 ‘매혹’이라는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한편 ‘매혹’적인 영화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영화는 완벽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의 한계점과 비판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전개성, 감성 영화가 가지고 있는 클리셰를 너무 많이 넣었다는 점. 그리고 일본 특유의 10대 청소년의 정서를 그리지 않았더라면 범죄영화에 가까운 여자 캐릭터를 향한 범죄장면들 등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긴 했다.
영화가 좀 더 짜임새 있게 전개되거나 감성적인 연출을 위해 중구난방으로 우겨넣었던 미장센 욕심을 줄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점을 커버할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나 ‘매혹’적으로 표현한 10대의 사랑 이야기가 충분히 영화적으로 높게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부각되는 영화이니 누구나 보아도 충분히 ‘매혹’이 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나타내면서 나는 이만 글을 끝내도록 하겠다.
모두에게 전하는 10대의 서투른 사랑을 영화 <물에 빠진 나이프>통해 한 번쯤은 확인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