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혜 Feb 11. 2023

다정한 사람과

입춘의 도시락

짝꿍이 당직이라 모처럼 도시락을 싸보았다.


당직 전날 뜬금없이 내가 싸주었던 음식 이야기를 하길래 곰곰이 돌이켜보니, 도시락 안 싸준 지 오래되었구나, 싶어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입춘이어서다. 봄 하면 도시락이니까. 나는 도시락 싸는 일을 좋아하니까. 도시락을 쌀 때면 어떤 메뉴를 어떻게 담을지 생각하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시점부터 마음은 갓 지은 밥처럼 모락모락 마음이 훈훈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생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요즘 잡곡밥이 맛있다고 했으며, 케첩을 좋아한다, 그는 국물만 있어도 밥을 잘 먹고, 떡갈비를 즐겨 먹으며 채소는 생채소나 쌈채소를 종종 사는 것 같다. 그는 달콤 짭짤한 김치볶음을 애정한다. 그는 과일 섭취량이 다소 부족하다.’

도시락 하나를 준비하는 데에도 내 머릿속에 산재해 있던, 그에 관한 많은 정보가 하나로 모인다.


흑미밥을 간하여 동글동글하게 뭉치고, 묵은지를 달달 볶고, 떡갈비를 그릇에 담고 보니, 샐러드드레싱은 톡 쏘는 알겨자가 좋을지, 올리브유와 유자폰즈의 간단한 조합이 좋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케첩이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소스라고 생각하니, 이내 작은 종지에 케첩을 듬뿍 짜 넣는다.

알겨자는 한 스푼만, 채소 위에 조금.

나의 전화에 짝꿍은 의아해하면서도 멋쩍게 웃으면서 나온다. 위험하게 뭣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툴툴대면서도, 입꼬리는 싱긋 올라가 있다.

도시락만 받을 것이지 이내 볼도 삐죽, 내민다.

잠깐의 안부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가고, 곧이어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쿵 닫히면, 그때부턴 은근한 외로움이 몰려온다. 죄수에게 사식을 넣어주고 돌아서는 발걸음 마냥, 내가 돌아갈 길은 쓸쓸해지고, 나는 어기적어기적 발을 끈다. 이를 눈치챈 그의 씩씩한 목소리가 나의 등을 떠밀기라도 하듯, 나를 어서 보낸다.

맛있었냐는 질문에 기껏 좋아하는 떡갈비를 싸줬음에도, 자기가 더 좋아하는 떡갈비가 있다면서, 센스없이 싱글벙글 말하는 짝꿍의 모습은 조금 서운했지만, 그럼에도 신나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게웃겨서 그만 웃고말았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솔직한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관계가 차츰 줄어든다는 걸 생각해보면, 짝꿍의 티없는 말도 엉뚱하고 귀엽기 마련이다.

다음엔 그 좋아한다는 바로 그 떡갈비를 구해보리라..!


어느 여름에 먹었던 점심을 떠올리며, 따듯한 계절이 오기를 바라는 입춘. 조금은 느슨해도 괜찮은 계절이 그리운 2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