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이끼 숲을 지나 머스커리레이크로

장엄한 대지를 마주했을 때 밀려오는 커다란 감정

by nomadhaus

딩글로 가는 길, 고속도로를 타고 곧장 갈 수도 있었지만 미리 봐 둔 트래킹 포인트를 찾아 조금 돌아갔다. 몇 개의 마을과 끝 모를 초원을 가로질러 중간 길녘, 머스커리레이크에 도착했다.

낙우송 숲 아래에는 낙엽이 잘게 잘게 쪼개져 오랜 세월 두텁게 쌓였다. 50cm ~ 1m쯤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1cm도 보기 힘들다.) 그 위로 이끼가 뒤덮여 땅이 축축하다. 이탄층은 수분과 공기를 머금고 있어 밟을 때마다 숨 쉬듯이 들썩거렸다. 빛이 숲으로 들어온다. 나무 사이로 비친 햇살이 그늘진 토양을 비춰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숲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몇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잘 닦인 길을 거르고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덤불숲길을 헤쳐 올랐다. 발 밑에는 습기를 간직한 풀들이 질척거린다. 뱀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야생의 위험이 도사리는 거친 땅을 탐험하고 있다.


마침내 숲을 벗어났다. 나무 펜스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광대한 초원이 펼쳐졌다. 저 멀리 두 눈으로도 담기 힘든 육중한 대지가 속살을 장엄하게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만큼의 퇴적과 융기, 침강을 반복해야만 이런 땅이 솟아오르는지 미미한 생을 살다가는 나로선 헤아릴 수 없었다.

바람에 맞서서 힘겹게 산을 올랐다. 저 멀리 산 아래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은 호수의 물이 넘쳐흐른다. 길 옆에는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수 백개의 실가닥 같은 시냇물이 흐른다.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과 실개천들이 모여 하천을 이뤘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계속 흐르고 주변에 흙을 함께 싣고 내려간다. 부유하는 알갱이들은 저 아래 평야에 쌓이거나 바다로 간다. 붕적과 충적, 깎이고 쌓임이 반복되는 순환의 연속. 보이지 않는 생태적 균형에 희열을 느꼈다.


침식과 퇴적이 반복된 땅에는 힘이 있다. 많은 생물들이 그곳에서 먹이를 먹고 숨을 곳을 찾는다. 저 멀리 눈꽃송이처럼 보이는 하얗고 동글동글한 점들이 보였다. 뭘까 저건. 정상 근처 길 가장자리에서 양들을 만나고 나서야 그것들이 풀을 뜯어먹는 양들이란 것을 알아챘다.

바람에 저항해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먼 곳부터 크기를 가늠할 수 없던 거대한 산으론 목적지에 가까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길과 양들을 지표 삼아 정상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뒤돌아보면 저 멀리 광활한 평야만이 '먼 곳에서 떠나 여기까지 왔어'라고 말해준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있는 지금의 시간이 선명해진다.

정상에 올랐다. 거대한 땅이 우릴 둘러싸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풍경에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텨를 눌렀지만 내 실력으로는 도무지 이 웅장함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결국 카메라를 내려놨다. 정면에 마주하고 그냥 앉아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감당할 수 없는 웅장함, 압도적이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순응, 지금 느끼는 이 커다란 감정은 순응이었다. 대자연이 주는 경외감에 저항하지 않고 마음을 풀자 땅의 고동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