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글 주민들의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
더블린에서 서남쪽 끝자락, 차로 약 4시간을 달려 항구마을 딩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목포쯤 될까. 원래 이곳은 계획에 없었지만 니스에 어느 카페 매니저에게 딩글을 적극적으로 추천받았다. 전체 여행 동선이 너무 벌어져서 조심스러웠지만 아일랜드 출신인 그의 말을 믿고 무리해서라도 일정에 넣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딩글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깎아내리는 깊은 절벽을 따라 이어진 해안도로 풍경이 제일 먼저 우리를 환영했다. 딩글을 지나쳐 길을 따라 올라가 20분 정도 떨어진 숙소, 어퍼컬케인으로 향했다. 거대한 브랜던 산을 등에 지고 양떼 목장 초원이 저 멀리 대서양 바다를 향해 펼쳐진 아름다운 촌락이다. 호스트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할아버지 집 같은 친숙한 숙소를 안내받았다. 긴 이동에 피로가 쌓여 일찍 잠들었다. 밤새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집이 날아가는 줄 알았지만 무겁게 눌린 피곤함에 곧 다시 잠들었다. 날이 밝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짙고 낮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딩글은 작은 부둣가를 갖고 있는 항구마을이다. 마을에는 3층을 넘지 않는 작고 아담한 건물들이 알록달록한 톤 컬러를 칠하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토록 화려한 색채를 가지게 된 이유는 뱃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바다 저 멀리서부터 자기 집을 잘 찾기 위해서다. 그들의 색채는 이제 마을의 얼굴이 되었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항구마을, 딩글을 완성했다.
첫 식사는 역시 아이리쉬 소울푸드, 피쉬앤칩스다. 잘 갖춰진 가게보다는 노상 푸드트럭을 찾았다. 시크한 젊은 청년에게 피쉬앤칩스 두 개를 주문했다.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밈이 생길 정도로 흔한 메뉴지만 갓 잡은 흰살생선 필렛으로 튀긴 튀김과 감자칩은 기름지고 담백한 맛이 조화롭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리다. 문제는 어딜 가도 피쉬앤칩스 밖에 없는 것이 문제.
딩글은 작지만 모든 것이 넉넉하게 잘 갖춰졌다. 양모직조가게, B&B를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 대형 직거래 마트, 아이스크림가게, 레코드샵, 양조장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그 중 특히 작은 펍을 찾아다니길 좋아했다. 지역 위스키 딩글을 포함한, 킬베건, 틸링, 레드브레스트 등 우리나라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아이리쉬 위스키를 섭렵했다. 매일을 기분 좋게 취했다. 양떼 목장을 크게 돌아 산책하다 보면 금세 술이 깬다. 해가 질 때면 저 멀리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딩글의 시간을 즐겼다.
1983년, 야생 돌고래 무리 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해 딩글 앞바다에 출현했다. 딩글 어민들은 그 돌고래에게 푼기(Fungie)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오랜 시간 동안 교감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딩글의 명물이 되었다. 푼기는 우리가 딩글에 오기 2년 전까지 약 40년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러 딩글의 돌고래 투어는 3~4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관광객들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경부터 1~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제한된 인원수만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이미 오래전부터 푼기와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터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최소한의 간섭으로 약간의 관광수입을 얻음으로써 자연과 사람 사이의 적정거리를 유지해 지속 가능한 관광을 운영하는 점에 놀랐다.
딩글 주민들은 2020년에 사라진 푼기를 지금도 그리워했다. 그렇다고 40년간 지속된 교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푼기로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남아있는 돌고래 무리가 이어받았다. 지속가능한 딩글 바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