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me, 연근조림, 제철 채소, 요리
<2025년 D-63> 식탁에 제철 채소 하나, 10월 30일 목요일
한동안 우리 집에는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막 지은 음식에서 나오는 따뜻한 김을 본 적도 오래였다.
요리를 하면 오감이 반응하는 데
한 동안 내 오감은 집밥을 먹지 못해 둔감해져 버렸다.
요리하는 동안 신선한 재료를 만지면 싱그러움이 손으로 전해진다.
칼질하는 도마소리, 따뜻한 밥이 준비됐다는 댕댕댕- 소리에는 온기가 있다.
갓 지은 쌀밥의 고소한 향과 더불어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퍼지면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집' 같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는 눈은 집밥의 정성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냉동식품을 냉장고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게 더 급했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아침에 일어나면 지각을 면하려고 허둥지둥 다급했다. 당
연히 여유로운 아침 식사는 꿈도 못 꿨다.
요리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준비부터 정리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니 계속 일어서 있어야 한다.
음식을 망치지 않기 위해 엄청 집중하지만
처음 해보는 요리가 매번 성공하진 않는다.
요리했는데 맛이 없으면 그것만큼 서글픈 것도 없다.
똑같은 음식을 5번만 해봐도 실력이 아주 일취월장할 텐데
나는 그렇게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몸은 느낀 것 같다.
'아무거나 먹지 마'라고 신호를 줬다.
냉동식품이 질리고 심지어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가 물렸다.
건강한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갈한 한식을 먹어야 몸도 마음도 치유될 거란 믿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엔 못해도 시간이 되는 날엔 꼭 요리한다!
보통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음식을 먹지만,
하루쯤은 날을 잡아, 내가 만든 음식으로 정돈된 한 상을 먹고 말 테다!
결심 후 한 첫 요리는 제철 뿌리채소로 만든 '연근조림'이었다.
단순히 굽고, 튀기고, 데치는 반찬이 아닌 만큼
굳은 결의가 생겼다.
껍질이 깎여 진공상태로 포장된 연근도 있지만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고 싶어 농부의 손에 포장된 연근을 골랐다.
인터넷으로 본 레시피 3-4개를 숙지한 후
나만의 연근 조림을 시작했다.
껍질을 벗기고,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을 끓여 데쳤다.
데친 연근을 기름에 볶다가 다시마까지 곁들여 양념에 졸이기 시작했다.
양은 적게 했다.
집밥도 잘 못해먹는데 한 번에 많이 해서 먹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 나는 입이 짧다.
같은 반찬을 여러 번 먹으면 금방 물리니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정성스럽게 해서 맛있게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소량의 연근조림을 탄생시켰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고
심지어 남편은 반찬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는 극찬을 해줬다.
요리를 싫어했던 게 아니다.
그저, 스스로 해 먹을 에너지가 없어서 포기했을 뿐이다.
여유가 있어야 정성을 들일 수 있고,
정성이 담겨야 음식도 제 맛을 낸다.
잘 먹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를 채우려면 또 잘 먹어야 한다.
먹는 일과 에너지는 서로를 물고 도는 순환 같다.
그래서 결심했다.
제철 채소를 놓치지 않고,
한 계절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공략해 먹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