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11-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 소설) #내말에공감해줘
나는 속상하고 억울할 때 입술을 단단히 밀봉한 채, 눈으로만 감정을 표현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눈 찢어지겠다. 눈 돌아가는 거 봐라-"
그 옆에 앉은 더 얄미운 오빠는 "저봐, 저봐, 쟤 또 저런다"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 당시 엄마와 오빠의 목소리는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울린다.
엄마의 말을 부추기는 오빠의 밉살스러운 표정이 얼마나 짜증 났던지
오빠 몰래 오빠가 아끼는 운동화를 야금야금 밟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티 나게 밟으면 꼬리가 밟힐까 싶어,
조금씩 소심하게 밟았던 어린 나이의 내 억하심정은
내 말에 공감 없는, 영혼 없는 엄마의 대답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주장했다.
난 사실을 말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들어줬다.
적어도 엄마는 진짜로 자신이 영혼을 다해 들어줬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안싸움 광고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그러나 돌아오는 건, 메아리치는 내 울음소리와 아픈 목, 그리고 탱탱 부은 두 눈덩이였다.
특히 울음이 터지면, 네 방에 들어가서 울라는 엄마의 명령 아닌 명령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아- 우는 건 나쁜 거구나.
내가 울면 아무도 달래주지 않구나.
나는 정말 엄마 말처럼 별거 아닌 일에도 울음을 터트리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속 좁은 아이구나.
그 생각을 하면 더욱더 마음이 답답했고, 어디에도 토해내지 못한 그 화는 송곳이 돼서 나를 찔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뾰로통한 입술에 "입 튀어나왔다"라고 말하지 않고
분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내 두 눈에 "눈 또 돌아갔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시절 내가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던 따뜻한 한 마디는 그저
'그랬구나, 그래서 힘들었겠네' 이 정도였을 뿐인데, 그건 큰 욕심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엄마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고싶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무엇을 줬을 때마다
엄마 생각은 어떠냐 하며 마음을 묻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엄마만의 논리 정연한
공감 없는 말에 또다시 화를 내고.. 뫼비우스 띠가 따로 없다.
어른이 돼도 여전히 그 강도와 빈도는 줄었지만
나는 아직 인정이 고프고 사랑이 고프다.
엄마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과거의 엄마를 떠올리지도 않고
오직 지금-여기에 있는 엄마만을 생각하며
말을 걸 수 있다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 걸 거다.
그런 순간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거 보면
나도 나이가 들면서 철도 들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며,
점점 마음이 넓어진 게 아닐까.
하지만 드문드문일뿐,
마음에 여유가 없거나 힘이 들면
엄마를 찾으면서도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통화 연결음을 듣다가도
금새 정신차리고, 통화연결음을 부랴부랴 끈다.
이젠 둘 다 힘이 없어서
고래고래 소리도 못지르고, 화내며 울기도 힘들다.
그럼 또 내일을 맞이하는 내가,
그리고 나이 든 엄마도 너무 힘드니까.
우리는 서로 통화를 머뭇거리며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