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침대, 능력, 가짜
집-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협소한 세상에,
소녀에게 최고의 자극은 침대에 몸을 맡긴 채 모바일 세상에 접속하는 것이었다.
심장에 해로울 정도로 짜릿한 도파민이 피를 타고 돌아다녔다.
H의 음악, 춤, 예능, 라디오방송, 팬과의 '위투게더 라방'은 소녀의 시력을 희생시킬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의 능력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천재돌이라 불릴 정도로 밀도 있는 다재다능을 보여줬던 'H'였는데 그건 다 가짜였을까?
어디까지가 H의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AI의 기술이었을까?
그의 표절 논란은 AI저작권에 대한 법률이 미비한 사회의 시한폭탄 같은 자극적인 소재였다.
이를 필두로 'H'의 이름을 딴 AI저작권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운동과, 여러 전문가들이
뉴스에서 줌인돼서 인터뷰되는 영상은 이제 심심치 않게 티비를 틀면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국어선생님은 이 주제가 재미있는 토의주제라며 다음 국어 토론 시간엔 H의 이름을 딴 AI저작권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공지하셨다. 참고자료로 소녀가 봤던 인터뷰 영상이 교실 티비에 나왔다. 이색적이었다. 소녀가 좋아하던 무대 영상 한 짤이 희미하게 배경화 된 뉴스가 생경했다.
선생님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소녀는 하나도 재미없었다. 열렬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도 안 정했다. 아니 못 정했다.
그의 사주를 분석한 너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숏츠는 요즘 새삼스럽게 [소-오-름 돋게 예언한 점집]이라며 돌아다니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건 너무 실감 났다.
"H 인물 좋지! 다재다능하고... 이 한자를 풀이하면 말이야. 어디보자.. 세상에 망신살이 2개나 있네.
체면 깎일 일이 생기겠어. 그게 뭐지는 모르겠네. 여자문제일 수도 있고 돈문제일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명예에 큰 화를 입어. 부끄러워서 이를 어째.. 그게 언제냐고? 얼마 안 남았는데?"
처음 그 숏츠를 봤을 땐 '옛날 해석이야 그렇지~ 요즘 세상에 망신살은 잘만 쓰며
예술가로 사람들에게 이름 날리고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거잖아.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 점집 아주머니는 공부를 헛했네' 라 생각했다.
소녀도 사주팔자가 궁금했었다. 엄마가 이모랑 이야기하는 걸 자주 엿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언니와 한참 싸울 때 이모에게 자주 전화를 했다.
"미치겠다 정말 - 얘는 무슨 팔자야 정말? 제대로 사주 보는데 한 군데 더 가봐야겠어. 답답해.
뭘 해서 먹고 사는지 알아야겠어. 이과인지 문과인지도 물어보고 대학가라고 할걸.
이제 와서 공무원은 죽어도 싫다네. 못된 계집애.
내가 걔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진짜. 그나저나 내가 얘를 몇 시에 출산했더라? 기억이 잘 안나네.
언니 기억나? 언니 퇴근하는 길에 내가 급하게 택시 잡고 언니한테 전화했었잖아. 애 나올 것 같다고 아프다고. 그게 언제였지?"
그때부터 소녀는 자신의 사주도 궁금해졌다. 사주란 내 미래를 볼 수 있는 주문인가?
사주를 보려면 태어난 시간을 알아야 하는구나를 그때 깨달았다.
그런데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이 몇 시에 태어났냐고 물어보는 것도 귀찮았지만
언니가 태어난 시간도 모르는데 둘째인 자신의 시간을 알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장을 모아두는 파일에서 자신의 출생증을 발견했다.
평상시엔 관심도 없었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엔 자신이 태어난 시간이 적혀 있었다.
옳다고니, 잘됐구나 싶어서 바로 모바일 앱 사주창에 자신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넣어봤다.
이상한 한자 8개가 떴고 알아볼 수 없었다. 쓰윽 쓰윽 창을 옆으로 넘기는데 '살'이 보였다.
"망.. 신.. 살?" 뭐야, 무슨 망신당하는 사주야?
그 후부터 소녀는 친구들과 에피소드가 생길 때마다, 학교에서 성적이 뚝뚝 떨어질까 봐 걱정될 때마다
자신 옆에 붙어 있는 이 망신살 때문인가 싶어서
인터넷을 다 뒤져 찾아봤다. 그리고 드디어 이런 문구를 찾았다. 좋은 문구!
*대중적 주목과 인기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SNS나 미디어에서의 노출처럼 망신살이 사회적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해 성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창의성과 혁신의 자극
-예상치 못한 피드백이나 드러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접근 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는 현대의 창의적 직업이나 프로젝트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 망신살이 그 망신살이 아닌 거다.
그렇게 H와 나는 망신살로 하나가 됐다.
망신살 동지. 그래서 H가 잘 되면 소녀도 기분이 좋았다.
나도 언젠가 H처럼 빛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새로 업데이트된 최다 라이킷 댓글은 말한다.
웃기네, 얘 나이 속였잖아. 이게 사주가 맞는 거냐? 근데 망신은 확실이 망신이긴 하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