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서 벗어나기 DAY14, 1인칭 마음챙김 #소란함의 위로
속이 시끄러울 때 조용함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
소란함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지금은 안팎으로 시끄러운 세상이다.
마치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 같은 시시각각 뉴스에 현기증이 난다.
내가 지금 예능을 보고 있는 건지,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지,
이게 정말 뉴스인 건지 헷갈린다.
내가 지금, 여기 2024년 한국인으로서 살아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야 함을 알기에 '계엄'이 불안하고 걱정되고 두렵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내가 당한 불합리함에 침묵했던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을 때다.
코 옆에서 침묵했던 자들이, 자기들끼리는 안심하며 웃고 있는 소리가 지금도 나에게
공황을 일으킨다.
자신들의 입신양명만을 생각하며 기회를 엿보고, 자신의 체면을 위해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말 못 할 과거가 있겠지 하며 사정을 이해하려 했으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불의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세상이 사악하게 보였다.
그러나 불의에 맞서지 않았으면서 체면 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정의로운 척하는 걸 보면 기겁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면서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쫄보여도, 겁보여도, 눈물이 나고, 잠이 안 오고, 손이 떨려도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나에겐 지켜야 할 내 가치가 있으니까.
그때, 나와 같이 으르렁 대줄 단 1명이라도 있었다면 난 사무치게 외롭지 않았을 거다.
세상이 사악하다 생각하며 마음이 멍들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 나 혼자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이 으르렁 대줄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집에 모셔놓았던 소중한 최애의 응원봉에 메시지를 붙이고 나온다.
역사를 책으로 배운 세대의 나는
역사를 팩트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감각'으로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나의 일상,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잠깐의 일탈을 생각한다.
소심한 쫄보와 겁보도 움직이게 하는 날개는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바로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일 거다.
심지어 쫄보와 겁보는 공포를 만들어, 교과서를 잃어버려 국가의 검열대상이라는
말도 안되는 악몽까지 꿨다.
브런치에서 시작한 책 '어떻게 취향은 계급이 되는가'의 에필로그의 말이 떠오른다.
[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소음이 되세요. 개별적인 인간은,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소음이 될 수 있어요. ]
슬프고 무서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폭력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감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써진, 소설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탄 2024년에
계엄이라니.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일탈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불합리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같이 으르렁 대줄 사람들을 찾는 것.
이것도 나를 위한 돌봄이다.
불안에 떨고, 걱정하는 자가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온정으로 느끼는 것.
이것도 나를 위한 돌봄이다.
돌봄도 장비빨이다. 발열내복, 핫팩, 그리고 응원봉.
어쩌면
지금은 소란함이 위로가 되는 시간일지도.
TMI : 나는 애정하는 밴드 '소란'의 응원봉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