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16-같은 엄마, 다른 엄마(짧은 에세이적 소설) #다정한무관심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다정한 관심이 필요했다.
도덕 책 속에 나오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산책을 할 땐, 손을 잡아주고
자연스러운 마중과 배웅에서 서로의 품을 느끼고
사랑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는 사이였으면 했다.
엄마는 살기 힘들었나 보다 -
나에게 줄 다정함이 없었나 보다-
마음 곳간에 구멍이 나 있었는지 내 손을 피했고, 내 입을 피했다.
울면 방에 가서 울으라 했고
짜증내면 눈 돌아갔다며 세상에서 제일 나쁜 아이라며 손가락질받았고
많이 먹으면 뱃속에 거지가 들어있냐고 들었다.
학대는 아니었다.
나는 물질적으로 지원을 받았고
엄마의 옷걸이가 되어 옷이 입혀졌고
낮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아빠와의 관계에서 서러운 감정을 엄마는 나에게 부었고
언니와의 관계에서 배신이 느껴진다며 너는 그러지 말라고 나를 붙잡아 하소연을 했다.
이제와 드는 생각은
엄마는 도덕책에서 보는 딸을, 드라마에 나오는, 예쁘고 말 잘 듣는 딸을 그리워했나 보다.
엄마가 잔소리하면 짜증을 내는 대신 "응, 엄마 말이 맞아" 하고 대답해 주는 딸을
엄마가 실수를 하면 "응, 괜찮아."하고 너그러이 넘어가주는 딸을
말하지 않아도 뭐든지 알아서 척척하는 딸을 원했나 보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어떡하냐.
이 나이 돼서 바뀔 수 없다. 날 왜 바꾸려 드느냐.
나는 그런 딸이 될 수 없어요.
나는 엄마보다 어른이 아니거든요.
나는 완벽한 딸이 아니거든요.
예쁘고, 날씬하고, 돈도 많고, 성격도 털털하고, 똑똑한 딸이 아니에요.
그만 날 놔주세요.
그리고 연민, 후회, 안쓰러움의 눈빛으로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며 꺼내려던 그 말을 그냥 넘어가주세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다정한 무관심이에요.
옛날처럼 관심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엄마는 엄마대로 잘 살고,
나는 나대로 잘 살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자립과 독립을 하며 살아요.
자책과 죄책으로 서로를 물들이지 말고
그냥 우리, 알아서 잘 살아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