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언맨으로 바뀌는 중인 건가?
밴프투어를 마치고 캘거리 시내로 가서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우버기사는 흑인혼혈인데 영어를 아주 잘하진 않았지만 너무 친절하다. 호주 퍼스에서도 우버를 몇 번 탔지만 친절하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는데 캐나다는 아무리 우울해도 행복해지게 하는 친절이랄까..
밴프 가기 전날 캘거리에서 음악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 출입문을 관리하는 흑인직원이 있었는데 그도 얼마나 친절하던지 함께 사진이라도 찍어 남기고 싶었지만 사춘기 딸아이에게 또 한소리 들을까 봐 접은 적이 있다.
딸아이도 평생에 처음 만난 흑인인데 얼마나 친절하고 표정에 착함이 흘러넘치던지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흑인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나갈 땐 다른 문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표정과 친절한 안내를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다시 그쪽으로 갈 정도였다.
공항에서 남은 햄버거를 먹어 치우고 티켓팅한다.
내 물품을 스켄하기 위해 회색 사각 용기를 컨베어벨트에 올린다. 또 흑인직원이다. 입으로 치유음악이라도 만드는 사람인지 언어가 감동적일 정도로 인상적이고 친절하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깝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녹음이라도 해서 학습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제 신체를 스켄하러 기계에 들어간다.
일 년에 몇 번씩 비행기를 타는 나는 몸에 금속은커녕 옷에도 금속이 전혀 없는 상태로 간다. 바지는 무조건 훅도 없는 고무바지로. 성가신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밴쿠버에서 올 때도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캘거리를 떠날 때 내 몸 검색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오른쪽 가슴에 붉은색이 표시되어 재체크 대상이 된 것이다. 흑인 남자직원은 여직원을 부른다.
두꺼운 후드티를 하나 벗고 다시 기계에 들어가 검사하니 어라..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가슴 양쪽이 모두 붉게 표시된다.
백인 여직원은 친절하게 기계로 세부검사를 할지 자신이 직접 하게 할지 내게 선택하라고 한다. 1000% 기계 오류임을 확신하기에 그냥 직접 손으로 검사해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아이언맨이 되는 중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직원 두 명은 가끔 브라 때문에 기계가 잘못 인식하기도 하니까 걱정 말라며 안심시키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내 몸을 만져본다.
바로 전날 똑같은 옷을 입고 밴쿠버에서 왔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을 알려주니 그들도 의아해하며 기계오류를 인정하고 웃으며 보내준다.
우리가 탈 비행기의 게이트가 너무 멀리 있다. 달려야 한다. 한 시간 정도 뛰었나? 기분 탓인가.. 좀 오래 달린 기분이다. 몸 검색에서 두꺼운 후드티를 벗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뛰게 되어있음을 미리 알고 후드를 벗게 하신 건가 싶다. 그래도 땀이 난다. 후드티까지 입은 상태로 달렸으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을지도..
짧은 비행을 마치고 다시 밴쿠버로 복귀다. 밤 9시다. 공항에서 나가는 지하철은 만원이다. 우리는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서 마약중독자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길을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
사람들의 상태와 길의 상태를 보다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나는 안경을 쓴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보인다. 그래도 주변에 사람들이 워낙 많아 걱정은 돼도 무섭지는 않다.
정작 그들은 구부러져 있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앞만 보고 간다. 마치 그냥 자연스러운 풍경이라도 되는 듯 아니면 중독자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특수 렌즈라도 낀 듯 정말 아무렇지 않게..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눈앞에 보인다. 달려가니 버스 안의 젊은 백인 여자가 시크하게 자기 우산으로 버스 문을 건드려 센서 문이 닫히지 않게 해 준다.
고맙다고 말하기엔 너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어 우리도 그냥 모른척한다. 그녀는 우리보다 먼저 내렸는데 내릴 땐 기사를 향해 크게 "thank you!" 하고 간다.
이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11시에 걸어도 무섭지 않았던 주택단지였는데 트라우마일까.. 집도착 직전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서 내려 우리와 같은 길을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으로 혼잣말을 하며 앞서가는 젊은 백인남자와 최대한 거리를 둬가며 집을 향한다.
집에 도착해서는 큰 아이에게 당부한다.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