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오픈한 전국 최초 공립 연제만화도서관,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고향땅 부산에 볕 들 날이 없다. 아이들 울음소리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청년들은 너도나도 부산을 떠난다. 노인과 바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간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한국 최초의 광역시, 대한민국의 최대 무역항 도시인 부산은 이대로 저무는 것일까.
이런 내 걱정에 공감한다는 듯, 최근 부산에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오픈런도 불사하지 않는다는, 부산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방문이 이어지는 이곳은 연제구에 위치한 '연제만화도서관'(6월 20일 개관)이다.
만화책만 3만 권, 전국 최초의 공립 만화도서관
연제만화도서관은 올해 6월 말 건립된 '전국 최초의 공립 만화도서관'이다.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만화를 볼 수 있고 인당 5권까지 대여도 가능하다. 이곳에는 교육용 만화를 포함해서 무려 3만 권이 넘는 만화가 구비되어 있다.
도서관은 연면적 2천 제곱미터가 넘는 4층 건물이다. 1층은 만화라운지와 복합공간인 '들락날락'이 있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머물기 좋다. 한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한쪽에는 신발을 벗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층은 '만화의 숲'이라고 해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와 고전만화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이곳에는 '베드열람석'이 있는데, 한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벗어나기 싫은 비주얼이다. 워터파크의 선배드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 녀석은 시민들로 하여금 '오픈런'을 하게 할 만큼 인기가 좋다.
3층에는 문화 프로그램 강의실과 웹툰창작실이, 4층에는 다목적홀이 있다. 태블릿과 안경, 보청기 등 책과 영상 시청에 도움을 주는 비품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만화도서관을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삼매경에 빠진 듯 독서 중이었다. 글책이 아닌 만화책이 가득한 공간이라서일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해맑은 얼굴로 만화를 즐기고 있었다.
일반 도서관의 경우 <흔한남매>와 같은 인기 만화책은 쉽게 빌리기가 힘들다. 오래된 책의 경우 책이 해어지거나 찢어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어린이 도서보다는 일반 도서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고 싶은 책보다는 '볼 수 있는 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
만화도서관은 달랐다. 사방천지가 만화로 가득했다. 어릴 때 즐겨봤던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은 물론, 최근에 즐겨보는 웹툰까지 좋은 컨디션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아마 이곳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 이렇게나 볼 게 많은데 도대체 뭐부터 봐야 하지?'
만화도서관은 내가 어릴 때 가던, 지금도 볼 수 있는 '만화방'과는 많이 다르다. 쾌적하고 깔끔한 환경, 크고 편리한 시설은 칙칙하고 낡은 만화방의 분위기와 대비된다. 무엇보다 무료다. 연제구에서 운영하는 만큼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마음껏 만화를 즐길 수 있다.
첨단 시설도 갖추고 있다. 317인치 대형 미디어월, 만화 EX존(실감형 체험), VR만화감상, 고전만화를 반응형 콘텐츠로 구현한 디지털미디어북 등 다양한 스마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쓱쓱 그려+방'에서는 디지털 드로잉 장비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미디어감상존에서는 국산 OTT인 웨이브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도서관 바로 앞에는 '다방커피'라는 카페도 있다. 이곳은 '부산연제시니어클럽'이라고 해서 노인일자리지원기관으로 지정받은 노인복지시설이다. 나는 만화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이곳을 찾는데, 국민커피인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돈 15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많은 시민이 도서관을 방문하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구매하게 되면서, 비록 많지는 않지만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꼭 만화를 보지 않더라도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푹푹 찌는 듯한 무더운 요즘 날씨는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대형 카페도 좋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 최초 공립 만화도서관, 만화책 3만 권, 쾌적하고 깔끔한 시설은 다른 지역 주민의 발걸음도 이끈다. 이곳이 복합 쇼핑몰이나 맛집이 아닌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고,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부산에 생겼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맨날 간다 도서관!"
만화도서관 근처에 사는 친구는 아이들 하교 이후 매일같이 도서관에 간다. 자녀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책을 보며 그곳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새로운 재미 앞에선 핸드폰도 잠시 안녕
"아빠, 나 여기 있으면 평생 폰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아!"
4학년 딸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만화책을 잔뜩 쌓아놓고 말했다. 공부와 관련된 책이 아니라면 어떤가. 어떤 책이든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준다면, 무엇이든 오케이다.
아이들이 핸드폰에 잠식되어 간다. 부모와의 대화, 친구들과의 놀이, 자신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의 자리를 모바일기기가 대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도서관은 한줄기 빛처럼 느껴진다. 잠시나마 핸드폰을 내려놓고 만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니, 부산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 더 밝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만화도서관을 간다면 자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추천한다. 층마다 70석 정도의 좌석이 있는데, 도서관에 방문했을 당시 체감상 700명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폭발적인 시민들의 반응으로 주차장이 많이 혼잡한 편이다. 주차장 입구가 대로변이 아닌 언덕길에 위치하고 있어, 초행길인 경우 주차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휴가철이다. 만약 부산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연제 만화도서관 방문'을 적극 추천한다. 나 같은 '만화덕후'라면 만화도서관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도서관 이외에 방문할 곳도 많다. 연제구 연산동에는 국밥, 밀면, 칼국수, 순대 등 다양한 로컬 맛집이 있으며, 반경 4km 이내에 핫플레이스인 서면, 광안리 해수욕장, 센텀시티, 부산시민공원 등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부산에 이런 시설이 생겨서 너무 좋고 감사하다. 더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지역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더 많은 시설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