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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낙이 없는 청춘들에게 추천하는 책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by 손수제비


좀처럼 책을 두 번씩 읽지 않는다. 나의 경우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읽거나, 분명 읽었음에도 눈 녹듯이 내용이 사라진 경우 책을 다시 펼친다. 책 <두근두근 내 인생>은 출간 14년 된 김애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직접 사서 읽은 책이고, 책을 읽은 느낌이 좋아 2명 이상의 지인에게 선물도 해줬지만, 안타깝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났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책을 다시 구매해서 읽었다.

IE003507298_STD.jpg 책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14년 전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었을 당시에는 김애란이 누군지도 몰랐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꿈과 희망이 느껴지는 타이틀, 없는 감수성도 솟아오를 것 같은 표지디자인에 나도 모르게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40이 넘어 책을 다시 읽으며 또 속아버렸다. 워라밸 따위 1도 없는 직장인으로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나, 주인공의 삶은 설렘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것.


책 <두근두근 내 인생>은 열일곱에 아들을 낳은 미라와 대수, 그들의 아들인 '아름'의 이야기이다. 둘은 오랜 고민 끝에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자녀를 출산하는데, 아이는 조로증이라는 생소한 질병을 갖고 태어난다. 이 병은 겉모습의 노화뿐만 아니라 신체와 장기의 노화도 동반하기 때문에, 아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보다 훨씬 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대수와 미라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름을 치료하기는커녕 삶을 영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처가살이하는 대수는 공사판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보다 못한 대수의 장인이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스포츠용품가게'를 차려주지만, 이 또한 문을 닫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친구조차 없는 아름은 오히려 이런 부모를 위로한다. 충분히 절망적일법한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주위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름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인데, 죽기 전 자신이 쓴 글을 부모에게 읽어달라고 하는 장면은 지금도 참 먹먹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1년이 아닌 2025년이라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의료기술이 좋아서 출산 전 다양한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될 경우 그 생명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제거될 수 있다. 만약 아름에게 질병이 있다는 사실이 미리 밝혀졌다면, 17세의 불안한 대수와 미라는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아름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심장질환이 있음에도 입원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우연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나누는 부모의 대화를 엿듣고는, 부모에게 졸라 엄마 친구인 수미를 통해 '이웃에게 희망을'이라는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부모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그들을 설득하는 아름에게서, 자신의 치료보다는 '치료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더 신경 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방송출연 이후 아름은 '이서하'라는 또래 여학생과 펜팔을 하게 된다. 그녀도 아름과 같은 17살이었고, 동일하게 아팠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했다. 둘은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친밀해진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서하는 '36살 작가지망생 남자'임이 밝혀진다. 이로 인해 얼마 남지 않은 아름의 삶은 반복적인 게임과 분노, 냉소로 채워진다.


이쯤 되자 진심 화가 났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직접 밝혔듯 '20대의 소설은 주로 1인칭이고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작가 자신이 조로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집필하는 당시에는 본인이 곧 아름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았을 텐데.


아름에게 서하라는 존재는 가장 강렬하면서도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아름에게 한 번쯤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할 법도 한데. 작가의 잔인함에 너무 화가 났다. 도대체가 아름답지 않은 생의 주인공이 '아름'이라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설렘이라고는 없는 삶인데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니. 이런 작가라도 괜찮다는 듯, 아름은 끝까지 착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 눈이 멀고 나서야 평소에 내가 아빠 얼굴 보는 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았어요." (p319)


"가끔 궁금했어요. 엄마랑 아빠랑 … 내가 병들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우시진 않았을까." (p321)



<해피엔딩 따위는 없지만>


김애란 작가의 책 중에서 <바깥은 여름>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하나같이 상실과 아픔을 소재로 한다. 나는 이 작가의 무덤덤해 보이는 듯한 시선이 참 좋은데, 책에 빠져들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과하지 않는 글은 오히려 몰입감을 더 높인다.


<두근두근 내 인생>또한 마찬가지이다. 생소한 질병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하기만 할 것 같은 아름의 삶을 작가는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시리도록 아프게, 때로는 심드렁하게. 그녀는 아름의 삶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17세의 나이에 아이를 덜컥 가진 대수와 미라, 조로증으로 평생을 고통받는 아름,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름의 친구이자 60세인 장 씨 할아버지. 누구 하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최악에 가깝다. 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더 와닿는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17세 부모, 삶 자체가 고통과 외로움으로 가득한 아름, 돌봄의 취약지대에서 90세 노부를 돌보는 60세 장 씨 할아버지.


책을 읽으며 문득 학생들과 청년들이 떠올랐다. 끝없는 경쟁과 불안한 미래라는 거대한 벽에 갇혀 가장 빛나는 시기를 움츠려 보내는 저들이. 열정과 행복보다는 냉랭함과 불안에 하루하루 익숙해져 가는 저들이. 돈이 아니면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고 자란 저들이, 그저 하루를 살아간다는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아름의 삶을 '두근두근한 인생'이라 말한다. 건강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누군가는 여전히 가슴 뛰고 설레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안타깝고 쓸쓸한 이 책을 청년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인생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또한 설레고 가치 있는 삶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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