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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누구보다 강한 검사 이야기

박은정의 <징계를 마칩니다>를 읽고

by 손수제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가 다르고 급여의 크기로 개인의 가치가 결정된다. 어떤 직업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까지 대한민국 NO.1 권력층이었던 검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IE003510317_STD.jpg 책 <징계를 마칩니다> 표지 ⓒ 안나푸르나


'검사'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권위적이고 힘이 있는 조직이라는 느낌이 든다. 검찰의 기소를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법의 처벌을 받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검찰은 언제나 절대 권력층으로 등장한다. 만약 지인 중에 유능한 검사가 있다면 꽤나 든든하지 않을까?


24년 동안 검찰의 삶을 살아온 박은정(현 국회의원)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다른 국가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검사 또한 기소와 수사 업무를 수행할 뿐 특별한 권력을 가진 계층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일반인에게 '국가의 권력을 공식적으로 위임받아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사람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검사는 어떤 일을 하는가


책 <징계를 마칩니다>는 평범한 검사로서 검찰총장을 감찰한 박은정 검사의 이야기이다. 변호사가 쓴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검사가 쓴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검사라는 조직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읽었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검사의 업무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검사는 '사실을 밝히는' 사람이다.


검사의 직무는 진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다투는 것이다. "내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어"라고 마음먹는 순간 감정이 실리고 자기 판단이 앞서게 된다. 그런 마음은 사실을 밝히는 거센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진실 중에는 가짜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실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그 판단은 검사의 몫이 아니다. - p40


검사라는 조직은 위계질서가 강하고 보수적인 집단이지만, 왜소한 체구의 지방 출신 그녀는 검사가 직업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다고 한다. 잘못되고 망가진 것을 제대로 되돌리는 것, 무언가를 '바루는 행위'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바루는 일'이다. "비뚤어지거나 구부러지지 않도록 바르게 하다"는 뜻이다. 검사의 일도 내겐 마찬가지였다. 매일 책상 앞으로 찾아오는 사건들은 일종의 망가진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때려 상해를 가한 사건이든, 누가 누구의 것을 훔쳐 경제적 피해를 입힌 사건이든 나의 일은 망가지고 삐뚤어진 것을 똑바로 바루는 일이었다. - p81


검사는 맡은 일을 수행하는 공무원일 뿐이지만, 권력을 갖게 되면서 점점 부패하게 되었다. 업무 특성상 독립성을 보장받고, '처벌'과 직결된 일을 하기 때문에 쉽게 힘을 키울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는 검사가 타락한 이유를 명확하고 분명히 밝힌다.


사실 역사적으로 검찰의 권한은 과도한 경찰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주어졌다. 경찰의 수사 권한을 통제하고 법원을 견제함으로써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검사 본연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방기하고 검사들이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계속 확대하며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검찰은 윤석열 정권이라는 괴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연성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 p84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게 된 지난 70년 동안 그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독점적 권한을 누려왔다. 어떤 권력도 견제 없이 독점하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윤석열이라는 괴물 정권의 탄생으로 재확인되었다. 검찰 권력의 끝판왕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가 시스템을 망치고 국민의 존엄을 묵살했나.

이 안타까운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 권력이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분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검사가 평범해져야 한다. 나의 검찰 개혁은 검사가 동사무소 직원처럼 평범한 공무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p283


호랑이 굴로 들어가기를 자처한 검사


IE003510318_STD.jpg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에 대해 전직 검사 두 명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박은정, 서지현) ⓒ 한겨레신문


마니토라는 게 있다. 그룹 내에서 한 사람을 선정해서 몰래 챙겨주는 일종의 '비밀친구'이다. 그 사람에게 어려움은 없는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도와주는 것. 지금은 20년도 더 되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마니토였음을 밝히며 편지와 선물을 건네주었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박은정 검사는 어찌 보면 '마니토'같은 업무를 했다. 누군가를 챙기고 돕는 것이 아닌 '감시 감독'이라는 점에서 달랐지만 말이다. 감찰담당관으로서 '검찰총장 감찰'이 그녀의 주 업무였다. 그녀는 검찰총장의 잘못된 행태와 검찰조직의 부패를 바루기 위해, 그리고 검사로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감찰 업무를 맡는다.


당시 법무부 검찰담당관으로서 보신(保身)과 명리(名利)만을 취하며 우리 검찰이 본연의 모습에서 훼절(毁折)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복을 당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저 최선을 다했고, 대한민국 검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일했습니다. - 해임 이틀 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발췌


상대가 누구든 '옳은 소리'를 있는 그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가족이나 가장 친한 친구에게라도 직언하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고 편한 방법을 택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형식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


'옳은 말'을 함에 있어서 제일 까다로운 대상은 '직장상사'가 아닐까. 팀원의 1차 인사권은 팀장에게 있다. 조금 과장해서 회사생활이 팀장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시대에 밥벌이는 생존과 직결되기에, 화가 나더라도 참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수적인 검사 조직에서 검창총장을 감찰한다는 것은 단순한 업무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권력이 막강하고 부패한 조직일수록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검사 생활 24년 차인 그녀 스스로 가장 잘 알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은정 검사는 자신이 맡은 임무인 감찰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기도 했지만, 내가 일하는 곳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야 그곳에서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되지 않겠나. 그 마음은 우리 직장이 비위의 온상으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면 속상하고 부끄러운, 여느 회사원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 p282


감찰의 대가는 컸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감찰에 대한 공식적인 보복이 시작된다.


보수단체에서 윤석열 감찰 과정에 위법이 있다며 나를 고발하였지만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 6월 '혐의 없음'이 명백하다며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그런데 2022년 5월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친윤 특수통인 김후곤이 고검장으로 있던 서울고검은 갑자기 재수사 명령을 내려 나에 대한 기나긴 보복수사의 서막을 열었다.

2022년 6월 말 나는 사직서를 냈다. 윤석열정부에서 검사로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법무부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사직서를 수리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지방으로 발령을 냈다. - p137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압수수색을 명분으로 검사들은 박은정 검사의 집에 들이닥쳤다. 2022년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그녀의 자녀가 집에 있을 때였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밝히지 못하고 당시 상황을 둘러대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복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검사들은 박은정 검사의 친정부모님 집까지 파헤친다. 잘잘못을 따지고 밝히기에 앞서 '빠르고 강압적인 수사'를 통해 절대권력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듯이.


저는 지난 8월 29일 휴대폰을 압수당할 때 "비번을 풀어서"담담히 협조했습니다. 대한민국 검사로서, 부끄럼 없이 당당히 직무에 임했기 때문에 굳이 비번을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뭐가 부족했는지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6일, 노부모님만 거주하시는 친정집까지 압수 수색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모욕적 행태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저는 "수사로 보복하는 것은 검사가 아니라 깡패일 것"이라고 주장했던 윤석열 총장의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다만 그 기준이 사람이나 사건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p116사회를 바루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IE003510319_STD.jpg 가장 먼저 바루어져야 할 대상은 윤석열이다. ⓒ 경향신문


윤석열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면밀히 봐왔을 그녀는 윤석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가 안 되는 사람이다.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 통찰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자기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자기가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소통도 되지 않는다. 질문과 답이 어긋나는 대선 토론, 듣기 싫은 질문에는 어떻게든 보복하는 도어스테핑, 옳은 말을 하면 격노로 화답하는 대화, 그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윤석열을 우리는 보았다. - p179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은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움직인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서류를 받지 않았다. 공수처와 경찰, 검찰의 수사마저 계속 무시했다. 한남동 관저에 숨어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송출됨으로써,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윤석열이라는 존재를 깊이 각인시켰다.


지난 15일 광복절에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측인 자유통일당이 모여 '국가 정상화를 위한 광화문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비공식 추산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윤어게인'을 외쳤다고 한다. 자신과 함께하지 않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총칼을 휘두르는 윤석열'이 그들은 왜 이토록 절실한 것일까. 그들에게 이 책 <징계를 마칩니다>를 꼭 읽어보라고, 이왕이면 정독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루고자 외로운 싸움을 감내한 이 작고 용감한 여성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다. 검찰조직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 만연한 불의와 부패의 뿌리들이 바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은 책 <징계를 마칩니다>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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