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느낀 것들
바다, 돼지국밥, 사투리. 부산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최근 고령화과 저출생으로 지역 전체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만, 먹고 살 게 없다며 너도나도 부산을 떠나지만, 그래도 아직은 고향 땅 부산이 좋다.
부산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야구'이다. 야구는 그야말로 국민 스포츠라 할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야구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한 지인은 마흔이 넘은 부산 토박이임에도 '야구에 전혀 관심 없는'나를 보면서 '양자역학보다 더 까다롭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감히(?) 야구를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내 관점에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정적이다. 공수가 확실한 만큼 경기 내내 뛰어다니는 축구나 농구에 비하면 야구는 상대적으로 얌전한 느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장시간 관람'에 대한 부담이다. 대한민국 사무직 노동자라면 100% 해당되는 허리 디스크 환자에게 '장시간 앉아있는 자세'는 무척 위협적이다. 무려 3시간에 육박하는 경기 시간은 생각만으로도 물리치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압박이 크다.
충격적이었던 첫 야구 관람
"아빠. 나도 야구 보러 가고 싶어."
한동안 조용하던 딸아이가 언젠가부터 야구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실 롯데 팬이라느니 친구 가족은 이번 주에 사직야구장에 가는데 너무 부럽다느니 쉴 새 없이 쏘아댔다. 흥과 파이팅이 넘치는 딸아이와 야구가 무척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대답은 확고했다.
"응. 안 가."
하지만 계속되는 딸아이의 성화에 결국 야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 한 몸 희생해서 가족이 즐거울 수만 있다면 까짓 거 몇 시간 앉아있는 것쯤이야 대수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롯데자이언츠 어플을 먼저 깔아야 해요!"
야구를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예매하는지도 몰랐다. 야구 광팬인 직장 동료에게 물어보니 아주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로그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결국 '나보다 더 야구에 관심 없는' 아내가 예매를 했다.
"당연히 짝짝이는 있겠지?"
야구를 보러 간다는 나에게 다른 직장 동료가 물었다. 짝짝이라니, 그게 뭐지? 30년 전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사용하던 캐스터네츠를 말하는 건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내게 옆자리 직원은 짝짝이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야구를 보러 가면서 짝짝이를 지참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날 것이라는 눈빛과 함께. 녀석의 정체는 손뼉을 치는 모양의, 일종의 응원 도구였다.
부랴부랴 당근 마켓에서 짝짝이 2개를 구매했다. 지난 8월 27일, 야구 경기는 보통 저녁에 하기 때문에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토록 원했던 첫 직관이라는 설렘은 배가 터지도록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장바구니로 가득 채워졌다. 양손 가득 짐을 싸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빨리 앉고 싶은 마음에 입구 게이트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1루와 인접한 3루 쪽 구석 좌석이었는데, 들어가서 한참을 헤맸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수십 차례 오르내린 끝에 겨우 비어있는 네 자리를 찾았다. 우리 자리는 끄트머리가 아닌 열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꾸역꾸역 들어가 겨우 착석했다.
뜨거운 함성 속에서 작디작은 좌석에 낑낑대며 몸을 욱여넣었다. 간식이 잔뜩 담긴 짐 가방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경기 내내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던 나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나갈 자신이 없었기에.
30분쯤 지났을까. 짜증과 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이왕 온 거 즐겁게 보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경기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 편, 그러니까 '롯데자이언츠'가 공격을 할 때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일어섰다. 야구 경기는 9회까지 진행된다. 9번의 공격 동안 사람들은 뻐꾸기 알람처럼 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꿋꿋하게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던 나는 결국 8회가 되어 딸아이와 함께 일어났다. 어설프게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열심히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했다. 허리 통증을 더 이상 버티다가는 사무실이 아닌 병원에 누워 있을 내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9명의 타자가 타석에 설 때마다 서로 다른 노래가 나왔다. 등장송인지 응원송인지 모를 노래는 대부분 비슷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롯~~ 데의~~ 고승민 안타 안타~~"
"롯데의~ 윤동희~ 쎄리라 (때려라) 안타 쎄리라~~ 최강 롯데자이언츠~ 윤동희~"
대부분 '롯데, 선수 이름, 감탄사'로 구성된, 심플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응원가는 순식간에 관객을 하나로 만들었다. 서로 다른 음과 가사로 구성된 노래는 각각 나름의 율동도 있었는데, 전방의 치어리더와 함께 모든 관중이 하나 되어 전투적으로 응원했다.
나는 이러한 광경이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독교 신자인 내가 수없이 경험했던, '찬양 집회'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순간
개인적으로는 3시간 가까이 앉아서 관람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무실처럼 의자가 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동이 불편했다. 수십 명이 나란히 앉는 구조이다 보니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엄청난 인파로 주차 어려움 또한 불가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야구장에 간다. 합법적으로(?) 경기 관람 중 음주가 가능해 일부러 차를 두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경기가 끝난 뒤 출차를 하기 위해 오래 기다리거나 만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기꺼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좋은 점도 있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9회 내내 이어지던 뜨거운 열기와 함성, 열정은 꽤 인상적이었다. 야구 경기장은 뜨거운 콘서트장이나 초대형 노래방을 방불케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몸을 움직여가며 '떼창'을 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 사람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즐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내내 일어서서 뜨겁게 응원을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선수보다 응원을 하는 관객들이 더 많은 칼로리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이 순간만큼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 될 것이기에 야구를 본다는 것은 참 '건강한' 행동인 것 같다.
혼자가 편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피곤한 세상이지만 야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관객들은 즐거워했다. 감정은 빠르게 확산된다. 귀가 터질 것 같은 '떼창'과 응원 소리는 희망과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경기장을 뜨겁게 채웠다.
1만 원 대라는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소비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형 뽑기에 아이들은 사죽을 못쓰는데, 만원도 '순삭' 하는 인형 뽑기와는 달리 몇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야구는 가성비가 좋은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경기에는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홈런이라도 터지는 순간에는 도파민이 폭죽처럼 팡팡 터지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이 고전을 면치 못할 때는 그만큼 쓰라리다. 너무 과한 것은 자제해야겠지만, 적당한 응원과 야구 관람은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야구가 낯설고 경기 관람은 재미와 고통을 동시에 주지만, 조금씩 경기에 대한 마음이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경기 내내 일어서서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던 첫째 딸아이와는 달리, 내 옆에 앉아서 닭강정을 씹으며 심드렁하게 경기를 관람하던 8살 아들은 경기장을 나서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빠, 다음에 또 올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