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처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들이 있다. 마스크 착용, 배달 주문의 활성화, 재택근무와 같은 것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무인주문 시스템의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카페, 아이스크림 할인점, 노래방, 독립서점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든 사람이 아닌 기계가 고객을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성 호흡기 질환이다. 따라서 무인 주문방식으로의 전환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키오스크는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업주들의 인건비 절감에도 도움이 되었다. 또한 대면주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고객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판매 사원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러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무인주문기의 높이는 대부분 성인의 키에 맞춰져 있어 키가 작은 고객이라면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디지털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나 노인의 경우, 직원의 도움 없이는 결제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주로 신용카드 결제방식이기에, 현금만 가진 고객일 경우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편리한 주문 방식, 불편한 접근성>
주말에 친구 가족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유명 프랜차이즈 가게를 갔다. 여느 때처럼 직원이 아닌 2대의 스탠딩 키오스크가 우리를 맞이했다.
메뉴 선정 이후 주문을 하기 위해 무인주문기로 갔다. 한 노인 부부가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키오스크 모니터에 이전단계와 다음단계가 번갈아가며 표시되고 있었다. 나머지 무인주문기에서 결제가 5건이 넘게 진행될 동안, 내 앞의 고객은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결국 건너편 키오스크가 비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다른 무인주문기로 주문을 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눈앞의 할아버지가 못내 신경 쓰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처음 단계부터 다시 도전했다.
- 매장취식/포장 중 선택해 주세요
- 메뉴를 선택해 주세요
- 제휴할인/카드를 선택해 주세요. 없으면 없음을 선택해 주세요
결제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니 막히는 지점이 발견되었다. 할아버지는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제휴카드가 없었던 것. 급한 마음에 신용카드를 손에 쥔 채 '제휴카드 없음'을 선택하지 않은 노인고객은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단계인 '매장취식/포장'이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
매장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 노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잔뜩 밀린 음식을 만들고 있는 직원들의 표정은 질문을 받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카운터에는 '지금은 무인주문기를 이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자리를 지키며 고객의 접근을 효율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결국 내가 결제를 도와주었다. 힘든 사투(?) 끝에 노인 고객은 음료를 먹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든 무인 주문기를 쉽게 볼 수 있다. ⓒ 뉴스1
사실 이런 상황을 종종 겪는다. 누군가에게는 어렵지 않은 루틴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까다롭고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는 달리 무인주문기 사용에 어려움을 느낄 경우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제조 공간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근무자에게 키오스크의 사용법을 물어보는 것은 부담이 된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사실 무인주문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주문 방식을 무인화 형태로 전환하더라도, 필요시 대면주문이 가능하다면 불편함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주문 화면에서 "카운터에서도 주문이 가능합니다"라는 팝업창을 띄워주면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운 사람은 바로 카운터로 향할 것이다. 이를 통해 끙끙대며 주문기 앞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주문을 하는 도중에 도움이 필요할 경우 '직원호출'버튼이 있다면 즉각적인 응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근무자가 매장 내에서 이동을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20~30평의 매장의 경우라면 10초 정도면 충분하다. 주문이 막막했던 고객들도 여러 차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 과정을 학습한다면, 머지않아 스스로 주문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매장 곳곳에 무인주문기뿐 아니라 카운터에서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홍보물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인주문기만 비치해 둔 채 홀에서 주문을 받지 않는 곳들이 있다. 키오스크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고객의 경우 매장 입점 자체를 꺼릴 수 있는데, 대면 주문이 가능하다는 문구들은 이들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줄 수 있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나라>
만약 부모님이 이 카페를 방문하면 어땠을까? 언뜻 상상해도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휠체어가 없이는 이동이 힘들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동을 도울 것이다. 그런데 이 가게 입구에는 계단이 있어 휠체어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결국 어머니는 더운 날씨에 아버지를 매장 밖에 둔 채 서둘러 주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인주문기라는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지난달에 갔던 대학가의 한 카페는 홀과 조리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무인주문기로 주문을 하면 카운터에 음식이 나오고, 그것을 픽업해서 먹는 구조여서 직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형태였다.
하지만 매장 내에서는 언제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음식에서 이물질이 나오거나, 고객이 이동 중에 다치거나, 때로는 직원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 내가 갔을 때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고객들 또한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마치 문제 발생 가능성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듯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의 경우 대부분 제휴/할인 혜택이 있다. 젊은 고객들은 이런 혜택에 대한 정보가 빠르지만, 키오스크 결제가 낯선 노인고객의 경우 제휴 혜택은커녕 결제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같은 서비스'를 받지만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낯선 주문시스템에 대한 불편함과 심리적인 부담은 덤이다.
사회의 변화,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픽셀
2030년이 되면 국민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인 고령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재정과 건강상태, 삶의 질 등 노인 관련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상하게도 개체수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노인들이 설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은 경우 이들은 환영을 받기보다 까다롭거나 귀찮은 존재로 치부된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우리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머무르고 있다.
키오스크의 확산으로 편리하고 효율적인 무인주문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문을 힘들어하는 고객을 보면서, 어쩌면 '무인화'라는 것은 매장 내 서비스뿐 아니라 노인 고객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무인주문기 앞에서 노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완전히 막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눈치 보지 않고 직원에게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초고령화시대의 주 축을 이루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배제되는 게 아닌, 더 많은 관심과 소통을 통해 함께 걸어가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