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영상을 클릭했다. 26분 정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러닝타임이다. 평소 영상시청을 즐기지 않지만 별생각 없이 시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엄습하니까.
영상은 심플하고 독특했다. 내용을 보면서 이런 삶이 실제로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집도 없이 모든 걸 버리고 낡은 중고차 안에서 사는 남자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말 그대로 중고차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는 중고 카니발을 사서 내부를 개조한 뒤 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차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해 먹으며, 악기와 음향기기를 갖고 이동하며 버스킹을 하는 삶을 살아갔다. 34평 국민평수 아파트도 좁아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인 시대에 카니발 1대에 살림을 꾸리다니. 그는 진정 미니멀라이프의 표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형과 남동생 또한 불의의 사고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마저 질병으로 떠나보낸 뒤 그는 1인 가구의 삶을 살아간다.
예전에 다친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그의 오른팔은 지금껏 불편해 보였다. 척추와 허리 통증이 극심해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고, 앉아있거나 서 있는 자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해 버스킹 하는 내내 그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버스킹은 그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그마저도 월화수에는 관광객이 드물고 비가 오면 그날은 공연 자체가 불가하다고 한다.
버스킹으로 얻는 수입은 고작 하루에 3,4만 원~10만 원 정도라 했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보이는데 그는 꾸준히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단다. 본인의 삶도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킹 공연을 하며 감사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유튜브 '일상 속으로'영상에서 캡처
신비롭고 낯설고 조금은 기괴한 아저씨의 삶을 보며 가만히 내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내 삶을 비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는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를) 중고차라는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비록 부채가 있지만) 자가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다. 소중한 사람을 모두 먼저 떠나보낸 그와는 달리 나는 아직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고 매일 볼 수 있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소득이 없는 그에 비해 아직까지 직장생활을 하는 나는 따박따박 때가 되면 통장에 돈이 꽂힌다. 그는 냉장고조차 없어 딱 하루 먹을 소량의 음식을 구매하지만, 우리 집 거실과 냉장고에는 한 달은 거뜬히 버틸 갖가지 음식이 즐비해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내가 더 가진 것 같은데, 내가 더 환경이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더 건강한 것 같은데 영상의 주인공이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였다. 단순히 정신승리로 치부하기에는 영상에 나오는 그의 말과 눈빛, 삶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그는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온몸으로 아파하지만,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이 건네는 작은 선물(영양제) 하나에 세상을 다 얻는 것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는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좁은 차에서 눈을 뜨며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와는 달리, 나는 새벽에 눈을 뜨며 오늘이 마지막이기를 꿈꾼다. 지옥 같은 회사에 출근해서 깨어있는 내내 받을 스트레스와 고통을 생각하면, 그날 하루도 감사와 행복이 아닌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 충분히 불행할 수 있는 그가 지금처럼 강하고 곧은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두 가지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어떻게든 지금보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자 노력)했다. 살면서 어려움은 항상 찾아오지만, 그 어려움이 언제까지나 곁에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열심히 이 악물고 버티고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온다고. 어떻게든 살아진다고.
다음으로, 그는 고통과 불행히 아닌 감사할 것에 집중했다.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지만 매일 버스킹을 위한 무대를 스스로 세팅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몇 백 원이든 몇 만 원이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함에 마음을 주는 관광객들에게 감사했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로 인한 아픔에 매여있기보다, 지금의 하루를 충실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중고 전자레인지를 저렴하게 구매했다는 말을 하며 어린아이처럼 환화게 웃는 그의 얼굴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움켜쥐고자 영혼까지 바칠 기새로 살아가는 내 삶이 포개졌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수십 년이 모여 삶이 완성된다. 깨어있는 내내 두려움과 우울과 죽음을 생각하는 10년 차 번아웃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행복한 삶이라는 인생의 2라운드를 맞이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카니발에서 사는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깨어있는 매 순간 감사함을 느끼고 하루를 살아도 그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와 행복을 찾고자 노력한다.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며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그는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하나도 행복하지 않고 수시로 죽음을 생각하며 당장 죽을 듯이 힘이 든다면, 미친 듯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이 고작 이딴 것이라면, 이런 삶이 곧 나라는 존재 자체가 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직장을 바꾸든,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든, 삶에 대한 시선과 태도를 바꾸든.
나는 힘든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의 힘듦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눈앞에 있는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