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미 Oct 27. 2023

일본 국제 학교의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일본 국제 학교 초등 학부모 상담, 담임선생님과 영어 눈치게임 시작!

 “굿모닝, 나이스 투 미츄, 마이네임 이즈” 딸아이는 잠들고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간, 내 나이 40세, 불혹의 나이에 남편과 마주 앉아 열심히 기초 영어 회화를 외우고 있다. 그래, 나는 일본 도쿄의 국제학교 학부모다. 적자생존? 나는 지금 외자생존이다. 외워야 산다!


수능 시험도 학부모 상담보다는 덜 떨리겠구먼, 나대지 마, 심장아.


 올해로 딸아이는 6살로 도쿄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 초등학교 1학년이다. 학부모라는 이름표를 달고 처음 맞이하는 딸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첫 학부모 상담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10일 전부터 학부모 상담 계획을 통지받고 두근대던 마음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야속하게 잘도 흘러 바로 내일이다. 급하다. 공부 모드 딸깍, 번역 어플과 영어회화 기본 책을 펴 놓고 남편과 함께 열심히 노려보고 있지만 첫인사부터 예상 질문, 답변 쓰기가 이리 어렵다니, 눈앞이 캄캄하다. 

 한 달 전쯤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캐나다 출신의 담임선생님과 10분 남짓 상담을 했었다. (상담이라 쓰고 영어 듣기 평가라 읽으면 정확하다) 우리 생애 가장 긴 10분이었다. 10년 넘게 공부했던 영어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상담 후, 벌게진 얼굴로 굿바이를 건넨 우리 부부는 각자가 듣고 이해한 내용을 퍼즐 조각처럼 맞추느라 한동안 복도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고 있노라니 잊고 있던 연애 세포가 다시금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해”, “나 지금 두근두근했어, 이렇게 당신을 가까이 쳐다본 거 오랜만이야.” 부부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애써 웃어보지만 서로 알고 있다. 우리가 들은 영어 퍼즐 조각을 합쳐도 한 판의 완성된 퍼즐 판이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드디어 수능시험보다 더 긴장되는 학부모 상담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선생님의 웃는 타이밍을 잘 보고, 선생님께서 웃을 때 같이 웃자.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 둘째, 절대 먼저 질문을 하지 말자. 선생님께서 다시 질문하시지 않도록. 셋째,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도 무조건 웃자. 웃는 자에게 복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OK


 “드르륵~”. 드디어 지금이다. 교실로 들어가자 금발의 인자한 미소를 띠며 계신 딸아이 선생님이 보인다.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이리 컸던가. 미리 정해두었던 원칙을 생각하며 긴장감을 억눌렸다. ‘그래, 무조건 웃자, 다 잘 될 거야.’ 담임선생님께서는 딸의 학교생활과 그동안 딸이 열심히 그리고 쓴 학습 결과물들을 보여주시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선생님의 말씀을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계속 웃고만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선생님의 표정도 좋지 않다. 게다가 지금 이야기의 주제는 아이가 새 학기 첫날 선생님이 질문을 해도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웃고 있는 엄마라니,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웃고 있는 캔디 엄마라니. 네, 그게 바로 저예요.

 “Are you ok?"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그저 눈물이 흘렸다. 사실 나는 울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손등에 떨어지는 차가운 감각에 눈물을 알아차릴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결국 울음 섞인 말로 드디어 한 마디를 내뱉었다.

 “Yes, I'm ok, no, no, I'm not ok".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OK를 말하며 올해 두 번째 영어 듣기 평가를 처참하게 끝냈다.


소라게의 집을 던지고 나와 엄마로 마주 서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그동안 참 어머님께서도 힘이 드셨을 거라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말을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주셨고, 중요단어나 어려운 단어는 직접 메모장에 적어주셨다. 처음부터 담임선생님께 솔직하게 영어 실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나는 어설픈 영어회화 실력을 감추고 싶었다. 그러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요행처럼 잘 넘어가길 바랐다. 우습게도 딸아이에게는 영어를 못하더라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라며 조언했으면서 말이다. 영어를 잘하는 다른 학부모들을 보며, 부족한 영어실력이 너무나 부끄러워 소라게 마냥 자존심이라는 집에 쏙 숨어만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라게의 집이 있다. 그곳이 가장 안전할 거라 믿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던지고 나와 참된 자신을 마주해야 진짜 평안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담임선생님은 네 아이의 엄마였다. 

 서로 다른 나라의 국적을 지녔지만 우리는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엄마라는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주셨다. 안아주신 그 품에서 언어 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를 잘 챙겨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우리 가족은 함께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엄마도 사실 지금은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그 옛날 이 엄마가 이뤄냈던 찬란한 수능 영어의 영광은 이제 없노라고. 딸아이 앞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 다시 영어의 문턱 앞에 섰고, 함께 영어의 거대한 파도를 즐겁게 타 보려고 한다. 이제 시작이다. 뭐, 말문이 안 트이면 귀라도 트이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