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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 Nov 17. 2023

열정 가득한 해미 작가의 바쁨 속
여유 찾기를 한 하루

 2028년 10월 27일 새벽 5시 30분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아침 알람 소리. 일본 도쿄에서 주재원 와이프로 딸아이의 국제학교 학부모로 살던 시절부터 몸에 밴 새벽 시간의 아침 맞이. 새벽의 적막함과 차가움에 묘한 서걱거림을 느끼지만 이 시간만이 줄 수 있는 고요함과 경건함이 지금의 나를 키운 8할이었다. 브런치에 작가로 첫 발행을 한 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년의 시간 동안 참으로 치열했지만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이은경 선생님과 인연을 맺어 브런치에 첫 발행을 하고 그 후 책을 1년에 한 권씩 5권을 정식 출간을 했다. 작년에는 딸과 함께 그림책도 만들었다. 그림책은 교보문고의 올해의 그림책 부문에 후보로도 올랐다. 이제 훌쩍 커버린 딸과 그림책을 함께 만든다는 것이 인생에서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글을 쓰고 딸이 그린 그림으로 삽화부문을 채워 둘이 함께 만드는 책이라니, 모녀 그림책을 처음으로 출간하고 그 밤,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기억이지만 거실 정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가슴 벅찬 뿌듯함이 느껴진다.

 어디 보자. 오늘은 일정은 그림책 만들기 강연 1개만 있는 날이네! 오랜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 떨 수 있는 하루가 찾아왔다. 늘 바쁜 일상이지만 주변에서 힘을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40대 중년 아줌마의 삶이다.


 창밖을 보니 벌써 완연한 가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나무들도 알록달록 단풍이 들어 모두들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데 얼마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나뭇잎이 하나 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다 잠깐 밖을 보다 만난 초록 잎 하나, 주변 친구들은 죄다 노랑 옷으로 갈아입고 가을맞이에 한창인데 초록 잎은 아직 이었다. 일주일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저 아이는 아직 초록색이네. 아직 자신을 변화시켜 가을을 맞이할 용기가 나지 않나 보다. 5년 전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아렸다. 이 상황이 크게 변할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던 한 일본의 주재원의 부인, 원하는 미래를 위해 용기를 냈던 그 순간이 초록 잎에도 오길 바라며 살며시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진실된 가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힘내’



 5년 전부터 시작된 글쓰기로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이 점점 줄었다. 가슴을 항상 짓누르던 불안도 어느 순간부터 그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모습에 더욱 힘이 났던 그 시절이, 오늘은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저 직업이고 생계였던 시기를 지나 참된 재미가 느껴지고, 독서나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지금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뭐니 뭐니 헤도 더 이상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목적이 가장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지금 이 순간을 참아내지 않으면 대출비와 아이의 교육비를 걱정해야 되는 현실에서 벗어난 것이다. 바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해방감이 무엇보다 제일 좋다. 당당하게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소신 있게 할 수 있다는 당당함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를 생각하지 않고 누구의 아내이자 한 딸아이의 엄마의 위치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이름 석자를 걸고 좋아하는 글쓰기로 책도 출간하고 강의도 하고 초등학교 아이들, 학부모도 만나며 여러 이야기를 해 줄 있다. 말과 글에 힘이 생긴 것이다. 하는 말과 쓰는 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한없이 노력했던 지난 5년. 참으로 열심히 쓰고, 읽고, 운동하던 작으면 작고 크다면 큰 일상들이 모여 힘을 실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예전 같으면 그저 흘려보냈을 물방울 같았던 하루들이 지금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신기하다. 작년에는 이은경 선생님을 시상식에서 만나 인사드렸더니, 꼬옥 안아주셨다. 늘 책으로 강연으로만 뵙던 롤모델을 직접 시상식에서 만나다니,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순간이었다.

 무기력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지금은 바쁘지만 더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처음 글을 썼던 날, 브런치에 작가신청 후 합격 메일을 받던 날, 슬초2기 동기들과 이은경 선생님의 강의를 듣던 날, 모든 날들이 모여 지금의 여유로움을 주었다. 그때의 다짐과 결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오늘을 기억하겠다. 내일은 또 바쁠 예정이니 오늘 이 여유를 즐기겠다.     



노력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노력하는 것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면 누구든지 인생의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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