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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마주하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1편: 그 사람은 나를 알아봤다 – 처음 본 그 눈동자에서


– 나는 그날 처음 그 남자를 봤다. 적어도 지금 생에서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책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가던 순간, 나는 단지 책을 들고 있었을 뿐이지, 읽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 옆 테이블에 앉았고, 내게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그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두통과 함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검은 천 위에 떨어지는 피, 두 손을 묶인 채, 무릎 꿇고 있는 한 여인. 그 여인의 눈동자, 지금 내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 처음 뵙는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이 생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손이 떨렸다. 도망치듯 자리를 일어나려 하자,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놀랍도록 따뜻한 손이었다. “잠깐만요. 기억나게 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당신이 왜 자꾸 동그란 창문이 있는 성당에서 피 냄새나는 꿈을 꾸는지. 왜 손목에 상처도 없는데 아플 때가 있는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들은, 너무 구체적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는 내게 조용히 봉투 하나를 건넸다. 노란색 오래된 종이로 된 편지였다. 앞면에는 단 한 줄, 낯선 필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사벨라.” 그건… 내가 며칠 전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게 당신이었던 이름이에요. 1753년, 오스트리아 빈. 당신은 신부였고, 저는...” 그는 말을 멈췄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두려움이었다. “이제 기억이 날 거예요. 이 편지를 읽으면.” 나는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손끝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편지지의 종이에서 묘한 향이 났다. 마치 오래된 교회의 냉기와 향내가 섞인 듯한 냄새.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앞에 장면 하나가 번개처럼 번쩍였다.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성당의 종이 울리고,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절규처럼 외쳤다. "이사벨라!" 숨이 막혔다. 나는 알았다. 그는 나를 죽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2편: 편지 속 그녀 – 이사벨라의 기억이 열리다


– 봉투를 열고, 나는 손끝을 조심스럽게 종이에 얹었다. 희미한 갈색 잉크로 쓰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사벨라, 넌 지금 어디에 있니? 네가 떠난 후, 나는 여전히 그 성당 계단 앞에 있다.”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돼’라고 되뇌었지만, 편지를 읽는 손은 멈추지 못했다. 마치 내 안 어딘가가 이 문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날, 너는 눈물 대신 미소를 남겼지. 나는 널 놓아주었지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죄였을까.” 그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쿡 하고 찔렸다. 편지지 너머로 기억의 파편이 하나 더 떠올랐다. 성당. 성모상 아래 서 있던 여자. 흰 드레스를 입고,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죄를 지었어요. 하지만… 사랑이 죄입니까?”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그림자는 그녀의 앞에서 멈췄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아니요. 당신은 죄를 지은 게 아니라… 저를 구원한 겁니다.” 바로 그 그림자의 눈, 그 눈동자가… 그 남자, 지금 카페에 앉아 있는 그의 눈이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숨이 거칠었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는 아직 내 맞은편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기억났나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망설였다. 무엇을 ‘기억났다’고 해야 할까. 꿈처럼, 소설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진짜 같은 그 감정. “내가 이사벨라였다는 걸… 믿으라고요?” 그는 테이블 위에 작은 낡은 십자가 하나를 꺼내놓았다. 검게 빛바랜 은 목걸이. 어딘가 낯설지 않은… “당신이 늘 꿈에서 쥐고 있던 그 십자가예요.” 그는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당신을 죽였죠.” 나는 숨을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 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때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서해요. 그리고… 사랑했어요.” 그 순간, 내 눈앞에 또 다른 장면이 번개처럼 스쳤다. 불길 속, 내가 무릎 꿇고 울고 있었고, 그가 내게 등을 돌린 채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이사벨라,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땐… 당신이 나를 기억해 주길.”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진짜였다. 그리고 나도, 그가 말한 그 이사벨라였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3편: 성당의 비밀


– 첫 번째 생의 문이 열리다 나는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졌다. 그 남자의 말, 편지, 그리고 십자가… 모든 퍼즐 조각이 머릿속에서 뒤섞이더니 어느 순간, 마치 꿈도 아닌 꿈 속으로 빨려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복장을 하고 있었다. 두껍고 무거운 치맛자락, 코르셋으로 조인 가슴, 손에는 낡은 라틴어 기도서가 들려 있었다. 주위는 차가운 석조 벽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고요한 성당. 나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내 전생의 기억이 시작된 장소. “이사벨라!”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 지금의 그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눈에는 희망보다 명령의 빛이 강하게 서려 있었다. “늦었습니다. 주교님이 찾고 계십니다.” 나는 속으로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오래된 이름. “다미엔.” 그 이름은 마치 내 심장 안에 박혀 있던 고리처럼, 문득 기억을 휘감아 들어왔다. 주교실. 거대한 성경이 펼쳐진 탁자 위에 붉은 밀랍 초가 하나 타고 있었다. “이사벨라, 너는 신의 길을 벗어났다.”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 남자와 만난 다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래 다미엔을 만나러 간다는 걸. 내가 성가대 연습을 핑계로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걸. “그의 피에는 마녀의 피가 흐른다. 그는 신을 모독했고, 이제는 널 오염시키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용기를 냈다. “아닙니다. 그는… 저를 구했습니다.” 주교의 눈동자가 차갑게 흔들렸다. “그는 널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성당 뒤뜰에서 다미엔을 다시 만났다. “우리가 도망친다면…” 그가 말했다.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는 계획했다. 다음날 새벽, 종탑이 세 번 울릴 때, 성당의 비밀 통로를 통해 도망치기로. 하지만… 기억은 그 순간 멈췄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침대 위에서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엔 어젯밤 본 적 없던 한 장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1753년 성 베르나르도 수도원. 그 아래 작게 적힌 이름. Isabella B. – Deceased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4편: 배신, 그리고 불꽃 – 우리가 도망치던 새벽


– 성당의 종이 세 번 울렸다. 나는 약속한 대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대리석 복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하늘은 아직 어둡고, 머릿속은 맑았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뒤뜰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가 거기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입꼬리를 올렸다. 그 눈엔 공포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나만 있었다. “이제 됐어요. 이 문을 지나면… 우리는 자유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성당 뒤편에서 낮고 거친 발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그녀가 도망친다!” 다미엔은 내 손을 끌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비밀 통로는 마치 미로 같았고, 우리가 뛸수록 촛불은 꺼져가고, 공기에는 먼지 대신 불에 그을린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해요.” 나는 멈춰 서려했지만, 그는 내 손을 더 세게 끌었다. “나도 알아요. 통로 어딘가에… 누가 불을 낸 것 같아요.” 우리는 겨우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돌문이 열리는 곳. 하지만—그 문은 닫혀 있었다. “열쇠가… 없어졌어요.” 다미엔이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그때였다. 뒤에서,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신을 저버렸다, 이사벨라.” 주교. 그는 몇 명의 성직자들과 함께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 이 성당과 함께, 너희의 죄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통로 벽의 유리병에 내던졌다. 쾅! 그 안엔 기름이 들어 있었다. 불꽃이 순식간에 벽을 타고, 바닥을 집어삼켰다. 다미엔은 나를 감쌌다. “내가 문을 열게요. 당신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안 돼요, 같이 가야 해요!” 나는 외쳤지만, 그는 벌써 쇠문을 뜯고 있었다. 한 손은 피투성이가 됐고, 연기는 내 목구멍을 조여 왔다. 그때였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주교와 그의 일행은 불길 뒤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 나보다 어린 수련 신부 하나가 조용히 다미엔의 등에 칼을 꽂았다. “다미엔!” 그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열쇠가 바닥을 구르며 내 발 앞에 멈췄다. 나는 울며 외쳤다. “제발… 제발 눈 떠요.”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피로 물든 손을 들어 내 뺨을 만졌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을… 미워하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라도… 구하고 싶었어요.” 나는 열쇠를 집어 들고, 그 무거운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다. 다미엔은 피투성이 얼굴로 웃고 있었다. 불길은 그의 몸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고, 그 뒤로 붉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그 장면은, 내가 평생 꿈에서 반복해서 봤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장면을 현실처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현생의 내 눈이 떠졌다.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있었고, 입가엔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다미엔] “그 장면까지, 기억하셨군요. 이제… 다음은, 저의 기억입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5편: 다미엔의 진실


– 그는 왜 죽음을 택했나 그는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이 스며드는 곳. 커튼은 젖혀져 있었고, 창밖에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책상 위엔 한 권의 낡은 노트. 그는 그것을 천천히 펼쳤다. 첫 장. 거기엔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Isabella. 그는 그녀보다 먼저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 이 생에서,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악몽처럼 찾아왔던 화염과 피, 고해소와 배신의 기억들. 처음엔 그저 이상한 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날수록, 현실은 더 낯설고, 과거는 더 선명해졌다. 그가 처음으로 그녀를 다시 본 건 대학교 도서관에서였다. 그녀는 책장 너머에서 한 권의 역사서를 들고 있었다. "1750년대 오스트리아 수도원 여성의 삶." 그녀는 웃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이런 건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 미소, 그 손짓. 그녀는 ‘이사벨라’였다. 하지만 그는 다가가지 못했다. 그때는…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그녀의 기억이 천천히 깨어나길.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그는 편지를 보냈다. “다시 만납시다. 당신이 나를 기억하기 전에.” 그는 자신이 그녀를 죽게 만든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칼을 직접 쥐지는 않았지만, 그날 밤 도망 계획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실수는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다. 그는 믿었던 동료 신부에게 “그녀를 데리고 도망간다”라고 털어놨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그 정보는 주교에게 넘어갔다. 다미엔은 평생 죄책감 속에 살았다. 그날의 불, 그녀의 비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향해 뻗은 손. 그 손을 그는 잡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다시 그녀를 찾아, 다시는 그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노트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가 모든 기억을 되찾았을 때, 나는 다시 용서를 구하러 간다. 이번에는 진짜,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사벨라] “당신 말이 맞았어요. 그날, 난 당신을 봤어요. 불 속에서도… 당신은 끝까지 날 안고 있었어요.”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번 생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6편: 심문실의 초상


– 잊힌 비밀의 문서 "그날 불에 타버린 줄 알았던 기록이…" 그는 책상 위의 두꺼운 회색 서류철을 천천히 열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 있던 작은 공간. 말없이 커피가 식어가던 그 방에서, 그의 손끝이 한 장의 낡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Inquisitio de Isabellam Benedictam" (이사벨라 베네딕타에 대한 종교 심문 기록) 나는 숨이 막혔다. 이 문장은, 내 꿈에서 주교가 외치던 바로 그 말이었다. “그 여인은 신을 모독했다. 이단이다!” 1753년 6월 3일. 심문기록 제1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피심문자 이사벨라 B는 반복적으로 ‘신의 음성’을 들었다 주장함. 그녀는 "빛의 사자"라 불리는 자와 내통했으며, 성경 외의 계시를 말함. 그건… 사랑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 시절의 교회가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였던 것이다. 기억이 또다시 떠올랐다. 희미한 성당 지하의 어둠, 나무로 된 의자에 묶인 손목,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던 남자들. “너는 악마의 언어를 말하고 있다.” “신께 회개하라.” “마녀는 불로 정화된다.” 나는 울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당신들이 두려운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 속의 진실이에요.” 그는 내게 다시 말한다. “너는 단지 ‘사랑’을 한 게 아니었어. 넌 진짜로 그 시대가 감당하지 못할, 너무 앞선 ‘존재’였던 거야.” 그리고 그는 심문기록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이사벨라 B는 처형 명령이 내려진 다음날 새벽, 탈출을 시도함. 그녀를 도운 자는 성직자 D.L(다미엔 루카스)로 추정됨. 성당의 비밀문서 15-A가 사라진 직후였음." 나는 중얼거렸다. “… 비밀문서 15-A?”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서는 아직도 ‘찾을 수 없음’ 상태야. 불타버리지 않았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걸 찾으면 우리가 왜 다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렇죠?” 그는 조용히 웃었다. “응. 이번 생은, 그걸 찾아서 ‘끝까지 말해주는’ 생이니까.” 그 순간, 휴대폰에 한 통의 낯선 번호에서 문자가 왔다. [발신자 미상] “15-A 문서를 원한다면, 빈으로 오시죠. 당신들이 시작한 그곳으로.”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7편: 빈의 도서관


– 잿더미 속 살아남은 진실 오스트리아 빈. 비가 내렸다. 그들은 오래된 기차역을 나와, 조용한 돌바닥 골목을 따라 걸었다. 시간은 270년이나 흘렀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거리는… 변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기억나죠? 바로 저쪽, 회색 건물. 그게 예전에 성 베르나르도 수도원 도서관이었던 건물이에요.” 그들은 그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현관 옆에는 작은 동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Österreichisches Geheimes Kirchenarchiv.” 오스트리아 비밀 교회 문서 보관소 공식적인 도서관이 아니었다. 여기엔 일반인의 접근이 거의 허락되지 않는 기록보관실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문서 15-A가 마지막으로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사전에 받은 익명의 초대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2층, 석회 냄새와 촛불의 흔적이 뒤섞인 통로. 오래된 책들과 나무 서가들 사이를 지나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노인이 앉아 있었다. “당신이… 다미엔입니까?” 그 노인이 조용히 물었다. “이번 생에서는 ‘루카스’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노인은 그를 천천히 바라보다가 책상 아래에서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 “문서 15-A는... 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마지막 순간에, 진짜를 가짜와 바꿔치기했거든요.” 그 상자는 손바닥만 했고,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노인은 열쇠를 꺼내며 말했다. “당신들이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경고하지요— 이건 단지 과거의 문서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엔 낡은 종이 다섯 장.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작은 펜던트 하나. 붉은 루비가 박힌 십자가. 그녀는 그걸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그건, 자신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던 순간 가슴에서 떨어졌던 바로 그 십자가였다. 그리고 그 밑의 문서. 첫 줄에 쓰여 있었다. "15-A: 이사벨라 B는 단순한 이단이 아니다. 그녀는 예언자였으며, 그가 말한 대로 세 번째 생에서 다시 올 것이다." 그 순간, 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세 번. 그녀와 그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누가, 왜, 이 시점에서 그들을 따라온 걸까?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8편: 그림자 조직


– 전생을 지운 자들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다시 침묵. 다미엔은 즉시 그녀를 뒤로 숨기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누구시죠?” 침묵. 하지만 그 순간, 문 아래 틈으로 검은 봉투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가 봉투를 열자, 안에는 한 장의 종이와 함께 붉은 잉크로 그려진 상징 하나가 있었다. 그림자는 십자가를 비틀어 만든 모양. 그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그들은 아직도… 살아 있었군요.” “누구죠?” 그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레코르디움’. 전생을 지우는 자들. 예언자가 다시 깨어나지 않도록, 기억을 추적하고, 제거하는 조직.” 이 조직은 전생과 환생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었기에 더 무서운 존재였다. 진짜 환생을 막기 위해, 수 세기 동안 ‘예언자’를 처형하고, 기억이 깨어나는 사람들을 “사고사”로 처리해 왔다. “내가 기억을 되찾자마자… 이사벨라가 깨어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였어. 우리 주변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이상한 일들’이 생긴 게.” 그녀는 등을 떠올렸다. 최근 몇 달 동안 느꼈던 낯선 시선들. 집 앞에 버려진 낡은 종이, 꿈에서 반복되던 검은 그림자.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 그는 문서를 다시 펼쳤다. 15-A의 마지막 장. “예언자는 다시 올 것이다. 그녀가 기억을 되찾는 날, 진실은 깨어나고, 오래된 그림자는 다시 불타리라.” “그들은 그걸 막으려 해. 우리 둘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문서는 다시 잿더미로 돌아갈 거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네요.” 그는 미소 지었다. “기억을 완전히 되찾는 것.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말하는 것.”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자 없음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빈은 너희의 무덤이 될 것이다.” 화면이 꺼졌다. 하지만 늦었다. 진실은 이미 깨어났다. 그리고, 이사벨라의 눈빛엔 두려움이 아닌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엔… 우리가 불을 붙일 차례예요.”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9편: 기억의 심장


– 죽음보다 오래된 계약 그날 밤, 그녀는 혼자 도서관 뒷방에 남았다. 다미엔은 보관실 문서를 정리하러 지하로 내려갔고, 그녀는 문서 15-A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 그리고 갑자기… 그날이 찾아왔다. 불. 비명. 그리고, 아주 낯선 공간. 하지만 이번에는 성당도, 화염도 아니었다. 어두운 동굴. 벽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엔 검은 탑처럼 생긴 석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눈이 없는 ‘존재’가 서 있었다. “당신은 나를 선택했군요.”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형체도 분명치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을 직접 두드렸다. “시간은 너를 흘려보내겠지만, 기억은 언젠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대가 사랑을 지키려 한다면, 그대의 심장을 ‘계약의 심장’으로 바쳐야 하리.”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양손을 가슴에 얹었다. 피가 흘렀다. 아픔은 없었지만, 따뜻한 것이 가슴을 적셨다. 그 존재는 그녀의 피를 석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시간 너머의 예언자. 네 생이 꺼져도, 심장은 다시 타오르리.”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눈을 떴다.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손끝이 무언가를 느꼈다. 셔츠 안쪽, 심장 위. 거기에 없던 것이 새겨져 있었다. 문양. 바로 그 동굴의 석상에 새겨졌던 것과 똑같은 이 세계의 언어로 된 고대의 문양. 그때, 다미엔이 방으로 들어왔다. “왜 그래요? 무슨 일…?” 그녀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기억났어요. 왜 우리가 다시 태어난 건지.” “왜?”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시간과 계약했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 마지막 불씨를 남기기 위해. 그리고 당신은… 내가 죽더라도, 다시 찾을 사람으로 선택됐던 거예요.” 그는 숨을 멈췄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군요. 그 마지막 불씨가 뭐였는지… 찾는 것.”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불씨는… 우리가 함께 죽었던 그 자리, 성 베르나르도 성당 지하에 있어요.”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발신자] “불씨를 찾으면… 그들과 전쟁이 시작됩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10편: 불씨


– 성당 지하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의 불꽃 성 베르나르도 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27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바닥의 균열, 고딕 양식의 문양, 그리고… 문득 풍겨오는 그 익숙한 냄새까지도 그대로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성당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발걸음은 처음 걷는 길 같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온 길 같았다. 그들은 안내를 맡은 현지 사제의 인도로 성당 아래 지하로 내려갔다.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는, 고대의 심문실이자 무덤이었던 장소. 그리고 그 문. 녹이 슨 철문 뒤편, 그들이 도망치려다 끝내 넘지 못했던 마지막 문. 다미엔은 그 문 앞에 섰다. 왼손엔 금속 상자 속에서 발견된 ‘계약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 둘 다 죽었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 생은, 그걸 다시 열기 위해 돌아온 거예요.” 문이 열렸다. 고요. 냄새. 그리고… 빛. 그 어둡고 차가운 공간 한가운데, 바닥엔 돌로 만든 원형 문양이 있었다. 그 문양은 그녀의 가슴 위에 새겨진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여기예요. 여기가… 계약의 중심. 그리고… 마지막 불씨가 잠든 곳.”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문양 위에 섰다. 그 순간, 땅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문양의 틈 사이로 작은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살아있는 듯한 불. 기억의 불씨. 전생의 조각. 그리고, 진실을 비추는 불. 그녀는 숨을 삼키며 속삭였다. “기억난다… 나는 이 불꽃을 지키기 위해 죽었어요.” 그때, 문 너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어요.” 다미엔이 말했다. 그림자들이 성당 지하로 스며들었다. 검은 옷. 가려진 얼굴. 그리고, 어깨에 비틀린 십자가 문장을 단 사람들. 레코르디움. 전생을 지우는 자들. “이제 그만 기억을 멈추시죠.”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예언자의 불이 꺼지면, 세상은 다시 조용해질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불씨 앞에서,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죽었던 자리에서 다시 태어났어요. 그러니 이 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거예요.” 다미엔은 그녀 옆에 섰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건, 과거 성직자의 검. 이번 생에서 복원된 기억 속의 마지막 유산. “이번에는, 우리가 지켜낼 차례입니다.” 불꽃이 강하게 타올랐다. 그들 둘의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그리고, 성당 지하에서 전생과 현생이 충돌하는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제2막 1편 (11편): 성혈의 기도


– 두 번째 생이 깨어나는 밤 그날 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밝고 짙게 타올랐다. 그녀는 불꽃 앞에서 눈을 감았고, 불빛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그녀의 가슴 안에서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기억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엔 성당도, 수도원도 아니었다. 먼지 자욱한 들판. 십자 깃발. 금속 갑옷. 그리고… 검은 피로 젖은 흰 천. 그녀는 칼을 들고 있었다. 한 손엔 십자군의 문장, 다른 손엔 붉은 피로 얼룩진 작은 병. “이것은 단순한 피가 아니다. 성혈이다. 신의 언약이 새겨진 피.” 그녀는 전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혈을 지키는 사제, 그리고 ‘선택된 자’였다. 1249년. 이집트 다미에타. 제7차 십자군 원정. 성채 안의 비밀 제단. 그곳엔 단 세 사람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녀. 그를 포함한 단 한 명의 기사. 그리고… 그들의 맹세를 기록한 고대 사본. 그는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헬멧을 벗은 얼굴은 젊고 고귀했고, 눈빛은 서늘할 만큼 맑았다. “이 전쟁은 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피로 시작된 이 서약은, 다시 피로만 끊길 것입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신이 죽는다면, 나는 그 피를 내 심장으로 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나는 그 피를 다시 당신에게 돌려줄 거예요.” 기억은 사라지기 직전의 장면을 남겼다. 성채가 함락되는 날. 그녀는 성혈의 병을 품고 달아나던 중 화살에 맞아 쓰러졌고,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찾기 위해 칼을 들고 적진으로 들어갔다. 서로를 보지 못한 채, 다시 태어나기로 서약한 그날. 그녀는 눈을 떴다. 숨이 거칠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 곁에 있었다. 다미엔이 아닌, 그 두 번째 생의 이름으로. “이제… 두 번째 생이 열렸군요.”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피. 내가 지금… 다시 당신에게 돌려줘야 할 차례예요.”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2편 (12편): 피의 봉인


– 성혈의 병과 금단의 사본 “이건… 진짜였어요.” 그녀는 손 안의 작은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불씨 속에서 꺼낸, 오래된 붉은 피 한 방울이 아직도 그 안에서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다미엔은 침묵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계약이 담긴 물질, 즉 피로 쓴 언약의 흔적이라는 걸.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의 문서를 펼쳤다. 15-A 문서의 뒷면, 지워졌던 금박 글씨가 빛 아래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Sanguis Pactum. 한 방울의 피는, 천 생의 언약보다 무겁다.”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기억이 다시 터졌다. 13세기 다미에타 성채 지하. 그녀는 단 한 장의 사본을 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성혈의 기원과 그 힘을 봉인하는 의식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성혈과 함께 가슴에 묻었다. “그때 난, 내 심장을 문서와 함께 밀봉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숨이 아픈 거예요. 계약이 아직도 내 몸에 살아 있었던 거예요.” 다미엔은 그녀의 가슴 위, 문양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심장의 박동이 무언가와 울리는 듯 진동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죠. 그 문서를 해독하고, 계약을… 마무리 짓는 것.”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요. 계약을 깨야 해요. 이 피는 더는 우리를 묶는 족쇄가 되어선 안 돼요.”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문이 산산이 부서졌다. 붉은 복면. 검은 장갑. 그리고 은빛 날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사벨라, 비켜!!” 다미엔이 몸을 날렸다. 그의 어깨에 검이 박혔다. 침입자는 단 한 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피를 돌려놓지 마라. 그 계약은 너희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미엔을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피는… 그때 그 피와 같은 냄새였다. “이번에도, 당신이 대신 상처를 입었네요…” 그는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당신을 지킬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계약을 깨는 열쇠는, 바로 그 피의 재연이라는 것을. 다시, 피를 흘리고 다시, 그 문양 위에서 맹세를 바꿔야 한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3편 (13편): 심장의 재서약


– 피를 다시 묻는 의식 그들은 다시 불씨가 깃든 지하로 내려갔다. 이번엔 도망도, 숨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들어가려는 의지였다. 그리고 그곳엔, 270년 전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계약의 문양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섰다. 가슴엔 여전히 붉은 문양이, 심장의 맥과 함께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다미엔은 칼을 들고 그녀 앞에 섰다. 이번엔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피를 다시 바친다. 한때 맺은 맹세를 끊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이 피를 받아, 다시 흘린다. 사랑이었고, 죄였으며, 이제는 그 무엇도 아닌 이름으로.” 그는 자신의 손을 베었다. 피가 천천히 흘렀다. 그녀도 그의 손을 잡은 채, 심장의 문양 위에 그 피를 올렸다. 불씨가 흔들렸다. 문양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 그 이전의 생으로 떨어졌다. 이번엔 더 오래된 시간. 더 어두운 역사. 성혈조차 기록되지 않은 생. 사막. 베일을 쓴 채 불길 속에서 노래하는 여인. 그 앞에 칼을 꿇은 남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목소리로 기억했다. “샤아르.” “당신은 별빛 아래의 계약자.” “나는 당신의 그림자.” “당신이 불타면, 나도 함께 재가 되겠소.” 세 번째 생. 그들은 처음부터 사랑이 아닌 서약으로 엮인 존재였다. 그녀는 ‘빛의 사자’라 불렸고, 그는 ‘죽음의 검’이라 불렸다. 그리고 그 생에서, 그녀는 신에게 맞섰다. “우리는 피를 신에게 바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기억이 끊겼다. 그녀는 지하의 문양 위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불씨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문양 위의 글자가 바뀌어 있었다. “서약은 이제 끝났다.” 그 순간, 그녀의 가슴 위 문양이 사라졌다. 흉터도 없고, 흔적도 없이. 자유였다. 처음으로. 그런데— 지하의 어둠 너머에서 또 하나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4편 (14편): 네 번째 생


– 왕의 사냥개와 예언자의 유리관 눈앞에 문이 열렸다. 지하의 어둠, 봉인된 성혈의 불씨가 사라지자 그 아래에서 더 오래된 문양 하나가 드러났다. 별. 칼. 그리고 유리관. 그녀의 이마가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동시에—기억이 스며들었다. 1476년, 루마니아 북부 트란실바니아. 어둠 속. 성 밖 폐허에 위치한 밀실. 그 안에 유리관 하나. 관 속에는 한 여인이 잠들어 있었다. 흰 드레스. 두 눈을 감은 채, 손 위엔 검은 장미 한 송이. 그는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강철 갑옷을 입은 군인. 왕의 문장을 어깨에 새긴 자. 왕의 사냥개. “다미엔 드 루카, 명을 받들라. 그녀를… 제거하라.” “예언자는 다시는 깨어나선 안 된다.” 왕은 명령했다. 그는 복종했다. 그의 검은 그 명령을 위해 벼려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예언을 멈추기 위해 봉인된 존재”였다. 그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대신, 유리관을 그 누구도 찾지 못할 지하에 숨겼고, 자신의 피로 봉인을 남겼다. “당신이 다시 깨어나는 날이 온다면— 나 역시 다시 태어나 그 검을 꺾으리.” 그녀는 마지막으로 유리관 안에서 눈을 떴다.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때 당신이 날 죽였다면, 우리는 다시는… 묶이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현생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녀는 무너져 내렸다. “그 생에서… 당신은 날 지키기 위해 거짓을 택했고, 나는 유리 속에서… 세 생을 기다렸어요.” 다미엔은 무릎을 꿇고 그녀를 껴안았다. “그런데도… 당신은 날 용서했나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알았어요. 당신이 내 검이자, 내 심장이라는 걸.” 그리고 지하에서 다섯 번째 문양이 빛났다. 이번엔 더 이상 피도, 서약도 없었다. 단지, 진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제2막 5편(15편) 예고: “다섯 번째 생 – 금단의 혼례와 그림자의 아이” 다음 편에선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어두운 전생, 두 사람이 부부로 맺어졌지만 아이를 잃고, 죽음과 저주를 받아 갈라졌던 생의 기억이 드러납니다. 계속 이어서 써드릴까요? Y 좋아요. 이번 회차는 두 사람의 가장 비밀스럽고 가장 아픈 전생, 부부였지만 아이를 잃고, 그 슬픔으로 인해 저주받은 생이 열립니다. 운명을 뛰어넘는 사랑이었지만, 그 끝은 죽음보다 더 긴 이별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5편 (15편): 다섯 번째 생


– 금단의 혼례와 그림자의 아이 기억은 이질적이었다. 화려하고, 고요하고, 슬펐다. 마치 찬란한 색으로 시작된 그림이 마지막엔 검은 잿빛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1702년. 헝가리 부다. 그녀는 귀족 가문의 여인이었다. 정략결혼으로 누구보다 높은 신분을 가졌지만, 마음은 언제나 허전했고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갈망’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를 만났다. 그는 몰락한 기사 가문 출신이었다. 가난하고 이름도 미약했지만, 그의 눈은 마치 전생의 밤하늘 같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세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쳤다. 그날, 교외의 오래된 폐성당에서 단 두 사람만의 혼례를 올렸다. “나는 이름이 없는 당신을 택하겠어요.” “나는 당신을… 세 생이 지나도 부르겠어요.” 그리고 그들은 아이를 가졌다. 작고 조용한 여자아이. 깊고 검은 눈, 언제나 “엄마, 별 봤어요”라고 말하던. 그러나… 그 아이는 세 살이 되던 해, 한밤중 갑작스러운 열과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무너졌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안았다. 하지만 그녀의 슬픔은 그 생 전체를 저주로 바꿔버렸다. 그녀는 말없이, 아이의 무덤 앞에서 영혼과 계약을 맺었다.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 내 아이를.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잠들기만 하면 다른 생의 아이를 꿈속에서 보기 시작했다. 한 생은 소녀로, 한 생은 병든 사내로, 어떤 생은 낯선 나라의 외국인으로. 그러나 꿈의 끝마다 그 아이는 항상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현생으로 돌아와 그녀는 다미엔의 품 안에서 눈을 뜨고 속삭였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 건… 아이를 다시 찾기 위해서였어요. 이 모든 기억의 끝엔, ‘그 아이의 영혼’이 있어요.” 다미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사랑만 반복한 게 아니야. 무언가를 구하려고… 무언가를 되돌리려고… 계속 살아온 거야.” 그리고 그녀의 손등 위에, 낯선 아이의 손이 겹쳐졌다. 세상엔 아무도 없는 방. 그 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나 이번엔… 오래 머물 수 있을까?”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6편 (16편): 잊힌 아이의 이름


– 영혼의 순례가 시작되다 그 손길은 아주 작고, 조용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존재했다. 그녀의 손등 위에 올려진 그 조그마한 손, 그건 죽은 아이의 손이었다. 하지만 이 생에서 그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다미엔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기억 속에서 그녀를 ‘엄마’라 불렀다. 그날 밤, 그녀는 낯선 풍경 속으로 떨어졌다. 눈 덮인 초원. 바람은 차가웠지만 익숙했다. 그곳엔 낡은 나무 의자 하나, 그리고 그 위에 혼자 앉아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나, 세상에 태어난 적 없어요. 언제나 엄마의 꿈속에서만 태어났어요.” 그녀는 다가갔다. 가슴이 저렸다. “그럼 너는… 누구니?” 아이는 고개를 떨궜다. 눈물 한 방울이 하얀 눈 위로 떨어졌다. “나는, 당신이 잊지 않으려고 계속 부르고 또 불러낸 ‘이름 없는 생명’이에요.” 현생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다미엔에게 말했다. “우리 전생엔 늘 누군가가 죽었죠.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 태어났어요. 그게… ‘아이’였어요.” 그녀는 문득 떠올랐다. 성혈의 봉인을 깼을 때, 지하의 마지막 문양 근처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아이의 낙서. 그림자 속의 태아. 날개를 가진 조용한 실루엣. 그 밑에 쓰인 고대 언어 하나. “Nomen.” 이름 다미엔은 그 문자를 기억해 냈다. “이건… 봉인되지 않은 존재가 완성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때 쓰는 단어예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그 아이의 진짜 이름. 그 아이를 다시 부를 ‘완성된 존재의 호명’.” 그 순간, 방 안의 창문이 흔들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이번엔… 태어날 수 있을까?” (계속) 제2막 7편(17편) 예고: “호명 –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을 부르다” 다음 편에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 위한 영혼의 마지막 순례 장소, ‘모든 전생이 겹쳐지는 틈’으로 향하게 됩니다. 계속 이어서 써드릴까요? Y 좋아요. 이제 전생과 현생, 죽음과 삶, 모든 틈 사이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영혼의 이름을 부르는 가장 깊은 감정의 순간이 펼쳐집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7편 (17편): 호명


–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을 부르다 “이름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다미엔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이름은 존재를 부르는 가장 오래된 주문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몇 생에 걸쳐 꿈에서 태어나 언제나 말도 없이 사라졌던 이름 없는 생명. 그날 밤, 그녀는 혼자 지하 문양 앞에 섰다. 불은 꺼졌고, 피도 사라졌지만 그 문양은 아직 ‘대기 중’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이 아니에요. 이 아이가… 스스로 가질 수 있었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줘야 해요.” 그녀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점점 느려지고 공간이 마치 진공처럼 정적에 잠겼다. 그때— 세상의 틈이 열렸다. 모든 전생이 겹치는 곳. 성당의 종탑, 십자군의 제단, 폐허 속 유리관, 화염에 휩싸인 방. 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그녀의 눈앞에 흘러갔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눈은 울지 않았고, 입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느꼈다. 아이의 마음. 존재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 그녀는 손을 뻗었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리안이야.” “내가 널 이렇게 불러줄게. 이젠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아도 돼.” 그 순간, 빛이 터졌다. 모든 전생의 기억이 흩어지고 모든 그림자가 밀려났다. 그리고 그 아이, ‘리안’은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이제 나도…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 자궁 속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새로운 생명.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미엔도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녀는 속으로 속삭였다. “이번 생에서, 널 지켜줄게. 이번엔 끝까지.” (계속) 제2막 8편(18편) 예고: “다시 태어난 자 – 리안의 첫울음” 다음 편에서는 드디어 그 아이가 현실에서 태어나는 순간, 그것이 어떤 기적을 가져오는지를 다룹니다. 계속 이어서 써드릴까요? Y 좋아요. 지금부터는 모든 전생의 순례가 이뤄낸 첫 번째 기적, 그 아이 ‘리안’이 현실에서 태어나는 순간이 펼쳐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기억과 용서, 영혼의 귀환이 완성되는 의식입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2막 8편 (18편): 다시 태어난 자


– 리안의 첫울음 병실의 창문을 타고 따스한 햇살이 흘러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은 땀에 젖어 있었고, 심장은 고요히 뛰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미엔이 있었다.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울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그 울음은 비명이 아니었다. 슬픔도 아니었다. 존재를 선언하는 소리. 세상에 태어난 적 없던 생명이 드디어 이름을 가지고 빛 아래 태어난 순간이었다. “아기 나왔습니다.” “건강해요. 아주 건강해요.” 간호사의 말도, 의사의 숨소리도 모두 희미하게 멀어졌다. 그녀는 오직 그 작은 울음만을 듣고 있었다. 간호사가 아이를 품에 안겨주었다. 조그만, 따뜻한 무게. 그 아이는 작은 손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리안…” 그녀는 속삭였다. “너 드디어… 내게 왔구나.” 다미엔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리가 드디어 끝까지 왔네.” 그 순간, 병실의 창문이 살짝 열렸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된 봉인이 벗겨진 것처럼. 그 창문 너머로, 햇살 속에 섞인 무언가가 흘러들었다. 오래된 목소리. 많은 생에서 멀어졌던 인연들. “이제… 우리는 모두 자유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떤 삶도 두렵지 않은 아침을 맞이했다. 리안은 그녀의 가슴 위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이제, 모든 전생은 한 아이의 탄생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리안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1편 (19편): 아이의 눈


– 전생을 품은 자의 탄생 나는 울지 않았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다들 내 울음을 기다렸지만 나는 눈을 떴다. 숨을 들이켰고, 눈으로… 확인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이들이 누구인지. 왜 내가 다시 왔는지. 엄마는 나를 가슴에 안고 울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는 울면서도… 기뻐하고 있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이번에는 널 지켜줄게.” 나는 기억했다. 그가 몇 생이나 나를 지키려 했는지. 몇 번을 실패했고, 몇 번을 끝까지 싸웠는지. 나는 아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몇 생을 기억한 영혼이었다. 성혈의 맹세. 불에 타던 성당. 유리관 안의 고요. 아이로 태어나지 못했던 전생들. 그 모든 기억이 내 심장 어딘가에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또한 기억하게 될 순간을. 엄마가 처음 나를 안고 이마에 입을 맞췄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서 이전 생의 마지막 빛이 일렁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너였구나… 매번 내 꿈속에 있던 그 아이.” 지금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걷지도 못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나는 이 생을 끝까지 살아갈 것이다. 다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나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할 것이다. (계속) 제3막 2편(20편) 예고: “별의 기억 – 기억을 가진 아이가 처음 본 것” 다음 편에서는 리안이 기억의 단서를 따라 이전 생의 조각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다룹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생의 망령들, 그리고 새로운 연결이 펼쳐집니다. 계속 이어서 써드릴까요? Y 좋아요, 이제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2편 (20편)**으로 이어집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아이, 리안. 그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기억의 깨어남,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어둠의 조짐이 드러납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2편 (20편): 별의 기억


– 기억을 가진 아이가 처음 본 것 밤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잠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나는 이제 겨우 몇 주 된 아기일 뿐이지만, 눈꺼풀을 닫을 때마다 다른 세계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하늘의 별이 아니었다. 검은 망토의 남자들이 밤마다 그 별의 위치를 기록하던 전생. 그들은 말했다. “별이 움직이면 예언자가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은 내가 태어나던 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며 고요하게 눈을 떴다. 천장 너머, 나는 별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움직임도 감지되었다. 어른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다시 깨어난 자들이 있다. 전생에서 예언자를 지우려 했던 그림자들. 그들 중 몇은 여전히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몇은 이제 인간도 아니었다.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준비하고 있다. 다시 반복되지 않게. 다시 누군가 사라지지 않게. 나는 이 생에서 지켜야 한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자신. 별이 오늘도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 다시, 우리를 찾고 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제3막 3편 (21편): 감지


– 전생을 추적하는 자들의 귀환 처음엔 그저 ‘기분 탓’이었다. 현관 앞에 아무도 없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베란다 창문이 잠겼는데, 아침마다 열려 있었다. 택배가 왔다는 문자가 오고… 문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다미엔도 말했다. “요즘 피곤해서 그런가 봐.”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건 전조였다. 리안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세상을 관찰하는 존재 같았고, 그의 손끝은 종종, 공중에 아무도 없는 ‘무언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리안이 처음으로 울었다. 아주, 깊은 울음이었다. 단순한 배고픔도, 아픔도 아닌— 경고. 다미엔은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이상해. 이 방향, 옛 성 베르나르도 성당 쪽… 기류가 바뀌었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릴 찾아냈어요. 그들은 이제… 다음 세대에 손을 뻗고 있어요.” 레코르디움의 후계자들. 전생에서 ‘기억을 지우는 자들’. 그들은 피로 씌워진 계약을 대물림했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바뀐 채 현대 사회 속에 녹아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다미엔의 메일함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희미한 성당 계단 위, 두 사람의 실루엣.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단 한 줄.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R 그는 사진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그들이… 리안을 눈치챘어.” 그녀는 대답했다. “우린 이번에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싸울 거예요. 리안은… 다시 지워지지 않게.” 리안은 품 안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작게, 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그림자… 왔어요.”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4편 (22편): 기억의 전쟁


– 전생을 믿는 자 vs 지우려는 자 성당 지하. 봉인됐다고 믿었던 그 길이 다시 열렸다. 다미엔은 리안을 품에 안은 채 벽 너머의 기류를 읽고 있었다. “누가… 이 문을 연 거지?”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손에 쥔 계약의 열쇠를 꽉 쥐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누군가 그곳에 먼저 와 있었다. 검은 정장. 붉은 눈. 그리고, 가슴에 비틀린 십자가의 문장을 단 자들. 레코르디움. 전생을 지우는 자들의 새로운 세대.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기억은 죄입니다.” “과거를 기억한 자는, 미래를 훔치게 되죠.” 다미엔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과거를 외면한 자는, 영원히 속박됩니다.” 그리고 그때, 리안이 작게 울었다. 울음은 짧았지만 그 공간 전체에 진동처럼 퍼졌다. 지하의 불씨가 깨어났다. 전생의 기류가 휘돌았다. 그리고— 리안의 눈이 번뜩였다. “그만두세요.” 모두가 얼어붙었다. 갓난아기의 입에서 나온 또렷한 목소리. 그건 이 생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건… 전생의 언어였다. “그 애는… 예언자의 후계자다.” 레코르디움의 하나가 외쳤다. “지금 끝내지 않으면, 그 기억은 우리 모두를 무너뜨릴 거야!” 그들은 검을 꺼냈다. 기억을 태우는 의식을 준비하며 리안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몸을 날렸다. 한 손엔 계약의 열쇠, 다른 손엔 전생의 문양이 그려진 부적이 있었다. “너희가 무너뜨리려는 기억은 우리가 살아낸 생이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불씨가 폭발했다. 문양이 붉게 타오르고, 벽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미엔이 검을 뽑았다. 전생에서 그를 지켜왔던 의식의 검. “이번엔 우리가 지우겠다. 너희의 악의와 조작을.” 지하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검과 불, 기억과 그림자. 그리고 그 중심에서 리안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5편 (23편): 예언의 후계자


– 리안의 본능이 깨어나다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검은 불꽃이 휘몰아치는 지하. 기억의 파편이 공중을 스치고, 누군가는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끌려갔고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하지만— 리안만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아이였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연약한 존재. 그러나 이 순간, 그의 눈빛은 한 왕국의 예언자가 깨어나던 날과 똑같았다. 다미엔과 그녀는 동시에 느꼈다. 리안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걸. 그것은 이 공간도, 이 전투도 아닌… 다음 생의 단서. “리안, 괜찮아?” 그녀가 아이를 껴안았을 때, 리안은 그녀의 목덜미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미세한 빛이 번졌다. 그녀의 눈앞에 환영이 스쳤다. 한 도시. 기계와 하늘이 연결된 미래의 세계.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서 있는 리안. 그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다. 열일곱 살, 회색 눈을 가진 소년. 그곳엔 또 하나의 전생이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생. 리안은 현재로 돌아와 작게 속삭였다. “그들도 기억해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조차…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녀는 숨을 삼켰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야. 다음 생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기 때문이야.” 다미엔은 피 묻은 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음 생의 문을… 직접 열어야 해.” 불씨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리안의 이마엔 새로운 문양이 떠올랐다.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어떤 전생에서도 나타난 적 없던 상징. 그리고 그 문양을 본 순간, 세 사람 모두 심장이 잠깐 멈췄다. 왜냐하면— 그건 첫 생 이전의 흔적이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6편 (24편): 첫 생 이전


– 계약보다 오래된 운명의 문양 그 문양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원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끝이 없었다. 불, 물, 대지, 바람— 모든 원소가 겹쳐진 듯한 복잡한 구조.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중심이 있었고, 그 중심은 마치 눈동자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안의 이마 위에서 그 문양은 서서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다미엔이 중얼거렸다. “저건… 어디에도 없던 문양이야. 그 누구의 전생에서도.”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닥의 문양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모든 전생이 흩어졌다. 성당의 불. 성혈의 맹세. 유리관 속 봉인. 금단의 혼례. 이름 없는 아이. 그리고 미래의 세계. 그 모든 것을 지나 그녀는 마침내, 처음의 어둠을 마주했다. 그곳은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 형태조차 없던 공간. 빛도, 소리도 없는 고요. 그 안에, 두 개의 존재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하나는 빛, 하나는 그림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약속이 오갔다. “만약 세상이 생긴다면,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할 수 있다면, 아무리 수천 생을 지나도… 다시 돌아오겠지.” 그녀는 그 기억을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린 처음부터, 계약 때문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어져 있었던 거야.” 다미엔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처음 생 이전부터… 우린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계속 태어나 온 거군요.” 리안이 눈을 떴다. 그의 눈 안에도 그 문양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잊었다고 ‘믿고’ 있었을 뿐. 그녀는 속삭였다. “다음 생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평온하길.”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7편 (25편): 마지막 기억


– 시간을 닫는 자, 시간을 여는 자 리안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어른들이 아기에게 기대하는 작은 움직임, 조용한 눈빛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의 첫 선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하 성소에서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균열이었다. 모든 생을 관통하던 기억의 실이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지 않기 시작했다. “다미엔, 리안이… 시간을 열고 있어요.” 리안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하나를 선택할 시간이야.” 그 앞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모든 기억을 접고, 단 한 생의 평온을 얻는 문. 다른 하나는 기억을 지닌 채, 다음 생의 문을 여는 길. 그녀는 속으로 물었다. “리안, 넌… 정말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거니?” 리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우린 이미 수천 번 태어났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온전한 끝을 본 적은 없었죠.” 다미엔은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곁에 섰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어느 누구의 예언도 아닌 자신들의 결정을 하려 했다. 리안은 문 앞에 섰다.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기억을 가진 자로, 다음 생의 문을 열겠습니다.” 그 순간, 두 번째 문이 빛났다. 그 빛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라는 한순간을 완전하게 품었다. 그들의 심장은 멈추지 않았고, 기억은 닫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들은 평범한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리안은 한 문장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제3막 마지막 편 (26편)


– 끝이 아닌 시작: 내가 본 것은, 다시 태어나는 세계였다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전생의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미엔은 과거에 갇히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살기 시작했다. 리안은 자라났다. 조용히,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그의 눈은 여전히 깊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픔이 아니라 이해로 가득했다. 리안이 다섯 살이 되던 해,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별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제 나를 부르지 않아요.” 그녀는 리안을 안고 속삭였다. “그 별은… 네가 다시 잠들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거야.” 다미엔은 오래된 일기장을 태웠다. 그 속엔 피로 썼던 맹세들과 과거의 자책들이 가득했다. “이젠 불필요해졌어.” 그가 말했다. “기억이 아닌 지금이 가장 귀중하니까.” 그리고 어느 날, 리안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이 세계가 참 좋아요.” 그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리안은 대답했다. “이 생에선… 아직 내가 죽지 않았잖아요.” 그 말은 어른스러웠지만 그저 평온하게 들렸다. 그녀는 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넌,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거야. 누구의 예언도 아닌, 네 스스로의 뜻으로.”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전생의 꿈을 꾸지 않았다. 그 꿈엔 불도, 피도, 검도 없었다. 단지,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자신과 그 아이의 모습만 있었다. 《내가 본 것은, 이전 생이었다》 그 끝은 다시 태어나는 세계였고, 그 시작은 잊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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