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류편집샵의 등장
3년 전 와인을 하나도 모를 때 처음으로 와인샵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타지에 여행 간 외국인처럼 혹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가격 덤터기를 씌우지 않을까 걱정하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결국 점원의 추천을 받아 와인 한 병을 손에 들고 가게를 나왔다. 가격표도 있고 점원도 친절했지만 소비자 쪽에서 먼저 신뢰하지 않는다면 영 찜찜하다.
와인앤모어는 종합주류유통기업인 신세계 L&B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주류 매장이다. 상호명처럼 와인을 필두로 그 외 위스키, 수제맥주, 사케 등 다양한 술을 판매하고 있다. 요즘은 이런 전문주류샵이 아니더라도 편의점이나 코스트코에서 쉽게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주류를 잘 모르지만 쉽게 시작하고 싶을 때 와인앤모어에 가보는 건 어떨까?
와인앤모어는 기존 주류샵과 다르게 밝은 매장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주류샵을 떠올려보자. 통유리로 된 차가운 백색 조명의 가자주류 또는 어둑어둑한 조명의 개인 와인샵은 왠지 모르게 들어가기가 조심스럽다. 또 남대문시장에 가서 중고 위스키를 사기에는 이게 진짜인가 의심이 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앤모어는 믿음을 가지고 다가가도 좋다. 대기업 계열사의 주류유통회사라는 신뢰건 큐레이션을 해주는 직원분을 향한 신뢰건 둘 다 괜찮다. 어떤 것에 대한 신뢰는 진짜 그것이 괜찮아서 생긴다기 보다는 신뢰를 가지는 사람 마음이니까.
처음에는 와인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서울숲점을 방문했었다. 그때는 '음 이런 주류매장도 있구나'하고 잊어버렸다. 지금처럼 매장에 애정을 가지고 방문하게 되기까지 3번의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개인적으로 수제맥주 만들기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나서였다. 라거부터 페일에일, 스타우트까지 브루잉 및 시음을 하고 나니 여러 종류의 맥주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맥주를 사러 와인앤모어를 가게 됐는데 수업 때 배웠던 종류별 대표 맥주들을 대부분 판매하고 있어 큐레이션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 애정의 연결고리가 생긴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몇 개월 후 하이볼에 관심이 생겨 산토리 하이볼을 사러 갔을 때였다. 직원분이 현재 매장의 산토리 하이볼이 똑 떨어져 재고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하이볼을 추천해 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신이 나서 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증류주와 하이볼캔을 추천해 주셨다. 덕분에 잘 알려진 평범한 산토리가 아닌 더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었다. 때로는 오차 없고 정확한 추천보다 이러한 진실됨이 사람 마음을 더 끌어당기는 면이 있다.
세 번째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와인/증류주 교육 기관)를 수강하면서 마셔보고픈 와인이 생겨 사러 갔을 때다. 나라/품종/스타일을 말하며 와인 추천을 부탁드렸다. 그런데 그 조건에는 지금 세일하는 것 중에 괜찮은 게 없다며 고민을 하셨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즐기려면 돈이 필요하다. 증류주나 맥주도 좋은 건 값이 나가지만 특히 와인은 좋아하는 맛과 향을 찾아나가려면 두둑한 지갑이 필요하다. 아무튼 직원분이 본인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원하시는 와인은 다음번에 세일할 때 드시라며 다른 종류의 와인을 추천해 주셨다. 나는 그 점원분의 (친절과 진심이 섞인) 적당한 참견이 좋았다. 원하는 와인이 있긴 했지만 내 와인 알고리즘은 아직 좁디좁아서 경험해 볼 와인이 넘치니까.
나처럼 자신의 주류 취향을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와인앤모어를 추천한다. '성수동 페일에일'이나 '사과증류주 바람'처럼 실망시키지 않는 새로운 주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받은 와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 1급 발암물질인 알코올을 많이 경험해 보자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We think too much and feel too little" 말처럼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적게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술을 즐기는 게 좋다면 많이 마시고 느껴보자. 떠다니는 많은 생각을 잠재우고 오감에 집중하는 시간이 우리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