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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7 부지바 산책

부지바

수업을 끝내고 돌아와 아이들과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을 지어 먹었다. 이번주 아이들 수업은 오후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영어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지만 아직 어린 둘째는 가기 싫다며 떼를 쓴다. 수업에 잘 참여하면 한국에 돌아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달래보지만 가르쳐주지도 않은 '딜'의 유용성을 일찌감치 스스로 체득한 둘째가 이렇게 허술한 구두 계약을 호락호락 수락할 리 없다. 구매 가능한 상한선까지 다짐을 받고서야 둘째를 겨우 수업에 참여시켜 놓고 나는 부지바에 산책을 나갈 채비를 했다.

우리 숙소는 살리니 리조트라는 곳인데 도로를 경계로 바닷가를 바라보며 덩그러니 혼자 자리를 잡고있기 때문에 휴양지 느낌이 나긴 하지만 근처에 편의 시설은 없어서 불편한 점도 있다. 부지바는 리조트에서 가장 근접한 번화한 지역이다. 리조트는 하루 두번 근처 부지바라는 곳으로 셔틀을 운행하고 있었다. 리조트에서 차를 타니 10분쯤 가서 바닷가 마을의 작은 편의점 앞에 내려 준다. 현금 지급기에서 유로를 조금 인출하고 해안선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부지바 스퀘어 쪽으로 가면 더 번화한 거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나는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어서 한적한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없고 조용한 길을 걷다보니 스타일리쉬한 야외 오픈 바가 하나 있다. 


 '카페 델 마르 몰타' 라는 바가 나름 핫플레이스라던데 깔끔한 디자인과 탁 트인 바다 전망이 멋진 오픈바로 작지 않은 수영장을 겸하고 있었다. 밤에는 핫한 클럽으로 변신을 하는지 저녁 무렵이 되니 노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자리를 만들고 음식을 나르느라 바쁘다. 근처에는 캠프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액티비티의 일환으로 방문하기도 하는 아쿠아리움도 있다.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손타지 않은 땅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걸 보면서 제주도 월정리 바다의 변질이 떠올랐다. 티없이 깨끗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조용한 어촌 마을이던 월정리 해안은 애초에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이름의 작은 오픈 카페가 썩 어울렸던 곳이었지만 이제 그곳에 들어선 카페들은 '아일랜드 개츠비'쯤 되는 간판이 더 어울릴 만큼 탐욕스러움으로 오염되었다. 영세한 어촌 주민들에게는 인생 대박의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끝모르게 펼쳐져 있던 바다와 맞닿은 하늘 끝에 줄지어 서있는 하얀 풍차들을 배경으로 자유의 춤을 추던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은 다시 되돌아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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