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충족되어야 할 요소들이 있다. 돈, 시간, 체력. 그리고 이런 물리적인 요소들 외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용기'가 아닐까 한다. 특히 혼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떠날 때는 더욱 그렇다. 남편은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닌 여행을 걱정하면서까지 갈 이유가 뭐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건 아마 여행에 대한 욕구가 두려움과 걱정보다는 한 뼘 정도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돈 걱정, 건강 걱정, 안전 걱정, 한국에 있을 다른 가족들 걱정 등등을 뒤로하고 항공권 예매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만큼은 별로 있지도 않으나마 용기를 끌어내올 필요가 있다. 보통 지리적으로 멀수록 더 많은 돈과 더 긴 시간과 더 강한 체력과 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유럽은 지리적으로 머니까 당연히 여기에 해당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한 데다 북한으로 통하는 길까지 막혀있는 터라 육로로 갈 수 있는 나라가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적긴 해도 유럽은 특히나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유럽은 우리와 양 극단의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문화적 차이도 은근한 스트레스 요인이다. 우리와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관습적으로 다르다 보니 매번 뭔가를 할 때마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언어적으로도 소통이 완전하지 않은 건 당연한 데다 그 언어의 행간을 읽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에 본의 아니게 진상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때도 있다.
이번 여행은 한 달간의 몰타 영어 캠프와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겸한 터라 이동도 많고 체류 시간도 길어 떠나오기 전부터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걱정돼서 두려워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앉아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도전은 언제나 위험이 따르지만 또 종종 그럴 가치가 있으며 그래서 '용기'라는 카드가 필요하다. 어쨌든 아들과 딸과 함께 다녀온 두 달 간의 여행은 무탈히 마무리가 되었고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익숙하고 편안했다. 식당에 가서 팁을 줄 필요도 없었고 물값을 걱정해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 밑반찬을 몇 번이고 더 리필해 먹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공유된 심리적 바운더리 안에서 특별한 사항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상대방의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다. 내 나라, 내 집에서 평소에는 잊고 살았던 익숙함과 편안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잔잔한 행복감이야말로 긴 여행의 해피 엔딩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