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기를

by 지효네

욕심인 걸 알면서도 또 잔뜩 대출해 왔다. 서고에서는 자제력이 상실된다.

독서보다는 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나는 가져온 책을 위로 쌓아도 보고 옆으로 나열도 해 보고 책 냄새도 맡아본다.

그저 이 네모난 종이들의 합이 주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 마저 좋아 므흣한 미소를 내는 것으로 대출 목적의 반은 이루어낸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에 독서 만한 것이 없다.

대출해 온 책 더미에서 산문집 하나를 고른다.

너무 좋다.

결코 짧지 않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산문집인데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아름답지 않은 구절이 없다. 마치 나도 그곳 어디에서 그 고독을, 외로움을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온기 가득한 고독에 매료되었다.

책 여기저기 인덱스 테이프를 색깔별로 붙여둔다.

‘이러다가 이 책은 전부 필사하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

어느 순간 문장의 아름다움에 빠져 책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나는 없어지고 단어 하나, 어휘 하나하나를 탐욕하는 욕망 아줌마를 발견한다.

5월에 만개한 장미들을 눈으로 담다가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대다가 그것도 부족해서 초콜릿 상자 안에 하나씩 담으려 했던 탐욕의 순간이 떠 올랐다.

​​

인덱스를 다 떼어 내었다.

그리곤 다시 책 속으로 숨어든다. 이제야 편안해진 나를 마주한다.

내가 눈으로 마음으로 빠진 이 책이 주는 그 무엇들이 온몸 구석구석 흩어지기를…

그렇게 어디 구석에서 잘 자리 잡고 나와 함께 살아주다가.

​한없이 작아질 때, 또는 너무나 큰 기쁨을 얻게 되어 어쩌지를 못할 때 그리고 누군가 내게 손길을 필요로 할 때

어디선가 툭하고 튀어나와 나를 그리고 우리를 토닥이고 안아주기를 바라본다.

또 모르지.

심장에 있던 그것과 폐에서 살고 있던 또 다른 그것이 한날한시에 만나 세상 커다란 힘이 될지도.

유퀴즈에 김혜자 아줌마가 그러셨다.

“책 읽은 건 어디 안 가”


왠지 엄마보다 신뢰가 가는 고향의 맛 아줌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