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송 Jan 15. 2024

선이 될 이야기

취미나 특기를 물으면 항상 고민한다.

좋아하는 건 많은데 잘하는지는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체르니까지였나..

그 덕에 악보는 볼 수 있었다. 피아노를 배운 걸 써먹은 건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허접한 실력이었지만 언니는 내게 축가 반주를, 동생에게 축가를 부탁했다. 우리는 쿨의 이재훈이 부른 '난 행복합니다'를 연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에게 미안할 정도로 허접했지만 언니는 그저 우리를 대견해했던 것 같다.

베이스도 배웠다. 당시 내 몸만 한 베이스를 메고 연주를 하는 걸 보고 다들 우스워했다. 그래도 난 내가 멋있게 느껴져 좋았다. 실상은 둥~ 둥~ 둥~ 코드 겨우 잡을 뿐이었다.

통기타도 조금 배웠다. 대학시절 들어간 동아리에서. 손에 물집이 터질 때까지 코드를 익혀 웬만큼 연주도 했다. 지금은 물집도 사라지고 기타를 안친 지 꽤 오래됐다. 진짜 신기한 건 1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기타를 잡으면 손가락이 코드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몸의 반응은 무섭다. 기타 학원이나 다시 가볼까?

축구 동호회도 했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남자 애들에게 끼워달라고 해봤자 소용없었다. 고무줄놀이나 했어야 했다. 맘속에 남아있던 호기심으로 결국 여자 축구도 해보았다. 경기도 뛰고 나름 있는 운동신경으로 수비도 잘했다. 11:1로 진 경기가 마지막 기억이지만.

작년 5월엔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실은 오랜 염원 같은 거였다. 원데이 클래스에 충동적으로 다녀온 뒤 한 달 등록을 해버렸다. 걸그룹 댄스 4곡을 배웠는데 한 달 동안 마치 내가 연습생이 된 것 같았다. 아이브의 IAM을 출 때 골반을 돌리던 쾌감을 잊을 수 없다. 그래, 실상은 아줌마의 몸부림이었다.

연말이 되니 또 뭔가 하고 싶어졌다. 보컬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학원을 알아봤다. 학원 후기나 블로그를 보는데 죄다 어린 20대나 청소년들 위주의 학원이었다. 그래도 한번 다녀보자! 하고 결심이 선 찰나, 감기가 걸렸지 뭐람. 쉰 소리로 보컬학원을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보컬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지금 목소리가 이래. 연기학원부터 가볼까?" 남편은 체념한 듯 말한다. "다송이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네~?"

머쓱해하며 서로 껄껄 웃었다.

우리는 안다. 보컬 학원, 연기학원에 다니고 나서도 나는 이전에 배운 피아노, 기타, 축구, 춤처럼 딱 그 정도에 멈춰 설 것이다. 재밌게 배웠지만 거기서 멈추게 될 흥미들.

변덕이 심하다. 꾸준하지 못하고.
얇고 넓은 경험과 도전들이 내게 주는 건 혼란일까, 추억일까, 성장일까.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닐까. 이 와중에 돈벌이를 하며 살아갈 직업이 있다는 것엔 감사해야 하는 거겠지? 그마저도 기간제교사라 계약직이지만 계약은 매년 하면 될 일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이런 삶도 재밌어 보인다고. 자꾸 해보라고 누가 부추겨주면 좋겠다. 취미든 특기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좋으면 해 보는 거지.


그게 네 발목을 잡을지 발목에 날개를 달아줄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한번 도전해 보라고. 삶의 점과 같은 경험들이 결국은 선으로 연결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 내가 글쓰기 수업을 하며 통기타로 환영송을 부르는 거야. 쉬는 시간엔 피아노도 좀 치다가 같이 걸그룹 춤도 한번 추고 말야.

투박하지만 나만의 선들이 그려낼 그림을 상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내가 집 사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