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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Jun 14. 2024

서울 골목 투어 여덟 번째

이촌역에서 신용산역까지

오랜만에 이촌역에서 신용산역 사이를 걸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전 4년간 신용산역 인근에서 살았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인데 그 유명한 IMF 시기에 나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날리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으려나

쓰다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서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여하튼 그 이후로는 아들 녀석 하나 키우고 먹고 사는 것에 급급했고

목돈을 모아 집을 다시 산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 저곳 이사를 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조금이 아니라 많이 슬프다.)

그 덕분에 이곳 저곳 좋은 곳을 알게 되었으니

이렇게 퉁치기는 참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은 있구나 싶다.


신용산역 인근에서 사는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교통이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면 강릉도, 춘천도, 여수도, 시댁인 수원도 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있었고

아들녀석은 좋아하는 축구장이 길건너였고

반경 15분 거리에 유명 맛집들이 널려 있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공원과 큰 공원, 뮤지엄과 각종 전시관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북적이니 나처럼 겁장이도 무서울 일이라곤 없었다.

번화가에 집이 있으면 좋은 점이다.


신용산역에서 길을 건너 이촌역쪽으로 걷다보면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은 적어지고 식물 냄새가 짙어지고 산책하는 강아지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래되었으나 멋진 아파트가 있는데

숲에 아파트가 있다는 느낌보다 아파트 안에 숲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로또 당첨이 된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아파트를 계약할 것같다.(그럴리가 있겠는가만은)

그리고 그 곳을 지나 길을 건너면 본격적으로 동부이촌동이 열리기 시작한다.


동부이촌동은 발령동기 친구를 만나러 처음 가봤던 곳이다.

초임교사 발령을 받고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음악선생님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이 서로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고 학교를 알아가는 1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갑작스럽게 우리는 헤어졌다.

음악선생님의 발령이 잘못되었다면서 다른 학교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지만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부리나케 집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우리는 눈물로 헤어졌다.

그 이후로 소개팅을 시켜주기도 하고

각자 결혼식에 가기도 하고

입덧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방학때마다 만나서 아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으니

인연이라는 것이 만난 시간과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그 친구의 집이 동부이촌동이었다.

진입로를 찾기 힘든 동부이촌동에서 일본음식점 냄새가 짙은 우동을 먹고

지금의 주상복합아파트 같은 느낌의 놀라운 집에 들어가보고

한강쇼핑센터에서 아이옷을 샀을 때의 그 생경한 느낌의 동부이촌동은

이제는 리모델링과 함께 변화의 느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나의 주된 산책 코스였던 곳들을 지나다보니 그 사이 세월이 이리 많이 흘렀나 싶었다.

2년이니 바뀔만도 하지만 나의 2년은 순삭한 느낌이다. 늙을수록 시간은 이리 잘도 간다.

심지어 나의 두 번째 애정하는 고구마 과자를 사러 단골이었던 편의점은 주인이 바뀐 듯 했다.

아픈 동생과 함께 였던 육교를 지나면서 잠시 서서 그때처럼 남산타워 사진을 찍었다.

이쪽 뷰로 보는 남산타워는 학교에서 매일 보는 남산타워뷰와는 사뭇 다르다.

어느쪽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른 법이다.

같은 거리를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어느 시간에 걷는냐에 따라서 느낌은 같을 수가 없다.

일몰시간 즈음이라면 더욱 멋진 사진이 나왔겠으나 그때까지 그곳에 있을 순 없었다.


<오늘은 이촌역에서 신용산역까지만 살펴보자.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까지는 다음 기회를 도모하자.

더 이상 늦게 가면 집에 혼자 있는 고양이 설이가 화낼게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이렇게 혼잣말이 많아진다.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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