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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Jun 17. 2024

서울 골목 투어 아홉 번째

힙지로는 너무 힙해서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나의 마지막 학교는 을지로에 위치한다.

마지막 학교를 선택한 기준은 오로지 교통이었다.

집을 어디로 이사할지, 언제 이사할지가 명확하지 않던 시기에 전보이동학교를 선택해야 했다.

따라서 어디로 이사를 가던지 출퇴근이 어렵지 않은 곳이 최우선이었다.

지금 학교는 을지로 지하철역에서 5분컷인 곳이다.

대기업 빌딩들과 오래된 인쇄업체들이 안 어울리는 듯 공존하는 그곳에

진짜 믿어지지 않겠지만 오래된 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 오기전 을지로라고는 을지로입구에 있는 대형백화점들 밖에는 몰랐었다.

서대문역에 있는 학교에서 쭈욱 걸어서 청계천을 지나면 을지로에 도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한번쯤은 지나간 적도 있었을테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이 학교에 오고나서 을지로의 이곳 저곳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지만

아직도 을지로를 다 안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큰 도로 옆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레트로인지 최신인지 알 수 없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고

다양한 것들을 파는 방산시장, 광장시장이 한 블록 사이에 있고

(지나고보니 친정 아버지가 방산시장에서 방수업체를 작게 운영하셨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한번쯤은 왔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옆구리는 청계천을 길게 끼고 있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을지로를 다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운상가 건물 주변이 흥미롭다.

새로 건축되는 건물들도 있지만 옛 건물들이 소곤거리며 이야기 하듯이 모여있다.

사이즈가 큰 곳은 없다.

고만고만한 크기에 카페도 있고 베이커리도 있고 철학 서점도 있고 갤러리도 있다.

그리고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이다. 힙지로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있것이다. 내가 아직 이해하지못했을뿐.


처음으로 을지로에 위치한 학교에 갔을 때(2월 추운 날이었다.) 흰 굴짬뽕을 먹었었다.

오래된 중국집이 2층이었다. 기대하지 않고 갔던 그곳에서 배추가 가득 들어간 인생 굴짬뽕을 먹었다.

겨울 초입에는 아들 휴가일에 맞추어 연탄불에 구은 도루묵구이를 먹으러 갔었다.

너무 붙어있는 좌석이 불편하기도 하고 옆자리의 이야기가 들려서 뻘쭘하기도 했지만

알이 많은 도루묵을 적당하게 잘 구워서 오뎅과 같이 먹은 그날의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작은 카페는 항상 대기가 가득하지만 달달하고 값이 착한 라떼가 기다리고 있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맛과 멋진 그림이 그려진 컵이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추운 겨울날 먹었던 오징어찌개는 걸쭉한 국물과 계란찜의 어울림이 소주가 생각나게 했고

간판도 보이지 않아 찾아가기도 쉽지 않던 2층집 단짠단짠 태국요리와

작품인 듯 멋진 데코레이션의 대창덮밥은 이제 대형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을지로를 지키는 오래된 음식의 힘은 뭐니뭐니해도 순대국과 냉면이 아닐까?

오랜 역사를 지닌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집들과 순대국 전문점들이 많이 있다.

그곳을 한번 씩 다 맛보는 것이 나의 정년 퇴직전 버킷리스트이다.

골목길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 골목길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맛집 도장깨기를 위하여 힘을 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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