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93
다양한 특강 활동이 꼭 필요한 이유
내 인생 마지막(?) 천체 관측 행사가 끝났다.
인생 모른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과학교사로서의 관측은 마지막임에 틀림없다.
친한 후배의 사위님을 특강 강사로 모셨다.(재능 기부를 해주셨다. 고맙게도)
다른 업무를 하지만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천체 사진에 푹 빠진 매니아였다.
퇴근 후 망원경 3대를 가지고 와서 20여명의 신청학생들에게 천체를 보여준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맛있고 따뜻한 저녁을 대접하는 일뿐.
가지덮밥과 새우볶음밥 그리고 작은 탕수육을 나누어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망원경 세팅을 시작하였다.
우리학교에는 오래된 망원경이 두 대 있다.
과학과 현재 예산으로는 도저히 좋은 망원경 추가 구입이 불가능하다.
지금껏 한 대인 줄 알았는데 구석에 방치된 것을 꺼내보니 그것도 좋지는 않지만 가능은 하겠더라.
훌륭한 아이들이 처음으로 두 대를 모두 조립하여 총 5대의 망원경으로 관측을 시작했다. 공대 진학이 가능한 금손들이라고 칭찬해주었다.
문제는 구름이다.
점심까지는 맑았는데 관측 시간이 되니 구름이 잔뜩 끼어서 달이라도 볼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하게도 망원경의 구조를 살펴보고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진행하고 삼십여분 지나니
올해 마지막 슈퍼문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달무리와 함께라 분위기와 낭만이 더욱 넘쳤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관측을 하고 사진을 찍고 운동장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오늘 보니 수업 시간에는 마냥 조용하기만 했던 학생이(존재감이 1도 없었다.)
스마트폰으로만 찍는 달 사진도 잘 찍고 망원경도 잘 보고 망원경에 대고 찍는 사진도 잘 찍더라.
이처럼 다들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는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그 관심분야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일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훈련이 끝난 야구부 학생들에게도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망원경 속의 달 관측을 시켜주었다.
천체 관측은 동적인 부분도 있지만(관측 장소에 이동하고 망원경을 세팅하는 것 까지는)
천체가 나타날 때 까지 기다리고 촬영하는 순간은 아주 정적인 부분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한 시간 반쯤 설명과 관측과 사진 촬영을 마치고는(중학생들의 집중 시간은 이 정도가 최대이다.)
오늘 활동의 하이라이트 치킨과 콜라를 먹는 시간을 가졌다.
먹으면서 오늘 활동을 이야기하고 사진도 공유하는 시간이니 모든 활동에는 간식이 꼭 필요하다.
수요일 일부러 찾아가서 내용을 알아봤던 야간 1+1 치킨집이 오늘 내부 수리중이란다.
당황했지만 아이들 추천으로 근처 맛난 치킨집을 찾아 배달을 시켜두었다.
잘 먹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기쁨 중 하나이다.
잘 먹지 않고 깨작되는 것은 음식이 맛이 없거나 학생들의 요구를 잘 못 맞춘 것이지 학생들의 잘못은 없다.
교육도 서비스 활동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수요자의 니즈를 잘 맞추어 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관측을 한 것은 2,3학년 모두 천문학 수업을 막 마친 다음이니 효과가 높을 수 있다.
시기도 잘 정하고 주제도 잘 정하여 제공하는 특강이 의미가 있게 된다.
무엇보다 학생 눈높이에 맞는 강사 선정이 제일 중요하지만 말이다.
너무 어려운 내용이 최악이다.
오늘은 삼박자가 완벽했던 특강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푸근하여 하나씩 나누어준 핫팩은 다음에 사용해야 할 물건이 되었고
우리학교 망원경이 두 개인 것을 처음 확인했고(그것도 쓸만하다는 것도 확인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선한 에너지도 뿜뿜 받았고
비록 여섯시부터 집에 돌아온 10시까지 한 번도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지만
행복한 저녁이었다. 아이들도 행복했기를 바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사이에 숨어있던 목성이 그제서야 나타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쩌겠나. 아이들도 돌아가는 길에 보았기를 바랄 수 밖에...
인생이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고 천체 관측은 그래서 하늘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인 것을 그들도 알 것이다.
위 사진은 오늘 MVP급 활약을 한 학생의 작품이다.(이곳에 올리니 화질이 별로이지만 원본은 훌륭하다.)
평소에도 휴대폰으로 달 사진을 많이 찍어본 솜씨였다.
숨어있는 영재의 발견이랄까? 많이 칭찬해주었다. 아마 그 녀석은 오늘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혹시 10년 뒤 유명한 천체 사진 촬영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 모른다. 한 순간의 경험이 많은 것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힘들지만 다양한 특강을 제공하는것을 의무인것처럼 수행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너무 늦지 않은 중학생때가 적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