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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업자가 경기불황에서 사업 아이템을 고른 기준

강기현 패스트벤처스 파트너

대표님의 요청으로 투자 당시에 언론 보도를 내지 않았지만, 2022년 10월에 에픽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에 투자를 했습니다.


2015년에 트라이문이라는 여성 구두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김사랑 대표님이 여러 회사들을 거치면서 재창업을 위한 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1년 정도를 쫓아다니고 기다리다가 창업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자본 시장이 얼어붙고 난지가 좀 됐었고, 여러 스타트업들이 힘들어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시기여서 한창 시장 좋을때가 아닌 이 타이밍에 창업을 결심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아이템을 결정했고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듣고나서는 그런 의문들이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에픽코퍼레이션은 현재 '에픽원'이라는 롤렉스 시계 직매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사랑 대표님이 이런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게 된 몇 가지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돈을 버는, 이익이 남는 사업을 하고 싶다.            


본인이 창업했던 회사와 이후에 거쳤던 몇 개 회사들, 혹은 전반적으로 꽤 많은 스타트업들이 적자를 감내하면서 성장을 위한 엑셀을 밟고 있는데, 회사마다 성장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김사랑 대표님은 이번에는  '돈을 버는' 사업을 하고 싶은 열망이 매우 강했습니다. 


(2) Day1부터 Unit Economics가 '양(positive)'을 만들고 싶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팔 때마다 적자 규모가 더 커지는 구조의 사업이 아니라, 사업 초기부터 공헌이익이 남는, Positive Unit Economics가 나올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회사 월 BEP를 바로 넘기지는 못하더라도 빠른 시기에 공헌이익을 통해 회사의 고정비를 메꾸고 나서, 설령 자본 시장이 더 안 좋아져서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3) 객단가가 높은 제품을 다루고 싶다.            


이를 위해서 김사랑 대표님은 객단가가 높은 제품을 다루는 사업 아이템을 찾고 싶었습니다. 만 원 짜리 제품을 팔기 위해서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고, 배송 해주고, CS도 받는 식으로는 공헌이익을 남기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전 사업인 트라이문 때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에픽코퍼레이션은 1,800만원 짜리 중고 롤렉스 시계를 직매입해서 대략 재상품화를 거쳐 약 2,000만원 정도에 홍콩/도쿄 등지에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품 검수를 하고, 마케팅을 하고, 배송 등의 변동비를 다 합치더라도 30만원 내외로, 고가여서 까다로운 오퍼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Positive Unit Economics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4) 3p(위탁/중개)가 아닌 1p(직매입) 모델을 통해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고 싶다.

기본 객단가가 높기는 하지만, 위에 언급된 구조와 같이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더 싸게 사고, 더 비싸게 되팔 수 있는, 가격에 대한 결정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와 구매자들이 알아서 만나서 가격을 협의하고 이 거래에 대한 '중개'만으로는 높은 이익율을 가져갈 수 없다고 김사랑 대표님은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에픽코퍼레이션은 초기 시장 진입을 '직매입' 모델로 선택했습니다. 


(5)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를 확보하기 위해 출혈경쟁하기 보다, 한쪽을 꽉 잡고 싶다.

많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끌어와야 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플랫폼이 어느 정도 이상 성장하게 되면 선순환이 돌면서 조금 수월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초기 플랫폼일수록 'Chicken Egg Problem'은 더 큽니다. 에픽코퍼레이션은 초기에는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다루는 플랫폼이 되기 보다는, 공급자(중고 롤렉스 시계 판매자)에게만 집중하여 시장 균열을 내보겠다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판매자들에게는 '흥정과 번거로움 없이, 빠르게 판매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김사랑 대표님의 사업에 대한 생각, 취향, 전략, 우선순위들이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저희 패스트벤처스는 빠르게 투자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업 모델이라는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Trade-off와 장단점이 있고, 에픽코퍼레이션의 사업 모델도 마찬가지겠죠. 이 때문에 사업 모델은 계속 수정/보완/발전이 되기 마련이고,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에픽코퍼레이션의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에 대한 집착과,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결단력은, 많은 훌륭한 스타트업들 중에서도 꽤 드문 역량이라고 느껴졌고, 초기 투자자로서 꼭 베팅 해보고 싶은 회사였습니다.  


에픽코퍼레이션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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