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경 패스트벤처스 심사역
1. 초기 VC는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파악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특정 산업을 먼저 보기보다는, “미래에 어떤 문제가 가장 중대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일까?”는 질문으로 먼저 접근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를 풀어야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꾸는 창업자들 역시 그런 문제에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스타트업과 대표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크고요. 최근에는 이런 접근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인구감소 문제와 로봇산업입니다.
2. 결국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전에는 그런 관점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AI가 발전하는 속도나, 하드웨어가 고도화되고/저렴해지는 것들을 목격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테슬라나 삼성 같은 회사들이 어마어마한 투자하는 것을 보니 그런 미래가 더더욱 빨리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어느 지점에서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3. 무엇보다 제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이유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냐/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해야만 하는 미래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감소 문제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이야기한 지 꽤 오래되어 인구감소 문제가 낯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1년 처음 감소했고, 2025년에는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더 놀랐던 사실은 중국 역시 인구감소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인구는 6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습니다. 85만 명이 감소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시 하나 정도의 인구가 사라진 것입니다. 엄청난 인구와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이라고 여겨졌던 중국이 이렇게 빠르게 인구감소의 문제를 겪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4. 노동가능한 인구가 감소하면, 곧 국가의 경쟁력에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 다음으로 이야기 되는 것이 이민정책 같은 것들인데 이게 얼마나 작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치와 정책의 문제라 섣불리 예상하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로봇을 더 싸고 좋게 만들어서 사회 곳곳으로 밀어 넣는 게 더 사회 수용도가 높고, 빠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여러 선진국에서는 로봇 산업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특히 중국은 최근 감소하는 인력을 로봇으로 메꾸겠다는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https://lnkd.in/dtiCTUfV)
5. 사실, 우리 사회에 로봇이 침투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업무가 비교적 단순한 영역부터 로봇이 안착하고 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류 로봇과 서빙 로봇입니다. 로봇이 어떤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요 - i) 시장의 니즈가 충분한지 - 인력난이 극심한지, ii) 충분히 비용이 싼지, iii) 기술이 충분한지 - 물류 시장과, FnB 시장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이 두 영역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갔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시장이 여럿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i)의 경우 당장 농촌에 가도, 건설 현장에 가도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고 하니까요. 실제로 이번 CES에는 피망을 수확하는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ii) 충분히 싸게 양산할 수 있고, iii) 너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로봇을 개발/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7. 결국 지금의 흐름에서 로봇 기술이 더 보편화되고, 로봇의 가격이 충분히 싸진다면, 이 산업에서 잘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렴한 노동력에 대한 니즈가 있는 시장을 잘 파악하고, 로봇 그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로봇을 활용해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노동을 대체해주는 스타트업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로봇을 직접 개발해본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어도, 시장을 잘 읽어내고 비즈니스에 능통한 분들 역시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