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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Jan 14. 2023

프로그램되지 않은 미래

그저 미관상 심어놓은 가로수에 지나지 않는 NPC 같은 삶, 권태. 


지금 내 작가의 서랍엔 몇 개의 글이 있다. <더 글로리> 를 보고 공감하며 쓴 글도 있고, 비혼을 더더욱 결심하고 확신하게 된 이유에 대한 글도 있다. 쓰다 만 가상의 이야기들도 있다. 글을 끝맺는 것이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그 모든 미완성 글을 내버려두고 다시 새로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 상태에 관해 늘어놓고 싶어서가 아닐까. 


12월 초부터 아팠다. 감기 기운이 있었고, 백신을 맞자 감기 기운이 사라지질 않았다.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생리 때문에 온 몸이 무거웠다. 그리고 어디서 코로나에 옮아온 가족 때문에 드디어 코로나라는 걸 겪어 보았다. 일 주일 동안 골격근량 2kg를 잃었을 만큼 심하게 아팠다. 후유증과 생리가 또 겹쳤다. 정신없이 아프며 지내다 보니 새해였다. 아파서 방문하지 못했던 병원을 새해가 밝고서야 갈 수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자 생각이 많아졌다. 어제 밤에는 신이 났는데, 오늘은 정말 축 처진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코로나는 정말 많은 처방약을 나에게 안겨 주었고, 제대로 일어나 걷는 것도 힘들었던 나는 여기에 정신과 약까지 챙겨먹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일 주일 동안 처방약만을 먹었다. 내내 '약을 꼭 먹어야 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해?' 라고 묻던 엄마는 내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신과 약을 일 주일 동안 안 먹는 것이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약 안 먹으니까 어때?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지? 안 먹어도 괜찮잖아.' 예상치 못한 단약을 눈에 띄게 반겨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제정신인가 싶었다. 고도로 발전한 '우울증 그거 현대인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거야. 약 안 먹고 운동하면 나을 수 있어' 같았다고 할까. 물론 자식이 약을 먹으며 버티는 것을 누가 반가워하겠냐만은, 엄마는 내가 약을 먹는 것을 오래 전부터 탐탁치 않아 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리고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알게 모르게 단약을 압박해왔다. 나는 약을 먹지 않는 동안 총 세 번의 공황발작 증세를 겪었고 수면 패턴은 전처럼 틀어졌지만 코로나 증상일 수 있기에 거기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속상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아플 때도 엄마는 언제까지 나이 든 부모가 자식 병수발을 해줘야 하나며 성질을 냈다. 나 격리 기간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날은 눈물이 엄청 났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을 상담 선생님께 했다. 상담 선생님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십 년을 봐온 선생님의 표정이 그렇게 결연해진 것은 처음 보아서, 망했구나, 싶었다. 선생님은 상담의 목표는 아니지만 개인의 목표로 나의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셨다. 알고 있다. 나는 상담선생님 뿐만 아니라 멘토로 여기는 어른들에게까지, 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수없이 독립을 하라고 권유받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나와 엄마의 관계, 그리고 나와 아빠의 관계. 엄마와 아빠의 관계 그 어느 하나 유독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떨어져 있어야 오히려 더 애틋한 가족이 되는, 그런 형태인 것이다. 허나 학교 앞에 자취를 해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일 주일에 한 번 집으로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고 없이 직접 자취방까지 차를 몰고 와 반찬을 가져다 놓았고, 내가 해외살이를 잠깐 했을 때 영상통화도 전화도 받지 않았던 시기를 그렇게 잊을 수 없다며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나는 저 시기 우울증에 시달리며 알코올에 의존했었다... 물론 카톡은 읽고 답장도 했다. 하루 몇 번씩.) 


더군다나 나는 지금 혼자 있으면 정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가족과 같이 살겠다고 한 상태였다. 거기다 이 불경기에 나는 프리랜서를 가장한 백수이고, 긁어모을 돈도 없어 독립을 할 수 없다. 자, 물리적 독립은 지금 완벽히 불가능한 상태다. 선생님은 나에게 물리적 독립은 사정이 되지 않는데다 이미 아무 소용 없는 것을 겪어 보았으니, 다른 게 아닌 정서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서적 독립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선생님은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을 알아챈 듯 상담 시간이 지났다며 나를 보냈다. 


아, 그 전에. 선생님은 엄마와 나의 에피소드들을 듣고 나에게 물었다. 


루디 씨는 병원에 왜 다녀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하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보통 그냥? 이라는 말로 웃어넘기거나,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곤 했다. 텅 빈 상태의 머릿속에서 굳이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복잡하게 입 밖으로 끌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그것을 이미 간파하고 물어보신 듯 했다. 한참 뒤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매번 오라고 하시니까요. 다음 상담 약속을 잡으시니까, 저는 다음 예약이 잡힌다는 건 상담이 필요하다는 말이구나, 하고 다니는 거예요. 


루디 씨는 언젠가부터 자기 의지를 완전히 놓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혼난다기보다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았다. 수치심이 아니라, 그냥 진짜 선생님은 다 알고 있구나. 내 모든 말과 단어와 어투에서 내 상태가 어떤지 알고 계시는구나, 그런 것. 나는 지금의 내 상태를 게임 npc 에 비유해 말하곤 했었다. 주인공의 성장에 따라 대사도 롤도 퀘스트도 달라지는 npc가 아니라, 그냥 나무 심듯 끼워넣은, 아무 인터렉션도 없는 npc. 주인공이 성장해도 그 npc는 늘 똑같은 외형을 하고 있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 반복에 반복. 또 영화 <13층> 에 빗대어 이런 이야기도 했다. 미래 그거 물론 모두가 두려워하고 막막해하는 거지만 그건 그 사람들에게 막연한 미래가, 막연한 살 날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는 이야기고, 나의 경우는 아예 그 미래 자체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래서 <매트릭스> 나 <13층> 처럼, 아예 설계되지 않은 날것의 0101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한 발자국 앞에 있는 것 같다고.


선생님, 제가 그럼 엄살을 부리는 거예요? 저는 그냥 일반인의 범주에서 괜찮은 정도인데 제가 너무 드라마틱하게, 너무 제가 심각한 척, 엄살을 부리고 일부러 더 제가, 더 안 좋은 척 하고 그런 거예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엄마도 저러니까...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데 왜 루디 씨가 속상하죠? 엄마의 말에 왜 루디 씨가 속상한 감정을 가져야 하죠? 


그런데 그렇다고 싸우기에는 너무 에너지 소모가 들어서..


싸운다는 것은요, 같이 살 것이라는 전제가 주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럼 전 어떡해야 해요? 정서적 독립을 이루려면 뭘 어떻게...


상관하지 말고 갈 길을 가야죠.


너무 어려운데요.


그래, 이 말을 한 다음 상담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둘 다 알아챘고 나는 선생님께 <행복한 이기주의자> 라는 책을 추천받고 나왔다. 오는 길에 중고 서점에 들러 재고가 딱 한 권 남은 이 책을 사왔다. 어제와 오늘 좀 읽어 보았는데, 꼬인 마음 탓인지 태생적으로 자기계발서를 혐오에 가깝게 여기는 성격 탓인지 아직까지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리 상담 1시간을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도, 전체적인 진단과 약 처방을 해 주시는 선생님도 내가 처음 상담센터를 찾은 2년 전과 달리 조금 더 나의 변화에 적극적이신 듯 보였다. 인생의 목표나 하고 싶은 것 등을 정리해 보자고 하고, 루틴을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로선 최대한 기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일부러 엄살 부리고 있는 거 아닌가. 엄마 말대로, 편한 상태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보니 이 백수 생활에 안주하려 드는 게 아닌가. 


코로나 때문에 아파서 정신이 없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을 보았다. 환영이나 환상은 아니고, 그냥 내 머릿속에 재생되는 그런 건데, 2년 전 내가 극단적 선택을 한 모습이나 사고를 당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플레이되곤 했다. 한동안 없어졌던 그 영상들은 슬금슬금 모습을 몇 달 전부터 다시 드러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사실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열이 올랐을 때라 더 그랬던 걸까. 나는 나에게 있지도 않은 아주 예리한 칼로 손목을 파내 힘줄을 들어올려 끊어내는 생각을 했다.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피까지 모두 머릿속에 재생이 되었고, 잠깐 '가능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몇 초 한 뒤 바로 털어버리려 애썼다. 나로선 오랜만에 찾아온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확신을 할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찾아오는 이런 순간들이 있으니 내가 정말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일어날 때쯤 됐으니 모두 어떻게든 일으켜보려 노력하시는 것인지.


그저께 밤 나는 미디어 노트로 써둔 유서를 자필 유서로 옮겼고 도장까지 찍어 두었다. 아직 밀봉은 하지 않았다. 효력이 없을 걸 알지만 미디어 노트에 써둔 유서를 부모님이 찾아내기에는 좀 힘들 것 같아서, 같이 인쇄해서 넣어놓은 뒤 봉인해 놓고 장례식에 쓸 음악은 미리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놓으려 미뤄 둔 것이다. 어제 밤에는 80년대 점성술사처럼 옷을 입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시대별 음악을 알아맞추는 숏폼 영상을 찍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처지고 우울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무료한 하루하루가 반복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npc 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배경색도 다 칠하지 않은 캔버스는 말라 있지만 무언가 덧그리기 싫고, 기분 전환을 위한 그 어떤 것도 하기 싫다. 


지금 내가 바라는 죽음은 우연한 죽음이다. 의식이 없는 채로 당하는 사고사. 나의 책임은 없으니 지옥 갈 일도 없고, 바라는 죽음도 얻고. 나 스스로 죽는 것에는 엄청난 고통과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생각하는 것이다. 허나 죽음 그 이후가 두렵다. 인간 주제에 두렵다. 신을 믿지도 않는 주제에 두렵다. 모든 것들이 분해되어 땅으로 공기로 스며들어가고 그 속에서 나의 자아는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전원이 꺼지듯 픽 꺼지는 것이 두렵다. 물론 나는 그 다음의 암흑을 느낄 수 없겠지만, 아니, 혹시 느낄 수 있을까? 그 영원한 정적과 고독한 적막을 겪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지옥일 것이다. 


자아에 대한 욕심을 언젠가 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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