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예연 Oct 19. 2023

복학생의 심정으로 육아기를 보낸다면

전업맘의 육아10년 올바른 사용법

'육아기의 엄마'는 '군인'과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그저 하루하루를 묵직이 보내는 점이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여자이기에 남자로서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과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다만 당시 대학시절 친했던 남자 동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삶(오로지 편지와 전화로만 소통하던 20년 전과 지금의 군대는 많이 다른 것 같지만)을 사는 그들에게서 공통된 감정을 느꼈다.


바로 '불안'과 '초조'이다. 그들은 한창 배움을 이어가야 할 나이에 사회와 단절되어 있었고, 그와 반대로 동갑의 여자친구들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끔 그들은 빈정거리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서야 초조와 불안에서 출발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나는 그와 매우 닮아있는 감정을 느꼈다.

육아기에 들어선 나는 33살, 남편은 36살이었다. 한창 커리어가 무르익을 6년 차의 회사원이었다. 게다가 먹여 살릴 식구가 둘이 되었다. 어깨가 무거워진 그는 더 많은 출장을 다녀왔고, 더 많은 일거리를 움켜쥐었다. 그에 맞게 승진도 순탄하게 이뤄졌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오늘 아이가 많이 울었다, 낮잠을 안 자서 힘들었다는 등의 이야기였지만, 그는 새로 발굴한 거래처 이야기, 부서의 팀워크를 위한 워크숍 계획 등 기분 좋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성장이 나의 성장처럼 느껴져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오묘했다.


한 번은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태국 일정을 앞둔 그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해 싸움이 된 적도 있다. 이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단기 어학연수 가는 여자친구에게 갖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님 나만 이렇게 쪼잔한 걸까?

(10킬로의 아이를 메고 서점에 나가는 일이 유일한 기쁨이던 시절, 코끼리 등에 올라타 해맑게 브이손을 한 사진을 본다면? 물론 코끼리 등에 타는 건 여러모로 나의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만.)




다시 옛 동기들을 소환해 보자. 철이 없이 신입생 시절을 보낸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한 복학생이 되었다. 2년의 공백만큼 촘촘한 시간을 보낸 이는 재활치료실 부장님이 되었고, 사업에 재능이 있던 이는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 사장님이 되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 2년의 시간은 이제 추억담으로 이야기할 소재가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대입해 보자. 물론 육아기의 엄마는 다르다. 엄마의 발이 묶이는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따지면 대략 1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냉정히 이야기해보자. 워킹맘의 경우는 다르지만 전업맘의 경우, 온전히 발이 묶이는 시기는 최대 3년이다. 요즘은 보통 만 3세 이전에 어린이집에 간다. 그러면 우리에겐 시간이 생긴다. 반쯤 묶인 발이지만, 그래도 개인의 시간이 생기게 된다. 2년이든 3년이든 5년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후의 시간이다. 제대 이후 촘촘한 시간을 보내던 복학생의 심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육아기를 그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인생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나면 육아기는 축복이자 기회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 일하며 고민이 많던 시절,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로망에 가깝지 않았나.


이 기회에 인생을 돌아보고, 아쉬웠던 부분은 보안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도 해보자. 고민에만 그치지 말고 인생 설계도 해보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도 세워본다. 미래가 선명해질수록 지금 이 시기가 완전히 달라 보일 것이다.




전업주부로 지내온 엄마들이 아이의 학원비가 부담스러워질 무렵이 되어서야 일을 하고자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돈이 목표가 되는 순간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흥미, 재능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전개보다는 아이를 키우며 주어지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그 일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실천해 나가 보자. 감사가 절로 나오는 일상이 이어질 거라 확신한다.




나는 더 이상 남편의 성장에 불안하지 않다. 되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나 혼자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7년간 무기력으로 고통받던 내가 아침을 기다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