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바닥이 느껴지는 인간들의 목 막히는 분노의 질주…
* 스포 주의
콘텐츠를 깊게 분석하거나 리뷰를 쓰는 편은 아니지만 황금 같은 토요일 저녁 상큼한 기분이 아닌 나까지 찝찝한 분노가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지 분석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무언가 느낀 것이라도 남겨야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BEEF (성난 사람들)
(출처. Netflix)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싹쓸이 한 작품이라기에 호기심이 생겨 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을지 모르겠는, 남 탓 오지는 회피형 남주와 자기가 한 일만 대단하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어쩌면 자기희생에 취한 오만한 여주인공이 강렬하게 극을 이끈다. 모든 화에서 거의 뻐킨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대놓고 상스러운 대사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에서 의외로 기억에 남는 씬은
"주를 위하여!" (슛을 날린다) "하나님의 말씀!" (슛을 날린다)라는 얄밉고 야비해 보이는 한 찬양대 리더의 대사였는데, 농구슛을 날리며 하는 대사치고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깔깔대며 따라 하기도 한 부분이다.
어쨌거나 일주일 간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하며 오늘 끝을 보게 되었는데, 남는 감정은 찝찝함, 강렬한 자극, 께름칙함, 언짢음, 인간혐오, 자기반성… 이다. 사람의 냄새나는 민낯들을 보기 싫게 까면서 배꼽냄새처럼 끝까지 보게 만들다니, 이 복잡한 인간 단상을 구석구석 치밀하게 설계한 점이 대단하긴 하다
누구나 각자의 딱한 과거 혹은 사정이 있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게 당연하다지만 극에 나온 모든 인물들은 과장된 자기 연민에서 올라온 이기심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행선지가 틀린 분노의 방향을 가진 채 결국 자신과 남의 세계를 망치게 된다. 마지막, 두 주인공이 진심으로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점은 둘에게 회복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겠지만...(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집을 위해 거절만 반복되는 부동산과의 통화를 하는 주인공. 버거킹 PPL인 줄 알 정도로 많은 치킨버거를 목 막히도록 욱여넣고 올라오는 구역감도 억지로 삼키는 초반씬은 광활한 하늘과 언덕을 배경 삼아 완성되는데, 이 대비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누구에게도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모든 솔직한 감정들을 내뱉고 끊임없이 토하는 끝부분이 더럽기보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나 감독의 의도였겠지 싶다.
인간이 배설하는 감정쓰레기와 트라우마로 누군가의(또는 자식의) 인생에 나비효과처럼 영향을 미치고 그 아이는 곧 삶을 이루게 될 것을 부모들도 알고 있을 텐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해 나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자식농사 힘들다는 거야 알고 있지만 아기는 곧 커나가는 인간일뿐더러 성인이 되어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초현실적으로 보여주기에 본격 저출산 장려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했을 정도다. 나는 그 중압감이 너무나 큰 사람 중 하나다.
후반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죽기 전 회개를 하는 듯 보이리만큼 진실되게 자신을 털어놓는다. 꼭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정신적으로 교감할 사람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그들이었을 터. 왜 하필 서로를 증오할 곳에서 시작했을까?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어쩌면 닮은 흉터를 가졌을지 모를 인간들끼리 서로에게 조금씩만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희망사항일 뿐 쉽지 않기에 인간과의 접촉은 최소한으로..)
ps. 보통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는 유쾌 상쾌 통쾌하고도 딱히 악역이 없는 스토리이다. 비프는 오히려 두 사람이 선하지 않음을 자처하는 터라 구리기도 하지만 특별히 이 인물들에 애잔함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게 되는 스토리는 볼 때마다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거칠어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나는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허무주의를 불쾌하지 않게 잘 풀어낸 영화였다. 모든 게 의미 없어지는 이 영화의 주인공과 달리 비프는 모든 것을 끝까지 붙잡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 같았다. 아아 - 욕심은 사라져도 문제고 많아도 문제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