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누구나 한 번은 꿈꾸었을 법한 삶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분되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 삶이 현재의 삶과 다를수록 더욱 희열을 느낀다. 그렇기에 사람은 살아가면서도 항상 다른 삶을 꿈꾼다. 물론 그 꿈이 이룰 수 있는 꿈이건 아니건 상관할 필요는 없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또한 멋진 삶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의 백정화 작가의 하루하루가 그렇다.
사람이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오롯이 타인에게 내보이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예쁘게 다듬고 포장해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이는 일이다. 그렇기에 자서전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꿈꾸었던 새로운 삶을 위하여 백정화 작가는 날 것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왕 내보이기로 하였으니 수줍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에게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다. 그저 무심한 듯,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듯 그냥 풀어놓을 뿐이다. 그런 모습이 백정화 작가에게는 더 어울린다.
나는 백정화 작가가 걸어온 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첫 단편소설이 실린 책의 격려사를 쓰면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무슨 일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으므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연신 감탄의 찬사를 입에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하나하나의 문장이 창작에 대한 작가의 열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와는 문학적 시도가 비슷한 작가라고 생각했기에, 작가의 글이 더욱 나의 눈길을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소설 창작을 전공한 사람의 시각에서 본다면 어쩌면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작가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 소설로 인하여 자기가 그토록 꿈꾸었던 그 삶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는 후련함이었을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만 하고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삶으로 향하는 길이 정작 발을 딛고 보니 별로 어려운 길도 아니었는데 왜 그동안은 그 첫발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아련한 아쉬움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지금이라도 그 첫발을 뗀 것이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일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 작가의 창작 생활의 시작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랬던 작가인데, 이번에는 자서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그럴듯하게 세련된 필치로 다듬어서 대신 써준 자서전이 아닌, 그냥 작가가 풀어놓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자서전을 읽고 작가의 지난 시절에 공감하는 척을 하거나, 그 사람의 일생을 통해 무엇인가 자기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가치 찾기에 몰두하기도 한다. 물론 자서전의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을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독자가 백정화 작가의 자서전을 읽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기 위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 같은,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작가 스스로 그저 자서전을 집필하는 동안 지난 생을 돌아보며 머릿속에 스치는 매 순간마다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런 과정에서 앞으로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서전은 작가가 꿈꾸었던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이루기 위한 시발점이다. 지난 생에 대한 후회나 회한을 남기는 것도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 걸음이라도 더 원하는 길로 발을 내딛는 것만이, 작가의 영혼을 더욱 자유롭게 만드는 길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런 작가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다.
이제 자서전을 시작으로 작가는 새로운 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 생에서는 분명 작가가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아갈 것도 분명하다. 그런 작가에게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동반자적 격려의 손길을 보내고 싶다. 백정화 작가의 인생은 이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정이흔(소설가)
생전 처음 발문(跋文)을 적어 보았다. 그리고 그 발문에 작가가 감명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일전에 친분이 있는 작가의 권유로 어느 책에 격려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출간 작업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이 자서전을 출간하면서 나에게 발문을 적어줄 수 있냐는 이야기를 나의 지인을 통해 전했다. 나는 흔쾌히 발문을 써서 보냈고, 그 작가로부터 너무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아마 짐작컨대, 나의 발문이 그 작가의 자존감과 창작 의욕을 고취시킨 것 같았다. 나는 발문이라는 글 하나로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한 사람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면에서 내가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만 하고 잠시 그 기억을 접었다. 그 작가가 나의 발문에 얼마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아래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 작가의 블로그에 내가 올린 글에 대한 답글이다.
"선생님 저 선생님 팬이예요 반가워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문편지, 섬 ,초여름의 기억 이렇게 세권 읽었는데 더 추천해 주세요. 선생님 책읽으면 마음이 편해요. 정말 반가워요. 그리고 요번에 나오는 제 자서전에 발문을 써주시어 너무 감사합니다. 소설보다 발문을 더 잘쓰시는 것 같았어요.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전 제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출처] 내가 좋아한다고 내 가족이 좋아할 거라 생각지 마라.|작성자 나무 늘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책으로 출간된 책이 도착했다. 책의 내용에 관해서는 다른 글(서평)에서 소개하겠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해서, 생각치도 못했던 발문작가(跋文作家)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