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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개의손 Mar 23. 2023

EP01. 인간관계가 다 지겹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20210906 | 가비

월요일 쉬는 날이지만, 이사준비로 낮에 계속 조군과 이야기하다 이제야 쓰기 시작해. 11시 정도에 느지막이 일어나 잠시 뒹굴다가 아소키로 나와서 요플레, 복숭아, 바게트, 계란, 커피 조합을 먹으며 글을 쓰려고 하였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조군이 와서 같이 이사 관련된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저녁 6시를 향해가고 있네. 삶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슈는 평생 끝나지 않겠지?


요즘 나는 인간관계가 한 번씩 다 지겹다는 생각을 해. 혹은 인색해진다고 할까. 직원들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시부모님과의 관계, 남편, 친구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 서로에게 원하고 바라고, 욕먹지 않기 위해 하는 것들. 혹은 예의 차리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온통 내 인생을 다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싫어서 글을 썼구나, 그런 순간들을 도망쳐 나만의 도피처를 만들기 위해 글을 썼구나.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관계에만 둘러싸인 인간이 됐겠구나. 


지난 금요일 일 끝나고 조군이랑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그날 일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는지 묻더라. 그날 내가 조군이든 직원들에게 말도 잘 안 걸고, 대답도 잘 안 했다는 거야. 나는 그냥 대답하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어. 일일이 다 대답하는 거 나는 기 빨려. 금요일이라 예약이 많기도 하고 그냥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이야. 라고 답했더니 조군이 같이 일하는 곳에서 그런 태도는 좀 그렇지 않냐고 그러더라고. 어떤 태도. 그렇지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지. 주의하겠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됐어. 


내가 점점 마음이 인색해지는 것일까? 점점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일까? 나는 모든 관계를 나를 지키면서 하고 싶어. 결혼을 했지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일을 하지만 우리가 매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말이지. 


어쩌면 그냥 나 혼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을 더 내고 싶은 것일 수도. 요즘에 이사준비로 그 시간이 현저히 줄었거든. 그래서 나타나는 부작용 같은 것? 평소에는 굉장히 유하다가 어떨 때 날카로운 면을 내비치는 동물처럼. 조군이 그러더라. 너에게 엄청 날카로운 면이 있는 거 아니냐고. 잘 안 드러내는 데 너에게 깊숙이 들어가면 확 드러낸다고. 자식을 낳는 두려움의 한 가지도 내가 자식에게도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봐. 내가 어느 순간부터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서 내 삶을 슬프게 생각할까 봐. 그런 것들이 다 두려워. 내 몸뚱이 하나 끌고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낳으면 길러지겠지라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네. 


칭찬을 듣기 위해,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칭찬을 듣기 위해 사는 인생. 이런 거 좀 슬프잖아. 잘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만 할까? 요즘 읽고 있는 '밝은 밤’ 책에서 그러더라.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밝은 밤 주인공이 이혼을 하고 아무도 없는 지방에 내려가 사는 모습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느꼈어. 모든 관계에서 도망쳐 혼자를 돌보는 장면들이 왜 나에게 위로를 줄까. 나는 지쳤을까. 무엇에? 주인공의 말처럼 내가 나를 몰아세운 적도 많고, 존재를 증명하려고 끊임없이 어필하면서 살고 있다는 피곤한 생각. 대체 누구에게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게 왜 중요할까. 그런 생각들. 


이렇게 쓰다 보니 너네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니. 또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나 솔직한 심정을 내가 누구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너네가 없었다면 누군가에게 얘기해야 된다는 필요성도 못 느꼈겠지. 나라는 인간은. 


처음 쓰는 거라 이게 글쓰기가 맞는지,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면서 틀을 잡아보도록 할게. 그래도 내가 글 쓰고 싶은 주제를 쌓는 기분은 들어. 의무는 아니지만 메일을 받고 짧게 답장을 써주는 건 어떨까? 자신의 글을 쓸 때는 또 일주일이 지나있을 테고, 한, 두 줄이라도 짧게 답장을 받으면 기쁠 것 같아. 편지의 묘미랄까.  너네들은 오늘이 한 주의 시작이겠구나. 난 한 주의 끝인데.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또 일주일을 잘 살아보자. 


가비



혜진 답장 | https://brunch.co.kr/@96fd332c1ea84bf/3

소희 답장 | https://brunch.co.kr/@96fd332c1ea84bf/4


* '세개의 손' 프로젝트 | 30대 / 서울 거주 /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세 명의 여자가 2021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 세 명의 편지에서 나아가 목소리를 더하고 싶은 동시대 독자들의 시선을 모아 물성을 가진 형태로 엮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3hands_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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