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쏘피 Nov 30. 2023

살아 내느라 고생이 많다

낯가림이 심한 모녀가 미국에 살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커서야 나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겪을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힘들어도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채 남들도 다 비슷할 줄 알았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가 있다. 아빠가 유치원생인 나에게 일종의 훈련으로 마트에 가서 껌 하나만 사 오라고 시켰는데, 가게 앞을 서성이던 나는 끝내 빈손으로 돌아와 아빠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았던 기억이다.

     

  그래도 성인이 된 후에는 자리에 따라서 적절하게 그 자리 행세를 해낼 만한 여러 가면이 생기게 되었고, 내 안에 숨은 다른 모습들을 꺼내거나 혹은 내 안에 없다면 연기라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한동안 그게 또 다른 내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손을 내저으며 ‘너 아닌데?’라고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물론 나는 유쾌한 사람이긴 하다. 그 둘은 별개니까. 내 동생은 내 투박한 유머의 빅팬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긴 휴직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해 한해 지나면서 내가 가진 가면들도 한겹 한겹 내려놓으며 결국은 원래의 나로 거의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시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상황에 나를 맞춰가는 내 색깔이 없는 나로... 그럴 때쯤 난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매해 초 학교생활이 힘들고, 짝에게도 먼저 말을 못 걸고, 발표 시간에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질문은커녕 대답도 조리 있게 못 하고, 친한 친구 없이는 학원도 다니기 싫어하던 내가... 

이제 한 명 추가되었다.ㅠㅠ (다행히 둘째 아이는 내 유전자를 피해 갔다.ㅋㅋ)

     

  우리 딸을 보면 잊었던 내 모습들이 다시 떠오른다. 

“이 바보같...” 

그 옛날, 결국 껌을 못 산 채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아빠가 내뱉다 삼켰던 말을, 

나도 내 딸을 보며 속으로 수십 번도 더 하게 된다. 

 사실은 호기심도 많고 유머러스하고 자유에 대한 갈망도 큰 나의 속모습마저도 닮은 우리 딸. 

 그 껍질 안팎의 온도 차이에서 오는 엄청난 내적 갈등 속에서 살게 될 우리 딸.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아이도 언젠가부터는 여러 가면들을 쓰고 벗는 법을 깨닫게 될 거라는 걸. 그렇게 살아내질 거라는 걸.   

  





  우리 모녀의 미국 적응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런 성격이었다. 아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사실 나 자신에 대한 걱정도 컸다. 


  1년이 지난 지금. 미리 하는 걱정을 없앨 수는 없지만 막상 해내고 나면 ‘할만 했던’ 일들이 쌓여가고 있다.

조금씩 내 마음이 열리고 있다.

     

  이 시절에 겪은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더 멀리 더 깊이 그리고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이 말은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해주고 싶다.


  

4년 전 어느 여름날~ 나랑 너무 닮아 걱정인 너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