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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 단비 Dec 31. 2023

회귀하는 연어처럼 걷다

올해  1월, 24 절기의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에 올레길 17코스 외도포구-외도월대천-외도천교-창오교-무수천트멍길-광령교-무수천사거리-광령1리사무소 시작점까지 역방향으로 걸었다. 외도 바다 초입의 월대천을 시작으로 이어진 무수천 계곡길을 거슬러 걸으면서 가장 많이 시선이 머문 곳은 찬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 끝에 새 생명의 순을 품고 꿋꿋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였다.


무수천(無愁川)은 복잡한 인간사의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올레 간세에 적혀 있었다. 외도 월대천에서부터 무수천 계곡까지 거슬러 걸어 올라오면서 숨이 헉헉 차올라 근심거리는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산란하고 생을 마감하는 연어의 한 생이 떠올랐다. 문득 인간에게도 회귀본능이란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가톨릭 교회는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첫날 재의 수요일  미사 중에  사제가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성하고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바르는 예식을 행한다. 나에겐 오늘이 회심의 날이다. 사람의  회심이 연어의 회귀와 닮았다.


올 해가 내겐 매우 의미 있고 특별했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걸었으며, 많이 쉬었다. 끝없는 우울함으로  많이 아프기도 했다. 목표가 없으면 한없이 게으른 나와 마주하며 나는 계획적 인간이구나 싶었다. 자연 속에서 많이 웃으며 지쳐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었다. 글쓰기와 사진 수업을 통해서 나를 좀 더 깊이 알아갔던 시간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2023년 마지막 날인 오늘도 숲동무들과 이승이 오름 둘레길을 걸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마지막 날 내가 걸었던 무수한 걸음을 생각해 본다.


10대의 걸음은 순수했고, 20대의 걸음은 방황의 길이었으며, 30대의 걸음은 가치와 신념의 길이었다. 40대의 걸음은 살아내기 바쁜 치열한 걸음이었고, 50대의 걸음은 낮게 낮게 흘러 바다로 가는 강물 같은 걸음이다. 그래서 천천히 바다로 향해가는 지금의 걸음이 좋다.


나에게 삶을 한 글자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한 편의 시(詩)라고 부르고 싶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보다 자신을 토닥이며, 자신이 지은 시를 노래했으면 좋겠다.


안녕, 잘 가!! 고마웠다.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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