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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Dec 04. 2022

비운의 코로나 학번, 잠시 쉬었다가 갈게요

3학년 2학기 교육실습을 앞두고 휴학을 결심한 이유



“20학번이에요.”



몇 학번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헉 그럼 코로나 학번이네요?” “아, 너무 불쌍하다.”, “그럼 학교 제대로 못 갔어요?” 이제는 익숙해진 그 반응을 들으며 그때마다 내비치는 대답도 비슷하다. MT를 한 번도 못 가본 코로나 학번으로서의 비애와 2년 간의 비대면 수업 이야기, 동기들과 교수님들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생긴 웃픈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다가도 대화의 말미에 항상 덧붙이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저는 뭐라도 해보려고 애쓴 편이에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스무 살이 되었지만 학교를 갈 수 없었다. 교수님도 만날 수 없었다. 동기들과는 랜선 친구가 되었다. 전례 없는 비대면 대학생활의 서막이었다. 초반에는 2주씩 밀리던 개강이 한 달, 한 학기, 일 년, 무기한으로 늘어날수록 정상적인 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속 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너무 억울했다. 한 번뿐인 대학생활을, 가장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을 이렇게 흘려보내야 한다니. ‘대체 왜 지금이어야 할까’하는 아무 소득 없는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억울해하고만 있기에는 한 번뿐인 스무 살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게 아까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어렸을 때 치다 말았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비대면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내 신문사에 들어가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렇게 하나씩 늘려가다 보니 집에만 있어도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 같은 과 동기는 그간 나의 발자취를 보며 우스겟 소리로 ‘너 혼자만 코로나 학번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에너지와 끼를 방출하길 좋아하는 성격 덕에 ‘미개봉 중고 새내기’ 중 ‘그나마 개봉된 중고 새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일상이 회복된 시점에,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있을 즈음에 나는 돌연 휴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3학년 2학기 교육실습을 앞둔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교육대학교의 특성상 다양한 진로의 가능성을 생각해본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학교 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진로의 방향은 단연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학교에 들어온 이상 ‘내 길은 오직 교사다’라고 늘 생각해왔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명제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중고등교사에 꿈이 있었기에 입학 전부터 복수전공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목표로 했던 학과의 복수전공 선발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복수전공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미래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지만 떨어진 순간은 참 암담했다.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 왜 교사가 되려고 했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줄곧 바라봤던 길에 처음으로 물음표가 던져졌다.


 의문을 시작으로 거대한 진로 방황기가 시작되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있다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열아홉의 나에게는 이를 실현하는 가장 건실하고도 유일한 직업은 교사였고 스물둘의 나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과연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맞을까? 혼란스럽던 방황기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것은 시야를 넓혀주는 다양한 책과 유튜브 영상들이었다. 그동안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하면서 살아왔는데 정작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지, 무슨 일을  지에 대해 진정으로 주관을 가지고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러면서 학교 안에서 열심히 겉돌려고 애썼다. 학교에서 시키는  말고 도움은  될지 몰라도 해보고 싶은 것들을 고민하고 찾아다녔다. 교육과 상관없는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실험할  있었다. 무엇을   재미있고 어떤 순간에 가슴이 뛰는지 스스로를 성실히 관찰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착실히 다니고   없이 졸업을 하고 임용고시를 보고 안정된 직업을 갖는 ’. 공식처럼 여겼던 삶의 방정식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어쩌면 내가   있는 일이, 아직 찾지 못한 나의 가능성이  많을지 몰라. 다시, 0에서부터 생각해볼까?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알이, 깨졌다. 깨진 파편들을 따라가 보니 그동안 그리 크지 않은 알 속에서 아등바등하던 과거의 내가 보였다. 나의 세계가 변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더 넓은 곳이 보였다. 이곳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봐야겠다. 화르륵. 존재감을 보인 불씨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 불씨를 본 이상 흐지부지 불이 꺼지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키우면 더 좋겠지만 어떻게든 부채질을 해서 적어도 꺼지지는 않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휴학을 해야겠다고. 진짜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내 꿈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봐야겠다고.


휴학의 테마는 Trip To Dreaming. 꿈을 찾는 나만의 여행. 알에서  발을   온전한 나의 자아가 세상을 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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