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나는 시간을 거슬러 나를 만난다
열아홉 살 때부터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내년의 나에게 편지쓰기. 성인이 되는 그 날밤, 나는 가족들과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스물을 맞이했다. 해가 바뀌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 가족들과 달리 무엇이든 호들갑 떨기를 좋아하는 나는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을 어떻게든 기념하고 싶었다. 지금의 묘하고 또 싱숭생숭한 기분을 일기보다 더 생경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래, 편지를 쓰자! 1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썼다. 21살의 문턱에 있는 나에게. 나는 이 편지를 12월 31일, 스물의 끝에서 읽었다. 그리고 또 내년에 내가 읽을 하나의 편지를 썼다. 그렇게 오직 나만의 작은 연례행사가 생겼다.
제주도에서 새해를 맞는 특별하다면 특별한 연말이었다. 어디에서라도 내 행사를 빠트릴 수 없기 때문에 제주도까지 편지를 챙겨갔다. 작년의 내가 쓴 편지 한 통. 내년의 나에게 쓸 편지 한 통. 혼자 여행을 결심했던 그날, 내 가방에는 편지봉투 두 개와 필름 카메라 그리고 일기장이 있었다. 구좌의 작은 카페에서, 혼자 당근케이크를 먹으며 그 편지를 열어보았다. 2021년의 하반기에는 내가 나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작년에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이 적혀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누르고 조심스레 편지를 열어보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꽤 묵직한 감정을 느끼며 새해를 기다리고 있을 나에게. 가장 첫 줄에 적힌 문장이었다. 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구나. 분명 과거에 쓴 것임에도 내가 무엇에 행복을 느낄지, 어떤 일로 좌절할지, 어떤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을지 전부 알고 있었다. 1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난 과거의 나는 성숙하고 단단했다. 한 살 어린 나에게 너무 큰 위로를 받아버렸다. 이 단단한 사람이 내 안에 있구나. 그 사실 하나가 못 견디게 든든해서, 처량하지만 카페에서 혼자 눈물을 훔쳤다. 이 뭉클함을 품에 안고 제주에서 편지를 쓸 수 있는 특별한 곳을 찾았다. 나에게 편지를 쓸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고요하고 오롯한 나의 요새: 고요새. 삼양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카페 고요새는 다른 카페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그 독특함은 고요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한 공간에 있다. 카페에는 적힌 문구에서 고요새의 정채성을 엿볼 수 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는다고 합니다. 너무 빠른 속도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그의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멈춤입니다. 혹시 지금, 멈추어야 할 때는 아닌가요?
평범한 카페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아주 특별한 공간이 나온다.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보이는 작은 카운터에 계신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향한다. 2층에는 오직 6개의 자리만 마련되어있다. 직원분은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안내해주신 후 바로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살면서 들어본 안내 중 가장 고요하고 조심스러웠다. 와이파이도 안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 안에서 자신을 만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을 천천히 유영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곳의 공기는 무언가 달랐다. 나는 묵직하고도 깊은, 낯설지만 또 익숙한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편지 한 통, 우표 하나, 연필 한 자루와 가지런히 준비된 다과. 눈을 감고 2022년 12월 31일로 보내고픈 마음들을 들여다본 후 연필을 든다. 시간을 꽉 채워서 미래의 나에게 하고픈 말들을 적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무엇이 불안하고 또 무서운지,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나의 알맹이는 무엇인지. 연필에 힘을 주어 열심히도 썼다. 꾹꾹 눌러쓴 글씨에 오늘의 온기가 담겨 내일의 나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생각보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마침내 도착한 글자의 힘은 대단하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눈앞에 데려와 지금의 나와 만나게 하는 것 같은 기분. 나의 세계에 내가 여럿 있을 때, 든든한 동반자이자 멘토가 생긴다.
나는 종종 미래가 두렵고 겁이날 때 1년 혹은 5년, 때로는 10년 후의 나를 소환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나를 보면 어떻느냐고. 그때의 나의 시선으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심각한 일이 그리 심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 사실은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기도 샘솟는 의지와 동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편지지를 꺼낸다. 나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올해의 끝자락에서 만날 나와의 만남이 기대된다. 제주에서 해를 넘기던 때의 어제의 내가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오늘의 나에게 오고 있다. 이제 어느덧 9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