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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짝 Sep 22. 2022

분명 책방 문을 열었는데 일기장 안에 들어왔다

책방에 갔지만 책을 읽지 않은 이유




이 글은 책방에 대한 기록이에요.

저는 책방을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초짜 책방 덕후입니다. 책방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책방 속 사람 냄새를 쫓는 일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에요. 도서관과 서점에서는 나지 않는 사람 냄새라는 게 있잖아요. 때로는 엉뚱하고 희한한 인연이 깃든 저의 책방 나들이를 들려드릴게요. 생각해보면 아마 저도 그곳에 제 냄새를 남기고 왔을지 모르겠어요.



ep1. 분명 책방 문을 열었는데 일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책방을 좋아하는 친구와 둘이 공주로 떠났다. 목적은 책방 투어. 네가 좋아하는 곳 하나, 내가 좋아하는 곳 하나. 각자의 취향대로 책방을 물색했다. 나의 책방 취향을 간략히 밝히자면, 나는 예쁘고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것보다 무심하고 자연스러운 곳이 좋다. 예쁘고 깔끔한 인테리어는 책방에서만큼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방 한편을 그저 내어준 것 같은, 사람의 색깔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그런 곳이 좋다. 워낙 방명록을 보는 걸 좋아해서 오갔던 사람들의 기록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이런 까다로운 취향을 탕- 저격한 공주의 아기자기한 '가가 책방'이 우리의 첫 번째 행선지였다. 가가 책방의 앞에 도착한 순간,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귀여운 고양이가 코를 박고 사료를 먹으며 치명적인 뒤태로 반겨주는 이곳이 공주 원도심의 '가가 책방'이다. 투박하고 손 때 묻은 느낌을 물씬 주는 가가 책방의 앞에 서면 몸이 한껏 말랑해진다.



가가 책방은 무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미리 책방지기님께 연락을 드리고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차갑고 딱딱한 자물쇠의 감촉 덕에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가장 먼저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교실의 문을 닫는 일명 '에너지 지킴이' 친구를 자주 따라다녔다.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그때만의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숫자를 하나씩 맞춰서 열어야 하는 자물쇠는 번거롭지만 한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머무름의 시간을 준다. 들어가도 될지 공간에 양혜를 구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이 찰나의 머무름의 시간을 좋아한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귀여운 저금통과 낡은 피아노가 오늘의 여행객을 맞이한다. 저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갈까, 내가 저금통과 피아노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책장에 빼곡하게 메모가 붙어있다. 이곳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피식 웃게 되는 귀엽고 천진난만한 이야기부터 움직임을 멈추고 조심스레 읽게 되는 진실하고 뭉클한 이야기, 몇 번을 다시 읽게 되는 통찰이 담긴 이야기까지. 책방에 붙어있는 메모들이 이곳을 다녀간 모두의 작은 일기장이었다.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대신 많은 이들의 일기장 한편을 진실한 마음으로 읽었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고 또 아낌없이 자신을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대가 없이 바라는 글을 발견했다. 보자마자 활짝 웃어버렸다. 아니지. 입은 활짝, 눈을 울컥 이 맞겠다.



여기 온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당신의 행복을 간절히 바랍니다.



글쓴이는 누구에게 유독 그 간절한 마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글귀를 적었을까. 그 생각이 떠오르니 일렁이는 눈동자를 붙잡을 겨를이 없었다. 마음 깊이 누군가를 사랑해보지 않았다면 탄생할 수 없는 문장이다. 타인의 행복을 비는 그 연약하고 강한 마음이 아무런 저항 없이 나에게 도착했다. 아마 가가 책방은 근방에 다른 가게들보다 한 백 살 쯤은 나이가 많지 않을까. 담고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아 그런가 가가 책방의 공기에는 지긋한 연식이 느껴진다.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이번에는 마치 나에게 속삭이는 듯한 문구를 발견했다. 멈춰 서서 다시 읽고 또 읽고 소리 내서도 읽었다.


가장 적당한 때를 찾고 골라 온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래서 가장 완벽한 여행.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있다더니, 준비되지 않은
공허가 실은 자유를 담을 자리가 되어주어서
인가보다.

요 근래의 나의 생각을 동그랗게 뭉쳐서 이쪽저쪽 펼친 다음 글자를 만들면 '불안'이라는 단어가 나올 테다. 그래서 그런지 이 문구가 나를 탁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사실은 그 메모에서 글쓴이의 불안을 읽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는 동질감이 밀려왔고 두 번째 읽으니 단단함이 씹혔다. 불안들 끝에서 결국 얻은, 그 단단한 심지에서 어렵사리 나왔기에 이 문장이 빛이 나는구나.


글이라는 건 정말 신비롭다. 그리고 그 글이 가득한 공간의 힘은 더 신비롭다. 어린아이가 삐뚤빼뚤 열심히도 쓴 글부터 우정을 약속하는 단란한 친구들의 얼굴, 사랑하는 연인이 쓴 애틋한 편지, 또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에게 쓴 보내지 못할 편지, 하늘나라로 간 친구에게 보내는 아리고 아린 눈물 조각까지. 분명 아주 좁은 공간이었는데  또 넓은 세계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펜을 들었다. 내 이야기를 한 줌 뿌리고 가기 위함이다. 멋대로 끄적인 몇 가닥의 글자도 누군가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울렁임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누군가 나처럼 책방에서의 여행을 사랑하는데 깃털 같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쁘지 않을까. 자주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요즘 매일 묻고 있다. 평온을 쫓다가도 다른 사람들을 보면 불쑥 조급해지고 내가 해오고 있는 것들에 확신이 옅어진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가도 때로는 스스로에게 회의적인 시선을 건네며 감정의 돌풍을 겪는다. 그래도 나의 다채롭고 입체적인 내 삶이, 내 하루가 좋다. 전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음이고 대답이니 생각이니. 이것은 모두, 참 나답다. 나는 나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이 경험하고 배우고 여행하고 또 기록하며 온전히 나의 길을 만들어가야지. 내가 나일 수 있어 감사해.


가가 책방에 나의 일기 한편도 떼어두고 왔다. 나의 냄새를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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