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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Dec 22. 2022

작가의 금수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북토크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북토크에 다녀왔다. 실제로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에는 빨치산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그동안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와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를 보내는 슬픔으로 경황이 없어야 할 장례식장에서 얄궂게도 딸인 소설가의 눈에는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상황으로 관찰되었다고 했다. 평생 좌파로 살아온 아버지의 지인들은 목소리를 높여 그들의 시선으로 정세를 논하고, 우파는 ‘빨갱이가 죽었으면 만세를 불러야지 웬 꽃이냐.’며 화환을 부수는 상황, 이런 모든 것들이 딸로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 보이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유시민 작가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호평이 마중물 역할을 하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다. 물론 '해방일지'라는 제목의 역할도 컸다. 정지아 작가는 1990년 ‘빨치산의 딸’이라는 다큐를 발표했고, 이번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해 오던 아버지의 삶을 장편소설로 써서 발표한 것이다.

북토크 장소였던 '갤러리 문래'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평생 빨치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그 꼬리표를 뗄 수 있었고, 이념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는 의미로 나름 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은 달랐다. 북토크에서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에 묶여서 사신 적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러니까 이념에서 해방될 필요도 없는 분이셨죠. 아버지는 눈이 오면 온 동네 눈을 다 쓰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저에게 한 번도 ‘여자가 왜 그러느냐’거나 혹은 ‘넌 안돼’, ‘하지 마라’ 등의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셨어요. 저는 이 소설에서 ‘빨치산의 딸이라는 멍에’에서 해방된 저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소설에는 이데올로기나 빨치산의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버지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념이 아닌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 온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작가는 학교에서 하는 반공 글짓기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것을 안 이후,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에서도 묘사가 되지만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상태에서 그녀에게 공부란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빨치산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발표되면서 ‘빨치산’이라는 용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벌교의 개펄처럼 차지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지리산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빨치산의 활약, 그리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일면이 ‘태백산맥’이라는 대하소설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1990년 정지아 작가가 발표한 다큐인 ‘빨치산의 딸’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맥이 닿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중에 아버지가 빨치산이어서 주변의 친척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상처가 자주 언급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40여 년 전에 ‘연좌제’라는 전근대적인 법이 우리나라에 존재했었다. 작품을 읽으며 어두운 시대가 떠올라 아프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저를 금수저라고 해요. 하하.”

 정지아 작가는 요즘 주변에서 자신을 작가로서 금수저라고 한다며 소리내어 웃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작가로서 금수저가 맞더라고요. 아버지가 빨치산인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평생 저를 따라다녔던 ‘빨치산의 딸’이라는 짐이 지금 저에게 금수저가 되다니, 세상에 모두 나쁜 것은 없다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작가로서 금수저라는 것은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대입을 앞둔 자녀가 '어머니, 입시 사정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적인 자소서를 쓰려면 제가 매우 힘든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어야 하는데, 저는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소서로 대학을 가기를 힘들어요.'라고 말해서 함께 웃었노라고 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글쓰는 사람에게 금수저가 주어졌다는 것은 그 대가로 금수저 이상의 삶의 무게를 견디어 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뜻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은 글을 쓰는 사람 모두의 열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그 금수저를 발견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의 몫이다. 살아있는 글을 쓰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참고 :  연좌제 : 한 사람의 죄에 대하여 특정 범위의 사람이 연대책임을 지고 처벌되는 것으로 죄인의 죄를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함께 묻는 제도이다. 전근대 사회의 왕조국가에서 주로 시행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연좌제는 1894년 대한제국 시대의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그러나 공식, 비공식으로 통용되어 오다가 1980년 8월 헌법적 요청으로 규정되고, 1981년 3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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