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학교 하랑 마지막 EP
이윽고 소년은 ,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혔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발버둥 쳤지만 어둠은 조용한 심해의 한가운데처럼 고요하게 소년을 감쌀 뿐이었습니다. 모든 소음이 사라졌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 벽이 갈라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등 커다란 소음만으로 가득 찼던 세계는 마치 꿈속처럼 소년이 있는 어둠 속과는 단절되어 보였습니다. 혼자 남겨진 소년은 외로움이 주는 갈증에 몸을 떨었습니다. 폐를 차갑게 적셔오는 추위가 소년을 서서히 옥죄어 왔습니다.
‘추워’
‘너는, 혼자야.’
‘아버지 얼굴도 잊어버린, 이기적인 녀석’
‘너에겐 아무도 없어’
시큼한 우유비린내가 어둠 속에서 진동합니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며 그를 비웃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소년의 숨이 점차 가빠졌습니다. 애써 잊고 외면해 왔지만 결국 현실에서도, 그리고 꿈에서도 소년은 혼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큼지막한 손바닥이 그의 목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괴하게 웃고 있는 숀, 아버지가 그의 목을 강하게 옥죄었습니다. 컥컥 거리며 고통스럽게 숨을 내뱉던 소년은 이윽고 발버둥을 멈추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지.’
이게 나한테 어울리는 마지막이라고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속죄하며 죽어가는 것이 자신한테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그러나 그때, 눈을 감은 소년의 곁으로 밝고 환한 빛무리가 떠올랐습니다.
화악
밝은 빛무리 들은 소년의 주변을 둘러싸며 긴 원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소년을 보호하듯 둥둥 떠있는 빛의 구는 어둠을 몰아내었고 소년의 목을 잡고 있던 기괴한 허상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자유로워진 호흡에 잠시 컥컥 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소년은 이윽고 갑작스레 나타난 빛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멍하니 일렁이는 불빛들을 보았습니다. 6개의 빛의 구는 각각 살짝 다른 모양과 물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소년은 빛무리들에 손을 뻗었습니다.
토옥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에 닿은 빛무리들이 찌르르 진동하며, 담고 있던 무언가를 토해냈습니다. 번져오는 빛무리들 속에서 소년은 잊고 있었던 따스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율무차. 마셔볼래요? 미미라고요.’
달달고소한 향을 내며 차분한 형상의 빛이 소년의 코끝을 간질입니다.
‘이깟 실타래쯤, 불태워버리라고요! 아 진짜 답답하게.’
살짝 성을 내며 불처럼 타오르는 밝은 빛이 소년과 눈을 마주칩니다.
‘자네가 걸어온 길은 잘못되지 않았어. 나에게 별을 보여주었지 않는가.’
조용하고 웅혼한 진동과 함께 별빛을 담은 빛이 소년을 위로합니다.
‘덕분에 백수 됐다고요. 하하! 후회는 안 하지만요!’
통통 튀는 활기를 머금은 빛이 소년의 주변에 아름다운 꽃을 그려나갑니다.
‘고마워요.. 나의 해바라기를 찾아줘서.’
아름다운 빛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잘 먹고 갑니다! 든든하게 먹고 속 차리세요!’
가을바람을 닮은 빛은 소년과 마주 보며 시원하게 웃었습니다.
소년의 눈에서 한 방울, 두 방울, 이윽고 셀 수 없이 많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요. 비록 꿈 속이지만, 소년은 숀의 몸으로 그들을 만났으나 그들과 웃고 웃으며, 교감하였습니다. 추억의 음식들을 먹으며 향수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답을 얻고 떠나간 이들을 배웅해 주며 소년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말 이야기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따스하고 밝은 불빛들이 소년의 마음속에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경비원은 말이야. 그 불청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스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었어.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한 명의 불청객들이 지나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마음속에도 하나씩 촛불이 켜진 것 같았어.”
다정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촛불..”
소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응. 촛불.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속은 말이야. 그도 모르는 새에 따뜻한 불빛들로 가득 차게 되었단다.”
그의 주위로 모여든 빛무리는 이윽고 하나로 합쳐지며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내며 떠올랐습니다. 높이까지 올라간 빛은 마치 알을 깨듯 어둠의 껍질을 부수고 하늘까지 이어졌습니다. 소년은 손을 뻗어 어둠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째 발을 떼던 그는 문득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흉측했던 덩굴은 하나로 모여 어린아이의 모습을 띈 채, 어둠 속에서 그저 덩그러니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아아..”
소년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를 괴롭혀 왔던 덩굴은 사실 ‘청소부’ 같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너는 ‘나’였구나.”
덩굴은 결국 외로움에 도망친 나였습니다.
“몰라줘서 미안해. 나 이제, 도망치지 않을게.”
아이의 손을 잡고 소년은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빛무리는 세상 모든 것을 비추며 빛으로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반파되었던 꿈의 학교 하랑도, 복도에 축 늘어져있던 고양이도 따스한 빛은 모두를 차별 없이 감싸 안았습니다.
짹짹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 대신, 들려오는 자그마한 참새소리에 소년은 눈을 떴습니다. 아버지의 이불에서 어렴풋이 나오는 햇빛냄새와 까끌까끌한 촉감이 그를 편안하게 합니다.
오랜 꿈에서 깨어났지만, 어쩐지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하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긴 머리카락을 거울을 보며 짧게 잘라냈습니다. 거울에 비친 소년은 여전히 하얗고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그의 눈에는 따스한 빛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새 출발을 마음먹은 사람의 그것과 같은 눈빛을 한 소년은 준비를 마치고 오래도록 잠겨있던 집의 문을 열었습니다.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립니다. 맑고 푸른 봄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건너편 집 담벼락 위에 회색고양이 한 마리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담벼락 밑으론 자전거를 타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고등학교 정문이 있는 언덕길을 구경하였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음.. 일단은 교복부터 사야겠는걸~”
소년은 씨익 웃으며 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꿈의 학교 하랑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