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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린 Sep 09. 2023

외로운 섬처럼 살았다

그리운 이름, 가족


 멍에를 메워 끌려온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뉴욕생활, 어느덧 십몇 년이 지났다. 

샵은 리스 기간이 20년이니 한 곳에 그대로 있었지만 사는 집은 하숙집에서부터 스튜디오, 원 베드룸, 투 베드룸 그리고 로망이던 마당이 있는 집까지 여러 번을 이사 다녔다. 물론 동네는 베이사이드를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인과 한인이 많이 모여 사는 플러싱 보다는 치안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동네였다. 그 시절에도 한인 마켓이나 한인 관련 물건들은 플러싱에 나가면 언제나 구입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 살아도 이웃과는 왕래가 없었다. 낯을 가리는 편이기도 했지만 모두 바쁜 자기 생활이 있으니 아침저녁 만날 때 '하이' 인사를 하는 것 외에는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아파트 관리해 주는 슈퍼 (감독관, superintendent)하고는 가까이 지냈다. 손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어 달려와 주었다. 그는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파트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 그리고 쓰레기를 처분하는 일을 했다.  성실하고 따뜻했다. 그 고마움에 추수감사절쯤에는 언제나 '한국 신고배'를 선물하곤 했다. 어느 날

"주말에는 무얼 하며 지내?" 

"클럽 가서 드럼을 연주하지. 어제도 1박 2일로 케이프 코드(Cape Cod)에 다녀왔어!" 

드럼을 친다고! 와 케이프 코드까지! 

나는 그가 비록 슈퍼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여가를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우연히 그의 어머니와 와이프 만났다. 왠지 이들의 선한 인상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슬로바키아를 닮은 듯했다.

 

 한인사회나 종교 커뮤니티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 현지인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한인사회와는 각별히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이민자 신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의지도 없는 우리들은 그저 샵과 집만 오가며 살았다. 집과 샵 사이에 있는 골프장이 유일한 놀이터였다. 일 년 중 미국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주말까지 일했다. 거의 360일을!!!


 미국사회는 주말이면 가족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래서인지 휴일이 오는 것이 참 싫었다. 롱 위크앤드는 더 싫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이 되면 왠지 마음이 스산해지고 울적해졌다. 가족이 없는 우리는 외로운 섬처럼 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가족 속에서 자란 나는 가족을 떠올리면 늘 왁작박작했던 기억들이 생생한... 특히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할리데이 시즌이 오면 더 쓸쓸해졌다. 이웃들은 멀리서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며 음식 준비를 하고 집안을 꾸미느라 부산했다. 식구들이 함께 모이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어서 할리데이 휴일이 지나갔으면 했다. 



 그러나 떨어져 사는 가족이 어디 우리뿐이랴.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몇십 년을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 아이들 교육 때문에 혹은 경제활동을 위해 현실에 발목이 잡힌 기러기가족, 보고 싶어도 신분 때문에 오고 갈 수 없는 자유를 저당 잡힌 불체자 가족, 조기유학이라고 외국에 내던져져 홀로 지내는 아이들, 독거노인, 떠돌아다니는 노숙자들….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에 비하면 나의 그리움은 작은 투정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단한 시절에는 가족이 버겁기도 하지만 가족은 늘 보고 싶은 존재다. 그냥 그립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란,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과 이야기들이 뼈와 살 속에 스며 있어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위로하기에, 생각만 해도 뜨거움이 울컥 올라오는 존재일 것이다.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떨어져 있기에 애끓는 마음만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저 겨울비가 그리움을 적셔주는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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