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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Shin Feb 07. 2024

한참을 고민했어

임의단체 신청(1)

 2024년이 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퇴사와 함께 시민예술 아카데미에 참여하고 10월 대공연장 무대에 올랐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그다음 해가 되었을 때 지역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러 예술 관련 공모를 보았다. 이제 직업도 없겠다 뭐라도 해볼 수 있지는 않은지 공모 내용을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항목은 없었다. 나는 예술인 등록도 되어있지 않고 소속된 예술단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시민예술 아카데미 공고가 올라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생활문화예술동호회에 교육비를 지원해 주고 공연도 할 수 있게 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전년도 시민예술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분들께 연락해서 함께 할 수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대부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거절 의사를 보내왔지만, 재능 있는 청소년 몇 명과 소수의 성인으로 지원 최소 인원을 겨우 맞추어 '이드뮤'라는 이름으로 동호회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시민예술 아카데미를 운영했던 같은 지역재단 소속이기에 우리의 열심을 좋게 보았는지 생활문화지원센터는 합격통지를 보내주었다. 2022년 1년 동안 '이드뮤'라는 이름으로 세 차례의 공연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그 활동들 덕분에 23년 초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비록 2년간의 자격이지만 신진예술인 등록을 해주었다. 덕분에 신진예술인 자격으로 복지재단의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시, 도 예술인, 예술단체 등록까지 작년에 모두 마치게 되었다. 이것이 이제까지 브런치에 올린 글들의 내용이다.


 공인된 단체에 부여되는 고유번호는 지역문화재단 공모를 할 때 필요한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이다. 또한 동네 자치행정 주최 축제에 공연자로 참여하고 싶어도 고유번호가 없으면 신청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공연자를 목표로 한다면 긴히 쓰일 일이 많은 것 같아서 공연예술단체 공식적인 설립을 하고 싶었는데 짬을 내며 검색하는 인터넷상 내용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머리가 좋지 않았나 자책할 정도로 정말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다.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자료들을 보고 또 보아 일단 비영리단체 중 임의단체(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등록하면 된다는 것까진 알았는데 그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궁여지책으로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나 인스타로 정보를 검색한다지만, 난 옛날 사람답게 관련 책을 사보았다. 서점에 가서 직접 내용을 훑어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인터넷 서점에 간략히 설명되어 있는 요약된 내용만으로 책을 선정했더니 아뿔싸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와 별 다를 바 없는 정보의 나열이었다.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 느낌이 싫었고,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일상이 바빴으며, 솔직히 늘어가는 나이가 체감되니 아무것도 아닌 내가 예술을 하겠다고 돌아다니고, 또 예술을 논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작년 한 해는 공연에 대한 의지가 없이 지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쉬워서 시민예술 아카데미에 또 도전하였지만 코로나, 독감, 알레르기 비염 등으로 1년 내내 고생하고 기대하던 만큼 무대에서 기량을 보여준 것 같지도 않아서 이제는 정말 주부로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도 예술인' 등록 축하한다고 '도 예술재단'에서 예쁜 손수건과 나무젓가락을 선물로 보내주고, '시 예술인' 등록되었다고 '시 문화재단'에서 예술인 포트폴리오 책자와 피크닉 매트를 보내주었다. 선물의 힘일까? 그래도 계단 하나를 오른 듯한데 그대로 하산하긴 아쉬운 마음이 조금 생겨났다. 


 1월 말에 시와 도에서 24년 예술지원프로그램 지원 신청 공고를 보게 되었다. '시 문화재단' 카카오 채널을 친구로 등록해 놓아서 늘 알람이 오면 재단 활동을 습관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올해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궁금해져서 공고 파일을 다운로드하여서 읽어보았다. 이미 공모가 끝난 줄 알았던 '도 문화재단'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이 내가 사는 시에서는 2월에 모집한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뇌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이른 시일에 단체 고유번호를 받아서 2월 지원서를 작성해 보든지 고유번호증 발급이 늦으면 하반기 프로그램이라도 신청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1년 시민예술 아카데미와 22년 동호회 활동을 함께해 준 믿음직하고 든든한 '이'에게 연락했다. '이'는 동호회 이름 작성에 8할은 기여한 장본인이다. 여차저차 세무서에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제출 서류 작성을 도와주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등록을 위한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순 행정사들이 올려놓은 글투성이다. 행정사를 고용하면 거의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고유번호증을 받을 수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비용이 든다. 법인도 아니고 100인 이상이 되는 비영리민간단체도 아닌데 굳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진행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내가 알아본 내용만 보면 쉬워 보인다며 수뇌부 '이'가 내 제안을 수락하였다. 주말 동안 단체명 도장을 만들고 월요일인 어제 그녀의 집에 가서 서류 작성을 하였다. 우리 집 프린터는 고장난 지 오래라 부득이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첨부 자료의 예시 파일들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하였는데 왜 다들 한글파일인지. 퇴사하고 보니 일반 가정에서는 한글 오피스 유료 구독을 하지 않으면 내용을 뷰어로만 볼 수 있고 편집도 할 수가 없었다. 여러 확장자를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앱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하나하나 키보드를 두드려 일일이 새로 작성하는 것이 빠르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녀가 타이핑을 쳤다. 예시 파일에서 기본 골자를 옮겨 적으면서 우리 단체에 맞게 일부를 수정하는 일까지 병행했다. 장장 네 시간의 업무였다. 회원들의 도장을 인주에 묻혀 찍어놓으니, 서류들이 꽤 그럴싸하게 보였다. 신청서 작성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꾸려서 회원으로 기재했다. 22년 공연 자료까지 첨부하니 지난 만 2년 동안 어느새 우리에게 스며들어버린 '이드뮤'가 잠시 잠들어있다가 번쩍 눈을 뜬 기분이 들었다. 


<제출 서류> 

-법인으로 보는 단체의 승인신청서

<첨부 서류>

- 정관

- 회칙

- 설립 및 대표자 선임 회의록

- 회원명부

(- 그리고 이후에 언급할 임대차 계약서)


  '법인으로 보는 단체' 신청은 홈택스에서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첨부 자료도 예쁘게 전부 스캔하고 (우리 집 복합기가 프린터로써 출력은 못하지만 스캐너 역할은 멀쩡히 잘 해낸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입력 사항 하나하나 적어 넣어보는데 보유 재산(?) 부분에서 막혀버렸다. 0원으로 넣으면 된다고 블로그에서 보았는데 필수 입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 더 있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더 알아보기엔 힘들어서 신청서는 세무서로 직접 가서 제출하기로 하고 편히 잠에 들었다.


 다음날인 오늘 오전, 세무서에 갔다. 무료 주차가 가능해서인지 세무서 직원과 방문 민원인 전부 합친 숫자보다 많은 차량이 주차장을 빙 둘러 채워버린 것처럼 보였다. 주차장 한 바퀴를 돌고 빈자리가 하나 생겨서 겨우겨우 주차한 후 민원실로 들어가 번호표를 뽑았다. 다행히 대기자가 많지 않아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접수를 완료하지 못했다. 사무소(단체 모임 장소) 관련 사용계약서가 누락되었다고 했다. 소규모 임의단체에선 필요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신청서에 우리 집을 사무소로 사용하기로 써넣어 놓았으나 추가로 집주인의 허락이 필요한 상황. 분명 나도 우리 집주인인데 명의자에게 장소 사용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무상사용 계약서를 출력해서 (지하철역 인근의 프린팅 박스라는 기계를 이용했다) 임대인의 인감도장을 찍고 임차인인 내 도장도 찍었다. 문득 내 소유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도 하고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얼마나 좋을지 기분 좋게 상상하다가 복지재단 예술인 교육에서 전문 화가들도 작업실 임대로 많은 고충이 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이 땅에서 건물주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미진한 서류를 보충하여 오후에 다시 세무서를 방문했다. 오전과는 다른 담당자와 만나게 되었는데 서류를 제출하니 담당자가 생각보다 긴 시간을 컴퓨터로 작업하셨다. 신청서는 가져가시고 첨부 서류들은 아마도 승인부서인 듯한 곳으로 팩스를 보낸 후 나에게 다시 돌려주셨다. 접수증도 출력해 주시면서 등록증 수령 시 신분증과 접수증을 가지고 오라고 안내해 주셨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단 며칠 만에 지난 2년 동안 고민하던 일을 일사천리로 끝내버렸다. 승인 거절이 되지는 않을지 약간의 걱정도 되지만 '이'와 난 최선을 다했다. 가능한 한 빨리 단체승인이 되어서 2월 공모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2년 전에 내 앞을 가로막았던 예술인 증명과 단체 승인 작업도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만 차근차근 시도하며 결과물을 얻어가는 중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여러 논의를 하고 기획서를 작성해 보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다. 좋은 사람들과 공연을 마음껏 하고 싶다. 

오늘 내 손에 들어온 접수증 (글 수정하다보니 어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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