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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Shin Feb 26. 2024

벼락치기

임의단체 신청(2)+지원사업 신청서 작성

 설 연휴 며칠 전 부랴부랴 했던 단체신청이 설 연휴 지나고 이틀이 되자 영롱한 고유번호증으로 돌아왔다. 


단체 통장 만들 때나 쓸까 싶었던 단체이름 도장도 여러 번 인주에 몸을 묻혔고 미비한 서류를 보완하느라 세무서도 여러 차례 방문하고 팩스로 서류도 보냈지만 나름 수월하게 단체 등록이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체 도장을 한 번 더 쓸 요량으로 은행에 들렀다. 요즘은 스마트 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기계만 있는 지점이 늘고 있다. 단체 도장은 서류도 제출해야 하고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 있어서 은행 직원이 있는 창구로 가기로 했다. 세무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이 있는 지점을 찾아 들어갔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제일 먼저 번호표를 뽑고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후 3시경이었는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분명 옛 기억엔 입금표, 출금표 등 종이와 볼펜이 있었는데 은행 어디에도 없었다. 동전을 입금하려는 아이와 어머니, 이체 한도가 적어서 은행을 찾아온 어르신 두 분이 시설 경비원에게 문의하고 있었다. 나머지 대기인원들은 무료한 듯 벽에 걸린 TV를 응시하거나 옆 사람과 조용히 얘기하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앞에 30명 넘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TV를 보는 무리에 합류하고 한참 동안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필요 서류를 다 내고 당당하게 계좌 개설을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묻는다 


" 단체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했던 적이 있나요?"


" 아니요. 없습니다."


" 회장 개인 명의로 최근 20일 이내 계좌를 개설한 적은 있나요?"


" 증권 계좌를 개설하기는 했는데 영향이 있나요?"


" 통장 이름은 단체이지만 회장 개인 거래 기록이 반영됩니다. 한번 시스템 확인해 볼게요."


" 네."


" 아…. 전산에 뜨네요. 시스템에서 막히는 거라 계좌 개설이 안 됩니다. 영업일 기준 20일 이후에 다시 오셔야 해요."


 공모주 1주 신청하려고 증권 계좌를 개설하였는데, 이렇게 관계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균등도 비례도 배정이 하나도 안 되고 0주로 마감되어 이래저래 에너지를 낭비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다. 한 달 후에 은행에 방문해야 하고 거기서도 다시 몇십 분을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사실 다른 증권 계좌를 개설하면 네이버 페이 2만을 준다고 해서 한 달 후에 그러려고 했는데 단체 통장을 만드는 것과 네이버 페이 2만 원 중 어느 쪽이 나에게 더 이득인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간식처럼 넣어본 은행 방문 이야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단체 등록을 하고 고유번호증을 받은 궁극적인 이유는 예술인 지원사업 신청을 위함이다. 경기예술 활동 지원사업과 김포예술 활동 지원사업 공고가 올라왔는데 자료를 자세히 읽어보니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은 김포예술 활동 지원사업 중 '활동 지원' 영역뿐으로 보였다. 신청서 제출 기한은 2월 23일 오후 6시까지. 이론상으로는 온전한 7일간의 시간이 나에게 있었지만, 설 연휴 여독을 풀고 아이디어 구상을 하고 마음을 같이 할 동료들을 구하다 보니 금세 한 주가 다 가버렸다. 길을 걷다가도 고민하고 세수하면서도 고민하고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사업기획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제출일이 다가오자, 스트레스 때문인지 급기야는 두통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삶의 태도는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 학창 시절에도 날 괴롭혔던 시험 전 벼락치기 공부 방법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브런치 발행 횟수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난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고 아무런 방해 없는 환경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자도 글을 쓸 수가 없다. 지원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시각은 제출일 전날 밤 자정이다. 


 아이들을 재운 후 컴퓨터로 게임하는 남편 옆에서 내 노트북을 열고 신청서 첫 장을 바라보았다. 주말까지 포함해 근 2주를 고민하고 상상하고 아이디어 노트까지 작성해 보았었지만 역시 실제 자료 작성은 다른 일이다. 정답이 있는 항목부터 써넣기 시작했다. 내 이름, 단체이름, 단체번호, 그런 것들 말이다. 한글 프로그램 사용 기술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서류 작성하는 일. 알맞게 사진 넣기, 보기 좋게 서체 다듬기 등 어렵지는 않지만 제멋대로 변해버리는 한글파일의 이상한 맘에 들도록 하기 위해 이리저리 잘 구슬리는 시간이 또 필요하다. 자 이제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예산 작성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왜 진작 하지 않았나 자책하고 또 후회하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일단 기본 뼈대를 마련하고 나니 동이 텄다. 몇 걸음 걸어 침대에 밤을 꼬박 새운 긴장한 몸을 누이고 잠깐 눈을 붙였다. 9시가 되어 가족들에게 아침을 차려준 후 다시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내 계획은 12시까지 마무리하고 이메일로 담당자에게 제출하는 것. 신청서 모든 빈칸을 채웠다. 멀리서 보면 구색은 맞춘 그럴싸한 자료가 되었다. 한번 읽고 두 번 읽으니 아쉬운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내가 가장 의지하는 우리 단체 부회장 그녀는 지금 제주도 가족 여행 중.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피드백을 요청한다. 12시는커녕 3시가 되고 4시가 넘어도 아직은 미완성인 신청서. 공고문을 다시 자세히 읽어본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같은 신생 단체는 선정되기 어려울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그냥 포기해 버릴지 일차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작성한 내용만으로 일단 제출이나 해볼까? 하고 이차로 생각한다.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4시 정도면 공항 가는 길에 추가 문단을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지만 그녀를 믿으니 기다려보기로 한다. 


5시가 넘고 5시 20분이 된다. 문득 가족들과의 소중한 여행길에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그녀가 남편에게 불편한 소리를 듣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소심하게 카톡을 보내본다. 읽음 표시도 뜨지 않는다. 


이메일로 담당자에게 신청서를 제출한 후 꼭 유선 전화로 확인하라는 신청 가이드가 있었다. 전화까지 하려면 늦어도 5시 30분엔 이메일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머리로 계산을 해본다. 이제는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무렵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보내셨어요? 엉엉"


답을 할 겨를도 없이 일단 카톡 내 문단 복사를 하고 신청서에 붙여 넣는다. 중간에 내용을 끼워 넣으니 따라오는 뒤 그림들이 또 요동을 친다. 일일이 엔터키와 백스페이스를 눌러대며 다시 보기 좋게 편집한다. 문서 작성을 마무리하고 그제야 그녀가 보내 준 글을 읽어본다. 이동하면서 적은 내용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글이었다. 아쉬웠던 내 기획서 퍼즐에 그녀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니 겉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창피하지 않은 문서가 되었다. 제출 마감 시간 단 10분 전인 5시 50분에 이메일 전송을 완료한다. 곧바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시도하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계속 통화 중이다. 담당자 퇴근 시간인 6시가 넘고 6시 10분이 되어도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상황을 설명하는 추가 이메일을 보내고 이번 작업은 끝났다.


 가족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긴장이 풀린 나는 침대로 직행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한 걸 아는 남편은 내가 가여운지 별다른 말 없이 나의 휴식을 지지해 주고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남편이 묻는다.


"그래서 발표가 언제라고?"


"몰라 나도. 흐흐흐"


제출일만 신경 쓰고 선정자 발표일 따위는 알지 못하는 나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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