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예술인지원사업 신청 결과
지난 금요일 '이'가 찾아왔다.
지역 예술인 지원사업 신청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유명한 쌀국수 음식점도 가고 새로 생겨서 평이 좋은 코인노래방도 다녀왔다.
오전 10시부터 헤어진 오후 3시 반까지 그녀는 틈틈이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함께 있을 때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내 기억에 사업 선정 발표는 늘 재단 업무 시간이 종료될 무렵 홈페이지에 올라왔었고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다.
헤어지고 각자의 가정에서 아이들을 챙기던 중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결과가 나왔으나 선정단체 리스트에 우리 이름은 없다고 했다.
선정된 팀들의 이름과 공연 제목을 읽어보니 내가 '기획서 작성법' 수업에서 배운 사회, 문화적인 이슈를 담거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용보다는 예술전공자들이 자신들의 특기를 늘 하던 대로 기획함이 더 많아 보였다.
우리가 기획했던 아이템은 관객참여+음악치료+연극치료를 엮어서 음악치료 전공자, 아동심리 치료사와 함께 공연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획 의도는 좋았지만, 우리 단체가 공연을 제대로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 단체인지를 증명하지 못한 것이 낙방의 원인으로 보이고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사업 신청서를 작성할 때도 계속 불안하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바로 그것.
내 생각에는 우리 멤버들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심사위원 및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허구의 말뿐인 단체라고 보일 것 같은 경력 포트폴리오 말이다.
탈락 소식을 멤버들에게 전하면서 내가 돈키호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가 없는 상상의 적과 싸우며 주위의 비웃음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행복한 기사였던 돈키호테처럼 나도 그리고 우리도 지금은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언니네 이발관'처럼 멋진 결과물을 남길 수 있을까?
'이'는 성악을 전공했지만, 뮤지컬을 하고 싶어 한다.
저학년 아이의 엄마가 뮤지컬 배우를 하기엔 다른 공연들보다 제약이 더 많다.
그래서 그나마 현실과 타협하고 시도한 것이 시민 예술 아카데미였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지?
나를 찾는 여행을 하겠다며 브런치를 시작했지만…. 목적지를 찾기엔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그렇다고 특출 난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은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다고 믿고 늘 멋진 꿈을 꾸고 있다.
제 코가 석 자면서 예술을 전공하고도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예술경력 단절 여성들이 안타깝고 아까워 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었지만, 능력 외의 것을 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입이 쓰다.
2021년 퇴직하면서 막연히 세웠던 계획인 2025년 내 화려한 데뷔는 생각보다 준비가 아주 더디게 되고 있다.
분명 여유로운 설정이었는데 수년이 사라져 버렸다.
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고, 버스킹도 유튜브도 공연단체도 다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렸거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지.
올해는 내실을 키우는 한 해로 만들 테다.
오전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홈 리코딩을 재시도하려 한다.
몇 년째 제대로 완벽하게 시스템을 구축하려다 한 발도 못 나아갔으니, 이번엔 시스템 없이 그냥 시작해야지.
아이폰과 맥북, 콘덴서 마이크만으로.
나는 신키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