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포도가 아니다
어린 포도송이의 시간
- 김용기
포도알 달려 있었다
어렸다
아직 천지(天地) 분간 못하는 시기
저 때는 대개
뜨거운 해 피하는 요령도 모르고
가르쳐 주더라도
귀담아듣지 않는 탓에
비명 몇 번 지르다가
시린 밤 무서움 맞는데
그것도 잠깐, 잊고 잠드는 시기다
검게 익은 자신을 봤다면 놀랐을까
거울이 없어서
거무스름하게 변한 포도밭
모르는 것은 약
지금까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듬직한 포도송이 익히느라
뜨거운 해도
따뜻함 성히 남아 있을 리는 없다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한 마디 없이 우걱우걱
그냥 먹는 게 일인 입(口)
손이 고마울 리가
해가 고마울 리가
부려먹는데 익숙한 입에 대하여
야속한 한마디
욕심쟁이 주둥이야 부르터라
다가 올 포도송이 운명
뒤집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