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코로나'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병은 세상을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코로나'라는 놈은 강한 전파력으로 오래전 없어진 통행금지가 소환된 듯, 사람들을 모이지도 못하게 하고
상점들의 영업시간도 제한을 하게 했고, 오고 가는 사람들로 그리 붐비던 공항도 썰렁하게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갑작스러운 질병의 영향으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이란 걸 주었는데, 나도 1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냥 가지고 있다가는 떡이나 사 먹고 말 거 같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돈을 더 보태서 자전거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러한 참다운 생각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새 자전거를 사려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창고에 중고 자전거가 있는데 상태가 좋다며 그걸 사라고 나를 꼬드겼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심산으로 '일단 보기나 하자'라고 생각하고 중고자전거를 보니, 좀 허름해 보이기는
해도 키 작은 내가 타기에는 적당한 크기에 그럭저럭 탈만해 보여 9만 원을 주고 그 중고자전거를 사 왔다.
그런데,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지라 자전거가 없을 때는 자전거가 그리도 갖고 싶더니 중고자전거라 그런지 집에 데려다 놓고는 타기가 싫어져 근 2년간을 방치해 둔 결과 자전거는 시커멓게 먼지만 뒤집어쓴 채 고물이 되어갔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중고 자전거를 보니 '저걸 내가 왜 사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마 버릴 수도 없어 깨끗하게 닦고 공기압도 넣어 보니, 마치 유기견 데려다 목욕시켜 놓은 것처럼 나름 모습을 갖추었다. 나는 속으로 '중고 자전거라 도난의 염려도 없고, 새 자전거처럼 모시지 않아도 돼서 좋을 거야' 라며 마치 여우의 '신포도 기법'처럼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며 그냥 타기로 했다.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운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이다.
오빠들이 타던 자전거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어떻게 배웠는지도 모르게 탈 수 있게 되었다.
운전도 처음 배웠을 때가 제일 하고 싶듯이, 자전거도 처음 배웠을 때 왜 그렇게 자랑이 하고 싶던지..
자전거를 배우고 얼마 되지 않아, 자랑삼아 신작로로 나섰다가 마주오는 덤프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논두렁에 처 박혀 깁스를 했던 팔은 아직도 손가락이 비정상이고, 성인이 된 후에는 사거리 신호등에서 정지하려다가 발을 헛디뎌 나가떨어져 이도 부러지고 얼굴은 몇 바늘 꿰매야 했고, 이마엔 아직도 훈장처럼 혹을 하나 달고 살아가고 있다.
이때, 얼굴에 든 멍으로 근 한 달여간을 판다가 되어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엄청 고생을 했었고, 자전거가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었다.
그 후로 한 동안은 자전거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들이 흐릿해지며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중고 자전거라 비포장도로로 나설 때면 덜덜거리는 소리는 날 망정, 요즘 같은 장마철에 물구덩이를 쌩 지나가도 부담 없고, 아무 데나 세워 두어도 누가 집어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이 또한 장점이다.
요즘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나가떨어져 넘어질 염려도 별로 없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 길을 달릴 때의 기분이 참 좋아 추워지기 전까지는 신나게 자전거를 타볼 생각이다.
취미 생활 이라면서, 자동차 값에 버금가는 비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나는 그냥 소박한 내 고물 자전거에 만족하기로 하고, 오늘도 여우의 '신포도 기법'처럼 나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며 고물 자전거의 장점만을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