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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주 Jul 10. 2022

차마고도를 가다.

호도협(虎跳峽)과 매리설산(梅里雪山))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티베트의 말(馬)과 윈난성의 차(茶)교역로'라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멋진 풍광을 보면서 '저런데 나도 한번 가 보고 싶다'란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등산이나 비박에 관심이 많던 친구가 차마고도(茶馬古道)다녀왔다며 옥룡설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너무 멋있었다. 이 사진을 보고 '네가 가면 나도 간다'란 생각으로 겁도 없이 옥룡설산보다 더 멀고 험한 매리설산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의 일정은 쓰촨성 성도(成都) 공항을 거쳐 윈난성 강(丽江) 공항으로 환승 후, 교두진이라는 곳에서 시작하는 '호도협'트레킹을 마친 다음, 윈난성과 동티베트의 경계인 시땅촌(村)에서부터  매리설산의 일부를 또 걷는 것이었다.

지금은 중국의 오지마을 길들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처음 중국 트레킹을 떠났던 7년여 전의 윈난성 시땅촌(村) 가는 길은 꽤나 험난하고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길 한쪽 높디높은 산에서는 돌이 굴러 떨어지고, 다른 한쪽은 깊은 낭떠러지 계곡 이건만 우리들의 불안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곡예하듯이 잘도 달렸다.


트레킹 첫날, 호랑이가 뛰어넘을 정도로 폭이 좁은 협곡이라는 '호도협'을 걷는다.

어제 늦은 도착과 오늘 이른 새벽 출발로 쌓인 피로, 5월 윈난성의 따가운 햇살, 트레킹 시작점부터의 급격한 오르막길은 너무나도 지치게 했다. 말을 타고 가도 된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한걸음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새 2800미터쯤 되는 28 밴드를 거의 올라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평지길이었고, 햇살도 한풀 꺾여 걷기가 한결 수월해지니, 비로소 제대로 된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이곳에 있다니...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오늘 묵을 숙소는 차마객잔(茶馬客栈)이란 곳으로, 호도협을 통해 교역을 하던 마방들이 묵던 숙소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데, 마치 내가 마방이 되어 하룻밤 쉬어가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캄캄한 밤중 깊은 산속 객잔(客栈) 옥상에서 쏟아질 듯한 수많은 별들을  수 있음은 이번 여행의 덤이다.

영국의 어느 방송사에서는 뉴질랜드 밀포드 트렉, 페루 마추픽추 잉카 트레일과 함께 호도협을 세계 3대 트레일로 선정했다고 들었는데, 환상적인 풍광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길이다.

아름답고 설레었던 1박 2일간의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고, 이제 매리설산 트레킹을 위해 비래사를 거쳐 시땅촌(村)으로 들어간다.


버스를 타고, 마을도 없는 깊은 산속 비슷비슷한 길을 가도 가도 끝도 없이 정말 지겹도록 차를 타고 갔다. 얼마나 지루했든지 일행들은 "이렇게 오래갈 거면 사전에 얘기라도 해 줘야지, 똑같은 길을 도대체 어디까지 데리고 가냐?"며 투덜대기도 했다.

그렇게 일곱 시간여를 버스를 타고 늦은 저녁에 비래사에 도착했다. 이곳의 고도가 3천 미터를 넘어서인지 살짝 고산 증세가 오는 듯했으나,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그럭저럭 적응이 된다.


다음날 아침, 비래사를 출발하여 시땅촌(村)에서부터 3700미터가 되는 남중 패스(고개)를 넘어서  최종 목적지인 상(上)위뻥 마을로 갔다. 이 길은 이번 트레킹 일정 중 제일 재미없고 제일 힘든 구간이었다. 짐은 말에게 맡기고 간식과 물만 챙겼음에도 처음 걷는 고산길이라 숨이 차고 어지럽고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짐을 느낀다.

고산이 온 거 같아 준비해 간 비아그라 반알을 먹었으나. 오히려 더 정신이 없고 안 먹은 만 못하다.

겨우 고개를 넘어 마을에 다다랐을 무렵, 귀여운 꼬마가 보이길래 예쁘다는 표현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는데 가이드가 기겁을 한다. 티베트 장족들은 머리를 신성시하게 때문에 아기라도 함부로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3박 4일간의 베이스캠프가 될 티베트 장족의 마을인 상(上)위뻥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윈난성이라 되어 있지만, 건축양식이나 음식 등 심지어는 여자 한 명이 한 집안의 남자 형제들에게 시집을 가는 결혼 풍습마저도 아직까지 장족들의 예전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조금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또 변하지 않았다한들 그것 또한 그들의 문화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드디어 매리설산 트레킹이다.

전설의 폭포라는 신폭(神瀑)과 얼음호수인 삥후(氷湖)를 이틀에 걸쳐 다녀오는 일정이다.

티베트인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매리설산으로 순례의 길을 나서 신에게 다가가기 전 몸과 마음을 다잡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신폭(神瀑)은 전설의 물줄기라 하여 예부터 티베트인들은 이 신폭(神瀑)의 물줄기를 맞으면 죄를 씻을 수 있고, 장수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여 3의 배수 횟수로 돌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세 바퀴를 돌며 소원을 빌어 봤는데 아직까지도 내 소원이 이루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신폭(神瀑)을 다녀온 다음날은 삥후(氷湖) 트레킹을 했는데 며칠을 계속 3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지내서인지 어지러운 증상도 없어지고  3900미터나 되는 곳을 다녀와도 호흡도 편안하고 견딜만하다. 다만, 고산증세의 하나인지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이렇게 매리설산 트레킹을 마치고, 내일이면 며칠 동안 정들었던 이 상(上)위뻥 마을을 떠난다.

비록, 고산 오지마을의 열악한 환경으로 춥기도 하고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지냈지만,  고즈넉하고 평온했던 이곳 떠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날 일정인 란창강 대협곡을 걸어내려 가는 니눙트레킹이다.

크게 기대를 안 했던 길이어서인지 나는 이 길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으며 진정한 차마고도 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길에 아래로는 협곡이 끝도 없이 깊어 보이는데, 길이라고는 교행은커녕 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이다. 강 아래 협곡을 보면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발걸음을 떼는 거조차 무섭고 두렵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마방들이 이 협곡의 좁은 길에서 서로 마주칠 경우, 더 비싼 물건을 실은 마방이 저렴한 물건을 실은 상대편에게 물건값을 주고 말과 물건을 강 아래로 떨어 뜨렸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렇게 긴장된 길을 여섯 시간 정도 내려와 니눙을 거쳐 더친이라는 곳에서 이번 트레킹을 마무리 지었다.

고산에 대해 제대로 공부도 않고 준비도 없이 떠났기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또한 좋은 경험을 많이 했고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나의 첫 번째 고산 트레킹이었다.


7년여 전에 우리가 이곳 더친지역을 여행할 때만 해도, 중국에서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등산복 차림으로 점심을 먹는 우리들을 이 동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쳐다보기도 했는데 불과 10년도 안된 일들이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이 오지마을까지도 길이 많이 개통되어 그렇게 힘들어하며 넘었던 남중 패스를 걸어가지 않고 차를 타고 상(上)위뻥 마을까지 간다고 한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차마고도 길이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시멘트로 치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나라의 갯벌이 점점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드는 것은 나만의 욕심이겠지...


아직까지는 그래도 걷는 것에 크게 무리가 따르지는 않는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은 늘 새로운 길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다음에는 어느 길을 걷고 있을지, 또 그 길에서 누굴 만날지 항상 기대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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