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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Oct 07. 2023

초보 운전

  누구에게나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내게는 운전과 바퀴벌레 잡기가 그러했고 지금은 바퀴벌레 잡기만 그렇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교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하며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어서였다. 이곳에 쓰는 글은 주로 일상과 관련된 글이지만, 이런 류의 글을 쓰면서 나는, 언젠간 교과서를 쓸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리고 올봄 우연히 교과서 제작에 참여할 기회가 왔다.


  그런데 교과서 제작 과정에 참여하려면 간간히 출장을 가야 했다. 출장지는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불편한 곳이었다.


  올해 나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야겠단 생각을 꽤 여러 상황에서 여러 번 했다. 언니가 결혼한 이후, 우리 집에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아빠가 유일했는데, 다리가 다치신 아빠가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나, 명절날 장거리 운전 후,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보는 것 등. 운전이 자신 없다고 손 놓고 있기엔  불편하고 이게 최선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지는 상황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지난 5월, 서울에 있는 한 운전면허 학원을 찾아갔.


  필기시험은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집은 경기도, 직장은 서울, 학원은 퇴근길에 거쳐가는, 직장과 집의 중간 지점으로 잡았기에 웬만하면 모든 과정을 평일에 소화하고자 해서, 심적 여유가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붙어야 했다. 다행히 면허 획득을 위한 두 번째 관문인 장내 기능 시험도 순탄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한 번에 해내는 나를 보고 동료 선생님은 '운전 천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운전도 잘하네' 마지막 관문인 도로 주행만 넘으면 그동안 자신이 없어 바라지도 않았던, 운전 면허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도로 주행 시험 날, 순조롭게 출발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시간인지라 도로는 한산했다. 이대로 합격을 할 것 같았다. 그 바람은 얼마가지 않아 "실격"이라는 검정관님의 목소리로 깨어졌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를 보지 못했다. 괜찮아 한번쯤은.


  두 번째 도로 주행 시험날, 떨어진 전적이 있어 더욱 긴장이 되었지만, 임용 시험도 두 번째에 붙었고 대학교 수시도 두 번째로 면접을 보았던 학교에 붙은 나였다. 지난 인생의 경험상 이번 도로 주행 시험에서 붙을 '각'이었다. 그리고 그 각은 잘못되었다. 무서운 검정관님, 쫄보인 나, 급 브레이크와 급 유턴 등 운전 미숙의 콜라보로 당연히 불합격하게 되었다. '큰일이다. 5월에 있는 학교 일찍 끝나는 날을 모두 도로 주행 교육과 시험에 써버렸는데...'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삼수라니 충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세 번째 도로 주행 시험은 부담임 선생님께 종례를 부탁하고 조퇴를 해서 보았다. "얘들아 선생님이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중인데, 시간이 도저히 안 돼서 하는 수 없이 조퇴를 하고 시험 보러 가" 몇 번째 시험이냐는 아이들의 질문에는 n번째라고 대답해 주었다. 도로 주행 시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불합격 사실을 아는 사람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세 번째 시험은 웬만하면 붙여준다는 위로의 말을 되뇌며 나는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시험장에 갔다. 도로주행 시험 시, 차 안에는 수험자 2명과 검정관 1명이 탑승한다. 그날 내 시험 순서는 두 번째로 지정되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수험자가 먼저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뒷 좌석에서 그분을 바라보았다. 수험자는 출발을 했다. 곧이어 검정관의 실격 멘트가 들렸다. 이유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출발해서였다. 그때부터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또 한 실수하는데, 저분이 한 실수를 능가하는 실수라면 나는 오늘 과연 어떤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걸까.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될 리 만무했다. 겨우겨우 시험을 보았고, 기기에서는 좌회전을 하라는 지시음이 들렸다. 나는 재빨리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실격입니다" '왜?' 사고가 정지되었다. "코스 이탈입니다." 분명 좌회전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코스도 다 외웠는데. 핸들을 너무 많이 돌려버렸다. 유턴을 한 것이었다.


  n+1번째 시험은 그로부터 두 달 후인 7월, 여름방학 직후에 봤다. 동료 선생님들과 우리 반 학생들에게 운전면허 취득이라는 방학 숙제를 부여받고, 나는 숙제를 잘 끝내기 위해 도로 주행 교육을 다시 받았다. 시험장에는 총 4개의 코스가 있는데, 나는 네 번째 시험을 보는 것이니, 아직 해보지 않은 그러나 내가 가장 원하는 쉬운 코스가 나오던지 이미 해봤던 3개의 코스 중 하나를 다시 하게 될 것이었다. 아무튼 합격일 것이다. 마음이 평온했다. 차가 막혀 시험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지만 중간에 실격하지 않고 도착지에 이르렀다. '어서 합격이라고 말해주세요.'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다양한 사유로 감점되어 점수 미달.

 





  그 이후 나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내가 사는 동네 근처의 학원으로 시험장을 바꾸었다. 학원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고 도로 주행 교육도 다시 받아야 했다. 여러모로 손해 나는 선택이었지만, 그 시험장에서 또 시험을 볼 자신이 없었다. "저 서울에서 도로 주행 시험 네 번 떨어지고 왔어요..." 새 학원에서 나는 불쌍한 모드로 가기로 했다.


  6시간의 도로 주행 교육을 다시 받았고, 3명의 강사님과 6시간의 스몰 토크를 했다. 마지막 도로 주행 교육에서 강사님은 나에게 기싸움에서 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운전이 문제가 아니라 겁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반복된 실패가 안 그래도 없던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강사님은 구체적인 상황을 말씀해 주시며 시험을 보다가 실격이라고 하면 교육받을 때 강사님한테 이렇게 배웠다고 받아치라고까지 하셨다.


  교육이 끝난 직후, 다섯 번째 도로 주행 시험이 진행되었다. 출발 후 얼마가지 않아 나는 검정관님으로부터 우회전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냐, 왜 안 가고 있냐 등의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배운 대로 나는 "강사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던데요..." 반박했다. 쭈굴 모드로. 도착 지점에 도착했고 결과는 드디어 합격이었다. 시험을 그만 봐도 된다는 게 참 기뻤다. 운전은 더 이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면허증이 나오기도 전에 차를 알아봤고, 겁도 없이 새 차를 뽑았다. 차가 나온 후, 운전 연수를 받았고 운전을 시작했다. 겁쟁이인 나는 한동안 차를 차답게 사용하지 못했다. 차 안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옆에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을 태워야만 운전이 가능했다. 특히 주행은 할 수 있는데 주차는 못해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내 차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10분 거리의 교회를 갈 때만 기능했다. 내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늘 그 자리에 있는, 너무나 깨끗한, 수상한 차였다. 들어보았는가 장롱차. 편도 1시간 30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나는 평일엔 도저히 운전 연습할 기운이 없었다. 주말엔 또 쉬어야 했다. 내 운전 실력은 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늘겠지. 나도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 나는 조수석에 아빠, 뒷좌석에 가족들을 태우고 비교적 원거리 운전을 하며 운전 공포증을 극복하게 되었다. 주유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 주유건을 꺼내 기름을 흘리기도 했고, 트렁크를 못 열고 앞범퍼를 여는 등 차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별의별 실수를 다했지만, 황금연휴 동안 본의 아니게 집중 운전 연수를 한 덕분에 이제는 주유, 세차, 고속도로 통행, 나 홀로 운전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 차를 끌고 나가는 게 겁나지 않다는 , 그 변화가 스스로 놀랍고 뿌듯하다.


  늦봄부터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긴 시간에 걸쳐 그간 제쳐두었던 운전이라는 숙제를 해냈다. 그 과정에서 느린 사람이라는 나의 고유한 특성을 오랜만에 실감할 수 있었다. 또 상황이 되어 면허를 따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는데 운전을 집중적으로 하며 익숙해진 것이, 흘러가듯이 내버려 두면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조심조심 안전 운전을 하며 더 좋은 곳, 더 넓은 세상으로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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